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공항의 어느 식당에서 맛본 쌀국수

 

이날은 꼰다오 섬으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의 어느 식당에서 쌀국수나 대충 시켜 자 하였는데 맛이 기대 이상입니다. 넉넉히 넣어준 생고기에 구수한 고깃국물은 낚시를 앞둔 우리의 속을 든든히 해주었고 해장까지 시켜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얼마나 합리적이었던지.

 

 

꼰다오(Con Dao)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붕따우에서 뱃길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호찌민에서 매일 한 편씩 운항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인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접근성 용이합니다. 왜냐하면 붕따우에서 꼰다오까지는 18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뱃길로는 10시간이 넘게 걸리며 그마저도 비정기선이기 때문이죠.

 

 

꼰다오 공항에 도착한 풍경

 

꼰다오는 2-2좌석 배열의 프로펠러기로 운항합니다. 그바람에 대형 수화물은 하루 전에 미리 신고하여 가로, 세로, 폭의 길이와 무게를 통보해야 실을 수 있다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하루 한 편 정도 운항되는 공항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의 공항은 마치 시골 버스 터미널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수화물 내리는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규모가 정겨운데요. 명색이 공항이라 나갈 때는 본인 수화물이 맞는지 일일이 검사하는 꼼꼼함도 보입니다.

 

 

이 길로 우리는 곧장 콘도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꼰다오에서 유명한 최고급 리조트인 식스센스를 지나 대략 30~40분은 달려온 것 같습니다. 도착한 곳은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뭐한 콘도입니다. 촬영을 도우는 코디네이터가 남자였으면 저와 한방을 썼을 텐데 여자분이라 이렇게 트윈 침대인 방도 혼자 쓰게 되는 호사를 누리는군요.

 

 

우리는 다음 날에 있을 낚시에 대비해 낚시점에 들리기로 합니다. 사진은 꼰다오 섬을 다니는 택시입니다. 때마침 정면에서도 한 대가 오는 중인데요. 어린이 대공원에서나 볼 법한 셔틀버스로 저렴한 가격에 여러 명이 탈 수 있고, 짐까지 실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이번 촬영은 동갈삼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이 섬에 유일한 낚시점을 들렀는데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라서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건 낚시점이 아니라 철물점 수준인데요.

 

 

낚시 도구라기보다는 어구에 가까운 용품이 즐비합니다.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것은 척 봐도 오징어 낚는 도구죠. 제법 묵직한 쇠로 된 것으로 보아 이 섬을 둘러싼 조류가 얼마나 거센 가늠되려 합니다. 우리는 선장을 모셔와 낚시에 필요한 도구를 고르게 한 다음 내일을 기약했습니다.

 

 

사실 꼰다오 섬을 가기 전에는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베트남에서 대표적인 두 휴양지 섬을 꼽으라면 푸꾸억과 꼰다오가 있는데 푸꾸억이 제주도와 비슷하다면, 꼰다오는 섬 지형과 모습이 울릉도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꼰다오 섬에 도착해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오르내릴 때까지는 말입니다.

 

여행을 마친 지금은 휴양지란 인식보다 비통하고 슬픈 역사를 먼저 떠올리게 됐죠. 우리가 일제 강점기 시대 때 겪었던 아픔과 고통처럼 이곳 사람들은 프랑스 통치 시절을 겪어왔던 것입니다. 꼰다오 섬은 그때의 아픔과 고통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형무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푸하이 형무소

 

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투항했던 독립투쟁사를 감금하고 고문했던 곳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던 고통스러운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곳입니다.

 

 

형무소는 탈옥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공기가 오가는 유일한 구멍은 3m 높이에 쇠창살 창이 유일한 곳. 설령 형무소를 빠져나온다고 해도 섬 주변 해역은 깊고 거친 물살로 돌고 돌아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감금과 유배지로 악명을 떨쳤던 섬이었죠. 

