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느억맘을 만들어 온 한 장인의 집, 베트남 붕따우

 

이날은 베트남의 피쉬소스인 느억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촌의 한 민가를 찾았습니다. 베트남어로 느억맘은 발음상 '늑맘'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느억'은 물을 뜻하고, '맘'은 생선 등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젓갈을 의미하죠.

 

 

집 현관에는 미신이나 토속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어촌 특성상 부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집안 여기저기는 제를 지내는 흔적이 보입니다.

 

 

벽에는 지금까지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자랑스러운 흔적들을 걸어두었습니다.

 

 

민가에서 느억맘 제조는 오랜 전통이자 재래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코를 찌르는 강렬한 발효취에 저도 모르게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숨도 못 쉴 정도인데요. 무엇이 그토록 강한 냄새를 풍기는 걸까요? 

 

 

내부에는 서로 다른 시간으로 발효되고 있는 느억맘이 한가득입니다. 

 

 

구석에는 마치 소금 광산이 연상될 만큼 많은 양의 소금이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젓갈을 담글 때 생선에 많은 소금이 들어가듯, 이곳 베트남의 느억맘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지겠지요.

 

 

느억맘이 잘 발효되라는 걸까요? 여기서도 제를 지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느억맘이 발효되는 건물 내부는 햇빛을 차단해 바깥 기온보다 선선한 편이었습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코를 찌르던 발효취가 서서히 적응되려는지 이제는 처음에 느꼈던 것만큼 강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느억맘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느억맘은 늦봄에서 여름쯤에 담근다고 합니다. 음력 4월부터 8월경에 잡히는 생선이 가장 기름지고 맛이 있어서인데, 이것도 지역마다 다양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담백하고 깊은 맛이, 호찌민을 비롯한 남부 지역은 야자나무를 켜켜이 쌓아 넣어 부드러운 맛이 특징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에는 뚜껑을 덮어거운 돌을 얹은 통이 있는가 하면, 그대로 둔 것도 있죠.

 

 

각각 발효된 개월 수가 다를 것입니다. 제조 과정은 이렇습니다. 나무통에 소금을 붓고 생선을 올립니다. 그 위로 코코넛 잎과 대나무를 켜켜이 쌓은 다음, 물을 붓는데요. 이 상태로 최소 6개월은 지나야 느억맘이 완성되며, 최소 1년 이상은 돼야 제대로 된 느억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느억맘은 세월이 흘러 발효되면서 맑은 액젓을 만드는데, 맨 처음에 걸러낸 액젓은 순도 100%의 최상급 느억맘이 되고, 추가로 물을 붓고 희석할수록 품질은 낮아집니다.

 

 

표준명 샛줄멸(베트남어로 까껌)

 

베트남의 느억맘은 북부인 하노이부터 남부인 호찌민에 이르기까지 그 제조법이 다양하나, 기본 재료는 '까껌(Ca Com)'이라 불리는 작은 생선을 발효해서 만듭니다. 지역에 따라 새우나 게를 쓰기도 하며, 오징어류를 쓰는 곳도 있죠.

 

까껌은 청어목 청어과 어류로 우리나라에도 나는 생선입니다. 우리 말로는 샛줄멸, 제주 사람들은 꽃멸치라 부르고 있죠. 샛줄멸은 제주도를 비롯해 인도양의 아열대 해역에도 폭넓게 서식합니다. 얼마 전에 다녀온 몰디브에서는 가다랑어 낚시를 위한 먹잇감에 쓰였고, 말레이시아의 나시르막에는 반드시 샛줄멸 튀김을 곁들여야 완성이 되죠.

 

그러고 보면 젓갈로 담그는 물고기는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청어목 청어과에는 샛줄멸 말고도, 우리가 익히 아는 멸치를 비롯해 밴댕이, 청어, 반지, 황강달이(황석어) 등이 있습니다. 청어과 생선은 아니지만, 백령도에서 유명한 까나리 액젓도 있죠. 액젓은 작은 생선으로 만들어야 발효가 잘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름진 내장이 녹아내린 이후 나머지 살과 뼈가 삭히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야 합니다. 

 

 

백령도 까나리 액젓 공장에서

 

백령도의 까나리 액젓 제조 과정도 발효되는 원리는 베트남의 느억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5~6월에 잡히는 까나리가 액젓 재료로 최상인 이유도 이때 잡힌 까나리의 몸집이 작아서 발효가 잘 되기 때문이겠지요. 여름이 지나면 이 녀석들이 훌쩍 커서 액젓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느억맘이 들어간 소스와 그린망고

 

느억맘은 간식에도 이용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덜 익은 그린망고를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데요. 신맛이 강한 그린망고에 짠맛이 강한 느억맘 소스와 설탕이 어우러져 묘한 맛이 납니다. 한두 번 먹었을 때는 '특이하네' 하면서도, 이미 '단짠'이 주는 맛에 중독되었는지 저를 비롯한 스텝진들의 손이 바쁘게 오갑니다.

 

지금은 국내에 베트남 음식 열풍이 불면서 제법 많은 사람이 피쉬소스를 접합니다. 월남쌈에 찍어 먹는 피쉬소스는 느억맘 원액이 들어갔다고 하나, 엄연히 조미된 소스입니다. 국내 생산 제품은 인위적인 단맛이 강해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느억맘이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도 손쉽게 감칠맛을 낸다는 점에서 맛의 깊이를 더하는 천연 조미료인 셈이죠.

 

요즘 뜨고 있는 분짜를 비롯해 베트남의 거의 모든 음식에는 느억맘 소스로 합을 맞추거나, 아예 느억맘으로 간을 합니다. 단순히 곁들여 먹는 김치나 피클과는 다른 의미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느억맘은 베트남 식탁에서 빠지면 서운한 소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베트남 음식의 정체성이자 많은 베트남인이 먹고 힘을 낼 수 있었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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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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