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어느 한식당에서

 

이날은 EBS <성난 물고기> 태국 촬영 3일 차 밤. 매끌롱 기찻길 시장과 몬브릿지를 하루 만에 촬영하고 오자 새벽 1시. 녹초가 된 우리는 그대로 호텔에 투숙하였습니다.

 

사진은 전날 밤, 한식당에서 맛보았던 술인데요. (휴대폰 조명에 올린 것을 '무슨 주'라고 부르던데 이름을 까먹었습니다.쌤쏭이라 불리는 태국 위스키와 맥주를 섞은 것입니다. 저는 섞은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우지원씨가 친히 말아준 것을 또 자신의 휴대폰 조명에 올려 주시니 어찌 원샷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 게다가 태국에 온 지 이제 겨우 2~3일이데 삼겹살, 김치찌개가 어찌나 꿀맛이던지요.

 

 

이날 편의점에서 처음 보았던 우유 소금. 당연히 우유 맛이 나는 소금이라 어떤 요리에 쓰일까 싶었는데요. 알고 보니 몸에 바르는 거였습니다. ^^;

 

 

자정 넘어 도착하자 그리운 침대가 절 반깁니다. 해외 촬영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의미는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할 텐데요. 방콕처럼 물가가 저렴한 도시를 거점으로 삼았을 때 좋은 점은 숙소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지로 촬영 간 팀을 보면 TV 화면에는 나오지 않아도 고생길이 훤히 보이지요.

 

 

다음 날 아침, 아니 벌써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이동이 대부분이라 간만에 늦잠도 자면서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방콕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와 항에 도착하자 이날 마지막으로 운항하는 페리에 차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꼬창은 항공편이 없는 대신 수시로 운항하는 대형 여객선이 있어서 접근성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꼬창에 여행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항구 근처에는 '뜨랏 공항'이 운영, 방콕에서 뜨랏 공항까지 항공편을 이용하면 차로 3시간이나 달려와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죠.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섬이 꼬창입니다. 해협만 건너면 되니 배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죠.

 

 

 

2층 매점과 객실

 

차를 싣고 2층으로 올라오면 간식과 맥주를 살 수 있는 매점을 비롯해 객실이 나옵니다.

 

 

배가 출항하자 또 다른 여객선이 입항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며 미지의 섬 여행지를 찾아가는 기분이 묘합니다. 태국의 한 호수에서 자이언트 스네이크 헤드 피쉬를 잡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필름 스치듯 지나갑니다. 체력적으로 매우 지치거나 힘겨운 여정은 아니었으나, 이번에 잡아내지 못하면 처지가 난처해지는 물러설 수 없는 현장이었기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힘들었죠.

 

 

 

 

타이만에서 바라본 일몰

 

지금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불타오르는 일몰의 감동처럼 꼬창이라는 새로운 촬영지에서는 일정 내내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품은 채 꼬창으로 향합니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꼬창의 게스트하우스

 

꼬창은 거제도와 맞먹을 정도로 매우 큰 섬입니다. 항에서 숙소까지 오는데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운타운부터 시작해 화려한 네온사인이 즐비한 클럽 거리와 휙휙 지나치는 야시장까지, 당장에라도 내려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며 와야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한국인 부부가 촬영팀을 반깁니다. 이곳에 거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한국인 부부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내일부터 촬영팀과 함께 다니며 코디를 해줄 것이고요.

 

방은 대체로 아담하고 커플이나 부부가 묶기에 적당해 보입니다. 우리는 남자들뿐이라 1인 1실 배정을 받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시내로 나갈 때는 현지의 트럭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덜컹거리는 어두운 산길과 소규모 다운타운을 몇 번이나 지나쳐 도착한 곳은

 

 

꼬창에서 가장 큰 다운타운 거리입니다. 마사지 샵이 즐비한 거리도 보이고.

 

 

옷가게도 많은데 딱히 눈길이 가지는 않습니다. 해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라 그런지 주로 비치 관련 용품을 많이 팔군요.