 

 

입구 앞에 서는데 등골이 오싹합니다.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투사의 원혼이 귀신이 되어 떠돌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공간. 그 고통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괴로우니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촬영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며 그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형무소는 점령 중이던 프랑스인들이 지었고, 수감되는 이들은 전부 독립투사로 항쟁한 베트남인으로 이렇게 발목에 쇠고랑을 채워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라곤 작은 배변 통이 전부. 분변 냄새로 자욱한 공간에 누군가는 고문에 쓰러져 있을 것이며, 병에 걸려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고 죽어간 모습이 선명히 스치는 듯합니다. 개돼지보다 못한 옥살이로 비통하게 죽어간 사람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른 방에서는 수감자들이 곡식을 빻는 기계를 돌리고 그 뒤로 매질하는 프랑스군이 보입니다. 곡식을 빻는 것은 그저 명분에 지나지 않으며, 궁극적인 목적은 고통스러운 육체노동과 학대에 있었을 것입니다.

 

 

호랑이 굴이라 불리는 푸뚜엉 형무소

 

앞서 본 형무소보다 더한 곳이 있었으니 호랑이 굴이라 불리는 푸뚜엉 형무소입니다. 수감자들이 투옥 살이 한 감방에는 인간 이하로 취급했을 각종 고문 도구 등이 전시되어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아픔과 수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공개함으로써 당시 투쟁하며 나라를 지켰을 베트남인들의 긍지를 알리고 되새기자는 것이겠지요.

 

 

입구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담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일명 호랑이 굴이라 불리는 감방 시설에 이릅니다. 그나마 사진에 나온 방은 세 명이 기거하는 모습이지만, 어떤 방에는 그 비좁은 공간에 5~6명이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한 채 엉켜있습니다.

 

 

쇠창살로 된 천장 위에는 감시하는 프랑스군이 대나무 창으로 고문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곳에 수감된 이들은 고문으로 인해 뼈가 골절되는 등 성한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식사 또한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탓에 대부분 깡말랐죠. 실낱같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형무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독립투쟁사들의 삶이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 참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유관순, 보 티 사우(vo thi sau)

 

꼰다오 섬에는 액자로 만든 한 소녀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습니다. 액자와 기념품으로 전시하거나 파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사연이 심상치 않음이 느꼈습니다. 그녀가 겪은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윽이 슬픈 눈이 무언가를 말하는 듯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보 티 사우.

 

그녀의 비통한 삶은 앞서 설명한 형무소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통치하던 시절, 폭탄을 던져 친불파 관료 하나를 그 자리에서 죽게 하고 20명이 넘는 프랑스 군인을 다치게 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14살. 프랑스 법정은 어린 소녀에게 총살형을 선고했습니다. 그 어떤 관용도 없었죠.

 

옥살이하고 난 열일곱 소녀는 수많은 베트남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상태로 총살을 맞게 됩니다. 형이 집행되던 날, 사형집행인이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보 티 사우는 한치의 두려움이 없는 듯 의연한 말투로 말합니다.

 

"눈가리개를 풀어달라. 내 조국을 보며 죽겠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열 일곱살 소녀는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다 총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글을 쓰면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생각났고, 한창 꽃을 피울 나이에 비극을 겪어야 했을 소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지려 합니다. 

 

 

 

 

아픔의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꼰다오에 한 시장에 들렀습니다. 호찌민과 다름없이 오토바이와 행인들로 활기를 띠는데요.

 

 

노점상에서 무언가를 굽고 있길래 냄새에 이끌려 왔습니다.

 

 

돼지고기를 꼬치에 꿰어 굽고 난 다음, 해선장과 호이신 소스를 뿌린 형태입니다. 가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머니에 뒹구는 동전만으로도 푸짐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저렴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하나는 잎에 싼 음식인데 속 재료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기억에 남은 것은 잎의 강렬한 향. 고수와 다른 향인데요. 함께 촬영한 강성범 씨는 맛있게 드셨는데 제 입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네 음식과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요. 해산물을 즐겨 먹으니 건어물과 그 쓰임새가 우리와 비슷합니다. 

 

 

매운 고추를 넣은 조개젓도 보입니다. 베트남식 조개젓은 우리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말린 생선포인데 상인이 맛보라 해서 먹었습니다. 맛은 쥐포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베트남은 한치가 많이 나기로 유명합니다. 제주도에서 주로 잡히는 한치(표준명 창꼴뚜기)를 비롯해 이보다 더 큰 한치 종류도 잡힙니다. 생물은 볶거나 찌는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고, 이렇게 말린 오징어는 찢어 먹는 것이 우리의 식문화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시장 내부로 들어옵니다.

 

 

이 사진만 보면 우리네 재래시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익숙하지요. 새우나 멸치 말린 것까지 쏙 빼닮았습니다.

