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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5월, 제주도 모 횟집에서 접한 평범한 양식산 생선회. (광어, 참돔 껍질 숙회, 고등어회 등이 나왔다.) 광어는 물컹물컹 질겅거려 목 넘김이 쉽지 않은 식감이었고, 고등어는 지방이 빠져 밍숭밍숭, 참돔 역시 질기고 맛이 빠져있다. 혹시 이번만 그랬던 것은 아닐까?
"3월 광어는 개도 안 먹는다."
"오뉴월 감성돔은 개도 안 물어간다."
"5월 도미는 소껍질 씹는 맛보다 못하다."
모두 봄에 생선 맛이 좋지 못함을 표현하는 속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속담이 꼭 맞아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 글의 주제인 "봄에는 왜 생선회가 맛이 없을까?"라는 물음에도 선뜻 동의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봄'이라는 계절감과 주로 먹는 '생선회'의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 1> 한국의 제철 생선회(그림 : 입질의 추억)
<그림 1>은 우리가 주로 먹는 '횟감'에 관해 제철 분포를 그린 것입니다. 같은 어종이라도 서식지와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적인 제철 분포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글자 크기는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횟감 순으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선호하면서 소비량도 많은 횟감이라면 단연 우럭, 광어, 참돔(도미), 농어, 가숭어를 들 수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감성돔, 방어, 민어, 전어, 고등어까지도 꼽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 횟감은 모두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민어와 전어, 방어를 제외한 나머지는 약 80~90% 이상이 양식산으로 유통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봄 생선회'도 이들 횟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1) 특별히 산지 공수한 자연산 횟감
2) 양식산 중에서도 3~4kg 이상 특대급으로 길러진 A급 활어
3) 3~4월 초봄은 겨우내 가두었던 기름기가 여전히 남아 있어
※ 위 두 가지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더욱이 봄에도 맛이 좋은 제철 생선을 포함하니 '봄에는 왜 생선회가 맛이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제외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말하는 봄은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5~6월로 한정합니다. 그랬을 때 봄에 생선회가 맛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 봄에 생선회가 맛없는 이유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횟감은 우럭, 광어, 참돔, 농어, 가숭어(밀치) 등 쫄깃한 식감으로 대변되는 흰살생선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대량 양식이 되고 있어 일 년 열두 달, 크게 변하지 않은 가격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횟감의 산란은 봄철에 집중됩니다. 농어와 민어처럼 가을에 산란하는 일부 어종을 제한다면, 우리가 먹는 바닷물고기 중 약 70%가 '봄 산란'인 셈입니다.
<사진 1> 봄철 수산시장에서 선어로 팔리는 자연산 알배기 우럭
사람의 임신 기간은 약 10개월. 생선은 어종별 차이가 있지만, 알을 생성하기 시작해 산란에 이르는 시간이 평균 3~5개월. 이 기간 중 산란이 임박해 배가 잔뜩 부푼 마지막 한두 달을 산란기로 봅니다. 그랬을 때 우럭은 4~5월, 광어는 5~6월, 참돔은 3~4월(서해는 4~5월), 시장에서 밀치 혹은 참숭어로 불리는 가숭어는 5~6월에 산란기를 맞이합니다.
산란이 임박하면 암컷은 알집으로 배를 부풀리고, 수컷 역시 정소(정자 주머니)로 부풀립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위에 정자를 뿌리는 행위(방정)를 통해 산란하거나, 어떤 어종은 새끼를 낳는 난태생도 있습니다.
<사진 2> 자연산 양식산 할 것 없이 산란철에 알을 배는 것은 본능이다.(사진의 왼쪽은 자연산 광어, 오른쪽은 양식산 광어)
어느 쪽이든 배가 부르면, 생선 근육에 치밀했던 각종 맛 성분이 알과 새끼로 집중됩니다. 알이 비대해지면 비대해질수록 우리가 날것을 통해 취할 수 있는 맛의 이득은 줄어듭니다. 다만, 가열 조리하면 열에 지방이 활성화되면서 그나마 먹을 만한 음식이 되었던 것. 그래서 산란철 고기를 굽거나 탕을 끓이면 맛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눈썰미 있는 일부 오너 셰프들은 활어를 고를 때 최대한 알배기를 고르지 않으려고 하며, 시기 상으로 피할 수 없다면 수컷으로 골라 조금이라도 회맛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산란기가 회 맛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는 비단 봄철이 아니라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복달임 음식으로 유명한 민어는 산란기가 늦가을입니다. 때문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철 횟감으로 인기가 높은데 여기서도 산란기에 접어든 암컷과 수컷은 맛과 가격에서 적잖은 차이가 납니다.
민어가 산란기에 접어들수록 암컷보다는 수컷이 인기가 많고 가격도 높아집니다. 이유는 민어의 별미인 뱃살과 부레가 암컷보다 많이 나오고 맛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도 결국에는 산란철 알집으로 집중되는 각종 맛 성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횟감에서 맛을 취하는 것은 대부분 근육(순살)으로 산란기가 임박했을 때 가장 부실해지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사진 3> 산란을 마쳐 두께가 얇아진 문치가자미(일명 도다리)
<사진 4> 산란을 마쳐 홀쭉해진 광어. 이런 횟감은 수율에서도 손해지만, 무엇보다도 지방이 빠진 맛에서 손해를 보며, 지방이 빠졌기 때문에 숙성 효과가 적고, 활어회는 물컹하고 질긴 식감을 가진다.
산란을 마친 생선도 회맛에는 감점 요인이 됩니다. 살이 찌고 영양 상태가 충분한 횟감이 맛도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관능검사로는 몸길이에 비해 유달리 두께가 나가거나 체고(등에서 배까지 이르는)가 높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산란기를 보낸 어류는 몸 길이는 그대로 유지하는데 살이 빠져 상대적으로 길쭉해 보입니다. (위 사진 참고)
몸 안에 축적된 각종 성분이 알(또는 정소)과 함깨 배출되었으니 살은 빠져 볼품이 없고, 배는 홀쭉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3월 도다리보다는 4월 도다리가 좀 더 낫고, 4월 도다리보다는 5~6월 혹은 그 이후의 도다리가 살이 찌고 회 맛이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5월이면 서해에 자연산 광어가 많이 잡힙니다. 이 시기에는 수도권 수산시장에서도 자연산 광어로 넘칩니다. 많이 잡히는 만큼 저렴해지는 것이 자연산의 특징이지만, 자연산이라는 기대치를 이용해 상술을 부리는 상인이 더러 있습니다.
<그림 1> 한국의 제철 생선회(그림 : 입질의 추억)
바닷물고기의 약 70% 이상이 봄에 산란합니다. 봄에 제철인 일부 자연산과 관리가 잘 된 특대 크기의 양식산 활어를 제하면 대체로 맛이 떨어짐을 경험적으로 느꼈습니다. 다시 <그림 1>로 돌아와서 보면, 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횟감이 늦봄(5~6월)에는 없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봄철 생선회는 무조건 맛이 없어."라고 단정짓거나 푸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대중적인 횟감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맛이 오르기 시작하는 횟감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횟감은 오히려 지금(5~6월)부터 챙겨 먹어야 제맛을 느끼는 횟감이기도 합니다.
"민어, 농어, 자리돔, 붕장어, 문치가자미, 강도다리, 쌍동가리, 병어, 벤자리, 쥐노래미(놀래미, 게르치, 돌삼치),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 갈치"
등등 무수히 많다는 사실! 그러니 다가오는 5~6월 뿐만 아니라 다른 계절에도 위 그림을 참고하여 제철 생선을 꼭꼭 챙겨 드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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