 

 

뭘 먹을까 둘러보다가 피자집으로 향합니다.

 

 

 

"꼬창에서 3박 4일을 위하여 건배"

 

 

해산물 피자입니다. 새우와 오징어 살이 통통 씹히는 것이 맛이 괜찮습니다.

 

 

맥주 안주를 위해 돼지고기 폭챱도 주문해 봅니다. 소고기 스테이크가 썩 맛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면 저는 무난한 돼지고기 폭챱을 시키는 편인데요. 캐나다에서도 그랬고 그리스에서도 그랬지만, 태국에서 맛본 폭챱도 기본 이상은 했습니다.

 

 

거리를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화이팅해서 촬영해야 하기에 이날은 서둘러 먹고 나와, 마사지로 몸을 풀고 숙소에 투숙합니다.

 

 

다음 날 아침

 

밤에 도착해 꼬창이 어떤 풍경인지 몰랐는데요. 잠에서 깨자 제 앞으로는 이런 풍경이 반깁니다.

 

 

꼬창이 이런 곳이었구나 싶은.. 아직은 유명하지 않아서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기 전이랄까요. 자연이 깨끗하게 보존된 열대 우림의 섬 같았습니다. 실제로 숲속에는 많은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데요. 차로 산악 도로를 달릴 때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요.

 

 

 

 

게스트하우스의 노천 식당

 

주인 내외분이 게스트하우스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놨네요. 사실 방은 좀 허름합니다. 중간중간 전기도 종종 나가고요. 온수도 한두 번 끊깁니다. 한국인 여행객이라면 이런 불편한 시설물로 클레임이 오갔을 텐데요. 그래서 사장님 내외분은 있으면 있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 자체를 즐기는 유럽인을 손님으로 받는 편이 좀 더 편하다고 합니다.

 

애초에 이곳을 택해서 온 분들은 이미 리조트보다 열악한 시설임을 알고 자처해 왔을 테니까요. 잘 모르고 왔다가 변변치 못한 시설에 당황하는 한국분들 상대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겠지요.

 

근처에 좋은 리조트도 많은데 왜 하필 이곳을 선택했느냐면, 당연히 경비 문제 때문이고요. 무엇보다도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라 꼬창의 정보를 수집하기에 좋고, 사장님도 방송 코디로 일정 내내 촬영팀과 함께 할 것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였죠.  

 

 

잠시 기다리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이 나옵니다.

 

 

식당에는 먼저 일어난 우지원씨가 앉아 계셨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아침 식사라니.. 촬영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모를 이 풍경이 괜스레 마음을 뒤숭숭히 흔듭니다.

 

 

주인이 기르는 개는 눈치 백단입니다. 소시지를 향한 열망의 눈빛에 못 이겨 한 입 내주고 말았다는 ㅎㅎ

 

 

꼬창은 태국에서 푸켓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알려졌습니다. 꼬창의 '꼬'는 섬을 뜻하고, '창'은 코끼리를 뜻합니다. 일명 코끼리섬인데 코끼리는 과거에 살다 사라졌는지 지금 이 섬에는 야생 코끼리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꼬창은 한국에서 꽤 생소한 곳입니다. 태국 여행지하면 대부분 방콕이나 푸켓, 치앙마이, 후아힌, 코사무이 정도로 대변되기에 더더욱 낯설 것입니다. 그런 꼬창이 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유명 휴양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럽 청춘들의 고독한 휴식처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꼬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리에 보이는 여행객의 절반 이상이 유럽인, 그중 적잖은 커플은 나이 지긋한 노부부이거나 태국인 아내를 둔 유럽인, 그중에는 본처와 별개로 세컨드를 두고 살다가 본처를 불러 같이 여행을 즐기는(?), 이슬람 국가도 아닌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일부(一部) 사람들의 일부다처(一夫多妻) 일탈 여행을 즐기는 밀월지로도 유명한 곳이죠.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서부터는 거리에 보이는 노부부 중 태국인 아내나 여자친구를 두고 다니는 커플이 제법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

 

 