 

 

한 베트남 청년의 티셔츠가 시선을 사로잡네요. ^^

 

 

사실 시장을 찾은 이유는 꼰다오 특산물인 해마를 보기 위함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해마를 정력제나 약재로 이용하는데요. 이렇게 술에 담가 먹기도 하며.

 

 

말린 것은 빻아서 약재로 이용합니다. 어디가 좋냐는 질문에 상인 아주머니가 수줍은 듯 답변합니다. 이거 먹으면 밤에 잠이 안 온다면서. ^^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해변도 시장에서 보았던 노점상 길거리 음식이 즐비한데요. 주로 말린 한치나 꼬치구이. 반미(바케트) 등을 팝니다.

 

 

꼰다오의 해변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이날은 해가 질 무렵, 어두운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여서 소문만큼의 광경이 오롯이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붕따우나 베트남의 다른 해변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꼰다오 섬에서 맞이하는 일몰

 

우리는 이곳에서 낚싯배를 수소문하는 씬을 찍고선 이날 촬영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충분히 둘러봤으니 꼰다오의 해산물 요리를 맛보러 갑니다.

 

 

꼰다오 섬의 한 식당. 워낙 외진 곳이라 이름난 맛집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꼰다오 섬의 특징이 묻어나는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죠.

 

 

해산물 레스토랑답게 수조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주문한 것은 조개찜입니다. 베트남 특유의 양념으로 볶아진 조개는 잘게 다진 레몬그라스에 덮여 나옵니다. 레몬그라스의 쎄~ 한 향기가 이국적이긴 하나, 방향제 느낌이 나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고요. 그 옆에 초록색 잎은 '라우람'이라는 베트남 음식에 자주 등장하는 향채인데요. 고수와 비슷한 향이지만, 더욱 강렬합니다. 조개찜은 특이하게도 누룽지가 곁들여지길래 함께 먹어보는데요. 한국인의 입맛으로는 이 둘의 궁합을 논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어서 조개탕이 나오는데 역시 레몬그라스가 빠지지 않았고, 생강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향이 강한 국물 요리입니다. 그래도 조개 육수가 우러나서인지 해장이 되는 느낌이군요. 향이 낯설긴 하나 먹다 보니 맛은 있습니다.

 

 

소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식당인지라 이곳에서 인기가 좋다는 보드카를 주문했습니다.

 

 

계속된 조개 요리의 향연. 이번에는 볶음으로 나오는데요. 제 눈에는 익숙한 조개입니다. 갯바위 낚시하다 보면 자주 보는 삿갓조개. 흔히 '배말'이라 불리는 조개와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아마 같은 '과'에 속한 조개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특별한 향신료가 없는 대신 약간의 견과류가 뿌려진 형태로 나왔는데요. 느억맘(생선액젓소스)으로 간이 되어서인지 감칠맛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공심채(모닝글로리) 볶음도 빠지면 서운한 단골 메뉴죠. ^^

 

 

일행이 무난한 음식을 먹자고 하여 주문한 오징어 버터구이입니다. 맛도 사진에 보이는 대로였죠. ^^

 

 

하지만 계속되는 해산물에 제 입은 조금씩 물리고 있었습니다. 낚시하러 와서 해산물이나 회를 먹는 경우가 드문 저는 늘 고기류를 주문하는데요. 이름부터 무난한 돼지고기구이. 맛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연탄불에 구운 느낌인데 불향이 스며들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요리였습니다. 가격은 한 접시에 5~6천 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베트남 물가치곤 저렴하지 않지만, 대표적인 휴양지라고 생각하면 그리 비싼 편도 아니지요.

 

 

타이거 새우를 구웠는데 껍질을 아예 까서 구워달라고 했습니다. 오동통하게 씹히는 새우는 제법 육즙을 품고 있습니다. 보드카 원샷을 부담 없이 들이키게 하는 맛이네요. ^^;

 

 

다음 날 우리는 이번 베트남 촬영을 매듭지을 낚시를 위해 마지막 여정을 떠납니다. 이곳은 선착장이 없어서 배는 언제나 멀찌감치 떠 있습니다.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까이뭄'이라 불리는 베트남 전통 광주리 배를 타고 갑니다. 아래에는 이날 촬영한 방송을 올리며 베트남 편 촬영 이야기 최종회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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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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