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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안경섬에서 주어진 낚시 시간은 16시간.
그 중 10시간 가까이 하고 나니 이제 막 해가 떠오릅니다. 전날 밤, 씨알 굵은 고등어 말고는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 이른 아침을 노리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데..
이번엔 긴꼬리 벵에돔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그리고 오랜만에 회 맛도 봤으면 싶어 열심히 낚시를 시
작합니다. 그런데 긴꼬리 벵에돔은 안보이고 물속에 알록달록한 녀석과 허여멀그레한 녀석들이 떼거지
로 붙더니 담그자마자 물고 늘어지네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오늘은 판타지 영화속 배경에서 그림같은 낚시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
새벽 5시, 동트기 직전
이미 개어 온 밑밥은 밤 낚시를 하며 다 써버렸고 지금은 남은 크릴을 모두 모아서 반죽합니다.
크릴 5장 + V10 벵에돔 집어제 1봉지 반 + 빵가루 2봉에 해수를 조금 섞어 적당히 섞어주고요. 비장한 마음으로 크릴 한마리를 꿰어다가 던져봅니다.
지금부터 오전 7시까지 긴꼬리 벵에돔이 미친듯이 물고 늘어지는 행복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
안경섬의 일출
밤새 쉬지 않고 낚시한 아내, 아침이 되니 더 열심이다.
오전 6시, 물때는 초들물로 이어지는 최고의 찬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지금쯤이면 뭔가 나타나서 물고 늘어져야 정상인데 바다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저기 남쪽 해상엔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는 중이라고 하지만 상륙하려면 2~3일은 더 있어야 합니다.
이럴때 시계 초침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마음은 갈수록 초조해집니다.
"한마리만 나와봐라!"
동이트자 건너편 갯바위도 분주해졌다. 그러나 대를 세우는 장면은 끝내 보질 못했다.
아침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잠시 캐스팅을 중단한 아내
해가 떠오르자 갑작스레 바람이 몰아칩니다. 비록 등 뒤에서 때리고 있지만 가끔씩 휘청할 정도로 매섭게 불어재끼니 캐스팅하면...
멀리나가서 좋긴 하네요.^^; 사실 좋아할 일은 아닙니다. 바람에 너울까지 높아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는 상황.
아침 채비는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상층부로 떠오르는 긴꼬리 벵에돔을 노리기 위해 쯔리켄의 투제로 찌를 사용했다
대를 못가눌 정도로 바람이 거쎄지자 B찌에서 00(투제로)찌로 채비를 교체. 밑밥띄를 따라 서서히 들어가는 잠수찌 형태로 공략에 나서봅니다.
저는 여전히 본류쪽을 공략했고 아내는 홈통 언저리를 공략해 보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잡어에 입질을 받았는데 낚시대가 제법 휘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던져 본 결과 "이건 아니다"라는 안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너울이 치는데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어떼가 새카맣게 피어오르니..
만약 긴꼬리든 부시리든 밑밥에 반응한다면 이렇게 잡어들이 한가롭게 떠서 밑밥을 받아먹고 있을리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제부터 내내 물속 상황이 안맞는건가..
새카맣게 모여든 잡어는 그 정체가 오리무중..
분명 자리돔이나 용치 놀래기는 아닙니다. 망상어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이건?
확인을 위해 아내가 발 밑을 쪼사 봅니다.
"으으~ 독가시치다. 조심해라"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독가시치(제주에선 따치라 부름), 지느러미가 날카로운데다 독까지 있어 한번 찔리면 그 날 낚시는 끝날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병원가야 될 정도로 통증이 심해요. 아내도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이것을 처리할 때는 집게를 이용해 바늘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입이 작다보니 긴꼬리 전용 바늘은 삼키고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
제주 분들에겐 그다지 희한한 장면도 아니겠지만 지금 발 밑에 피어오른 잡어는 대부분 독가시치(따치)..
족히 수백마리는 될 법한 군집이 밑밥을 받아 먹기 위해 모여드는데 어우~ 보기만 해도 등골이 싸해집니다.
그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늘 낚시 다 했다" 임을 직감했기에..
그래도 혹시 몰라 이제부터는 잡어 분리를 위한 밑밥 체제를 갖춰 나갑니다. 어차피 지금은 조류도 가질 않아 긴꼬리는 포기했습니다.
그냥 일반 벵에돔이라도 잡아 볼 요량으로 홈통쪽에다 잡어들을 불러 모은 후 조금 멀리 던져서 벵에돔을 속아 볼 생각입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니 낚시하는 풍경이 마치 환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배경 같았다
그리고 때마침 입질!!
아내의 낚시대가 휘어지더니 수면에 모습을 비친건 벵에돔인가?
난류성 어종인 황줄깜정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깜빡 속을 뻔했다. 처음엔 벵에돔인줄 알았는데"
아내의 푸념이 이어집니다. 사실 황줄깜정이는 내만권에선 좀 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열대성 어종이예요.