우리는 촬영차 왔기에 꼬창에서도 제법 구석진 곳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고 사진의 풍경들도 대부분 꼬창의 유명 여행지와는 거리가 먼 바닷가 풍경이지만, 진짜 유명한 곳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휴양지로는 론리비치, 크롱 프라오, 화이트 샌드 비치 같은 해변입니다. 해변가 주변으로는 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리조트들이 즐비합니다. 푸른 바닷물에 연두빛까지 나서 흡사 지중해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죠. 가끔 한국인 여행객도 보이지만, (전 야시장에서 딱 한 번 만났습니다.) 대부분 유럽의 젊은 배낭족이 많습니다.

 

클럽과 바가 발달했으며, 새벽 늦게까지 요란한 음악으로 일대 거리가 시끌벅적한데요. 금, 토요일에는 제가 묶는 게스트하우스까지 그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촬영이 아닌 여행으로 와도 이런 느낌이 참 좋습니다. 사람은 자고로 밤에 잠을 자야죠. 그래야 낮에 이런 풍경을 보더라도 제정신으로 보고, 힐링하고 다시 힘내서 돌아다닐 수 있죠. ^^; 

 

물론, 사람마다 힐링을 얻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더군요. 어느 새부터인가 음주가무 뒤에 오는 두통과 숙취가 두려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을 멀리하게 되고, 지금은 맥주 한 병이 딱 좋습니다. 시원하게 맛으로 먹는 크래프트 맥주 말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한국인 부부가 기르는 두 마리의 개가 있습니다. 그중 골든리트리버의 유전자가 보이는 이 녀석은 개수영이 취미인데요. 촬영할 당시 우지원씨와 나란히 붙어서 헤엄치던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영화 같았는지. (피디님! 이 명장면을 왜 편집하셨어요. ㅠㅠ) 대신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수영하는 제 모습이 들어갔었죠. ㅠ

 

 

개와 함께한 해변 산책이 하루의 출발을 기분 좋게 합니다. 어디에 서도, 무엇을 찍어도 다 그림 같았던 꼬창의 바닷가.

 

 

 

 

 

심지어 와이셔츠를 활짝 펼치고 오토바이를 모는 백인 청년의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웠던 곳이 꼬창인지라. ^^ (남자인 제가 봐도 멋지네요. 눈에 하트 뿅뿅할 뻔 ㅎㅎ)

 

 

우지원씨와 함께 산 중턱에 차를 세우고 중간 씬을 촬영하기로 합니다. 주어진 대본이나 대사는 없습니다. 그냥 바다를 감상하면서 즉흥적으로 느낀 점을 풀어나가는 씬이라 어지간해선 NG도 없습니다. 미리 대사를 생각해 놔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더 어색해져서 처음 마주하는 꼬창의 바닷가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말들로 대화를 풀어나가는데 무엇보다도 감정에 충실하고 꾸밈 없이 말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지원 : 와 저기 보세요. 지금 파란 풀하고 수영장이랑 비치 있죠? 모래사장이랑.. 와~ 진짜 멋있다!

김지민 : 저기 조그만 섬들. 제가 보기에는 저기가 포인트가 대박일 거 같은데...갯바위도 보이지만 저 섬에서 낚시를 좀 할 수는 없을까.

우지원 : 저하고 보는 관점이 다르시네요. 저는 이 앞밖에 안 봤는데 저기를 보셨어.

김지민 : 아무래도 저는 바다를 보면 '수영이 잘 될까?' 이것보다는 '물고기 잘 잡힐까?' 이 생각이 먼저 들어요.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종일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뜻밖에도 정면에서 노을이 반겼던 곳.

 

 

자연이 부리는 오묘한 조화를 다른 곳도 아닌 침대에서 바라보니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습니다. 아래는 이날 촬영분입니다.

 

 

EBS1 <성난 물고기> 태국 꼬창편(영상을 재생해 주세요.)

 

태국 꼬창 원정기의 시작을 알렸던 첫날. 앞으로 어떤 촬영 에피소드가 탄생하게 될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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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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