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 가져온 레토르트 커리다. 들어간 재료는 샬롯, 코리앤더 파우더, 레몬글라스, 마늘, 터머릭, 설탕, 커리 잎, 쿠민 파우더, 갈랑갈(태국 생강), 펜넬 파우더, 라임 잎, 자연 향료들, 쿠킹 오일이라 적혀 있다. 대충 데워서 먹으면 되겠지 싶었는데 조리법에는 코코넛 밀크와 토마토를 넣고 조리해야 하는 등 레토르트 치곤 요구 사항이 제법 있다.



집에 코코넛 밀크가 있을 리 없으니 우유로 대신하고, 토마토를 조각내서 넣고 닭가슴살도 추가로 넣어서 볶았다. 커리 향이 어찌나 강렬한지 조리하는 내내 코끝을 찌른다. 온 집안이 커리 향으로 가득하다. 



맛도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하다. 먹으면 입안에 온갖 향이 도는데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첫술부터 쿠민 특유의 중동스러운 향에 레몬의 시큼함, 알싸함, 매콤함이 차례대로 받치다가 시고 달고 짜고 감칠맛이 돌면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몇 가지 맛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맛이 차례대로 부딪히고, 코로 내쉴 땐 특유의 향신료 향이 느껴지면서도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레토르트치곤 참으로 다이나믹한 맛이 아닐 수 없다. 

  

감칠맛이 풍부한 이유는 중간중간 자주 씹히는 생선 잔가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푹 고아졌는지 쉬 부서진다. 분명 치킨 커리인데 육수의 풍미나 건더기로 보아 생선을 이용한 듯하다. 대부분은 이런 향에 익숙지 않으니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향이 죽은 마살라 파우더로 만든 커리가 우리 입맛에 맞아서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집 근처에 생긴 인도 커리 전문점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반조리 식품을 썼는지 안 그래도 향이 모자란 국내의 다른 인도 음식점보다도 못하다. 캡사이신 용액으로 매운맛을 5단계나 조절하는 대목에는 실소가 나온다. 내가 주문한 건 1단계인데도 캡사이신 특유의 아리고 쓰린 맛이 없는 맛을 더욱 버려놨다. 좋든 싫든 음식이 나왔기에 허기를 채우기 위한 공허한 숟가락질 만을 반복하며 대강 먹고 일어서야 했다. 

위에 소개한 레토르트 식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가 먹거리 장사를 하기에 지옥이 맞나 싶기도 하다. 입점한 곳이 롯데몰이라 일면 이해는 갔다. 롯데몰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이 음식으론 힘들지 싶다. 높은 임대료와 가격에 음식은 수준 미달이어도 롯데몰이란 브랜드와 규모, 다양성과 편리함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간만에 커리다운 커리로 기분 좋게 한 그릇 비웠는데 막판에 이물질이 나왔다. 처음에는 샤프란인줄 알았는데 만져보니 플라스틱류였다. 먼 이국 제품이라 클레임도 못 걸겠고, 갑자기 입맛이 뚝. ^^;

사실 우리나라가 향신료의 나라도 아닌데 향이 어쨌니 저쨌니 하는 것은 무리한 비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명색이 '전문점'이란 간판을 내걸고 반조리 음식이나 향이 달아난 반쪽짜리 커리를 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 커피 원두도 미리 갈아놓으면 3일, 길게 잡아야 일주일이면 향이  날아가 버린다. 남는 것은 탄 맛과 쓴 맛인데
커리에 들어가는 각종 향신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음식 재료점에 가면 이미 갈아져 향이 반 이상 날아간 마살라 파우더를 볼 수 있는데 그걸 또 인도 음식 전문점에서 가져다가 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통하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기 향이 살아있는 커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오히려 향이 강하다고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 다행이다. 향이 많고 적음과 향이 살거나 죽음이 개인의 취향쯤으로 여기는 것이라면, 품질보다 취향 저격이 우선시 되고 무난한 입맛에 맞추기만 급급하다가 품질은 뒷전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잘 볶아진 커피 원두도 향의 풍부함이 곧 품질의 기준이 되듯이 각종 커리 향신료도 향의 풍부함이 곧 신선도와 품질로 직결된다. 취향만 운운하기보다는 이 음식이 갖춰야 할 맛과 품질의 기준이 뭔지 제대로 알고 따지면서 먹을 수 있는 풍토가 자리잡혀야 자칭 인도 커리 전문점도 더 좋은 향신료를 가져다 쓰는 등 발전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소비자부터 맛을 모르니 대충 만들어도 통하는 그런 수준은 이제 좀 모면할 때가 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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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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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09 13: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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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보고 갑니다. ^^
  2. 씨더스타즈
    2017.02.09 13: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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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집근처 대치동이나 도곡동 커리전문점들도 처참한 수준된지 꽤됐쓰요~~울집사람 가서 먹어보더니 오뚜기덮밥집으로 부르더군요^^
    • 2017.02.10 11: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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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마살라 파우더에 강황을 좀 더 보강하면 인도 커리가 되는 현실이지요. ㅠ
  3. 2017.02.09 16: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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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커리는 안 먹어서 모르겠는데, 100시간의 정성이라는 일본식 *비꼬 카레는 정말 욕만 나오더군요
  4. 2017.02.10 08: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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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커리에 환장하는 지인이 보면 좋아할 포스팅이네요. ㅎㅎ
    영하 8도로 시작한 금요일 아침 웃으면서 시작하시길 바래요.입질의 추억님!~ ^^
  5. 2017.02.10 11: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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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거 맛있어 보이네요. 인도 커리 음식 전문점에는 간 적이 없는데
    지금도 별로 가고 싶지는 않은...
  6. ㅇㅇ
    2017.02.13 01: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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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시간되시면 동대문에 있는 에베레스트 가보세요. 꽤 유명한 집인데 사장부터 직원까지 전원 네팔 아니면 인도사람들이에요 ㅎㅎ

    가격도 싸고 맛있어요 리뷰남겨주시면 좋겠네요~
  7. ㅋㅋ
    2017.02.16 09: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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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에요 이물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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