벵에돔과 같이 "농어목 황줄깜정이과"에 속하며 제주도를 비롯해 남해 일부 지역과 일본에서 모습을 많이 드러내는 어종으로 70cm이상까지 자랍니다.
그래서 씨알이 큰 녀석들은 손맛이 엄청나요. 대형 황줄깜정이를 만나려고 대만과 필리핀까지 원정낚시를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할 정도니.
하지만 황줄깜정이를 대하는 꾼들의 대우는 여타 어종들 중 최악에 속합니다.
일단 냄새가 고약해 벵에돔 낚시꾼들에겐 기피대상 1호인 셈이지요. 가끔 똥을 흘리며 올라오기도 하는데 거기서 악취가 많이 납니다.
물론 회를 쳐도 냄새가 나서 먹기가 좀 그래요.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는데 일본에선 일부 꾼들이 황줄깜정이만 잡아서 먹을 정도로 마니아가 있다고
합니다. 황줄깜정이도 독가시치와 마찬가지로 초식어이기 때문에 풀냄새가 나는데 이는 잡자 마자 바로 내장을 제거해 그 자리에서 회쳐 먹는다면 먹을만
하다고도 하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시식해서 맛을 전달해 보이겠습니다. 조금 두렵긴 하지만 ^^;
너울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 멀리 거제도 본섬이 보이는 안경섬 등대 포인트
낚시 시작한지 12시간이 지나자 크릴의 내장도 썩어가며 검은 빛을 띈다
미끼는 신선도가 정말 중요한데 이런 크릴을 먹어줄지 좀 불안합니다. 이런 크릴은 긴꼬리가 잘 안문다는 얘기를 들어서..
쿨러에 보관하다 중간부터는 실온에 방치한 결과입니다.
독가시치는 낚시대 담그기가 무섭게 물고 늘어집니다.
잡어 분리를 한다 했지만 그닥 소용이 없네요. 발 앞에도 우글우글, 저 멀리 던져도 우글우글..
상층부로 피어오르는 독가시치를 따돌렸다 싶으면 중층에는 황줄깜정이가 물고늘어지는 상황.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나?
아내와 저는 포인트를 옮겨볼려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등대 뒷쪽으로 돌아가서 남쪽 포인트를 공략해 볼까 싶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 곳은 낚시자리가 엄청 높고 너울도 쎄 낚시할 엄두가 안납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ㅜ.,ㅡ
전방엔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던지면 여지없이 물고 늘어지는 독가시치, 씨알도 제법입니다. 밑밥치면 저런게 시커멓게 몰리니 훌치기를 해도 될 것 같아요.
또 독가시치가 꾹꾹 처박는 모션이 있어 손맛도 제법입니다.
만약 우리부부가 현지꾼이였다면 독가시치를 마릿수로 잡아다가 집으로 가져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정 낚시이고 아직 일정이 이틀이나
남아 잡은 고기는 낚시점에 있는 냉동고에 보관해야 할 상황입니다.
현장에서 썰어 먹을 게 아니면 냄새나는 독가시치를 잡아 둘 이유가 없지요. 그야말로 손맛만 보는 캐치 앤 릴리즈 낚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철수시간이 한시간 가량 남았습니다.
저는 이 날 따라 전의를 일찍 상실해 낚시대를 미리 접은 상태. 덕분에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지만..^^
이대로 철수하자니 뭔가 허전하여 독가치시를 잡아다 즉석으로 회무침을 먹기로 합니다.
둘이서 먹을테니 3마리면 충분할 꺼 같아요. 3마리도 많을려나..
세마리 잡는건 1분이면 족할겁니다. ^^ 이제부터 아내가 잡아 올리는건 바로 손질할 생각으로 지켜봅니다.
우선 미끼를 끼우고요.
낚시대를 담그자마자 몇 초 안되어 챔질하면!!
제법 앙탈을 부리는 독가시치가 매달려 옵니다.
어제부터 1.75대를 쓰고 있는 아내. 그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1호대로 바꾸면 좀 더 강한 손맛을 만끽했을텐데 이제와서 장비를 바꾸는 건 귀찮고요.
비록 원하던 긴꼬리 벵에돔은 아니지만 독가시치의 앙탈스러운 손맛에 표정은 다소 누그러졌다.
지금은 독가시치를 눈감고도 낚을 수 있는 상황이여서 "독가시치를 6초안에 낚아 올리기"로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시연은 아내가 했는데 던지고 나서 찌도 안보고 6초를 센 후 챔질하면 어김없이 물고 늘어지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딱 3마리만 잡고 낚시대를 접으려는 순간 갑자기 너울파도가 들이닥쳤습니다.
독가시치와 해수가 든 밑밥통은 제법 무게가 나갔겠지만 너울앞에선 종잇장에 불과했습니다.
순식같에 바다로 휩쓸려 갔더니 난바다로 떠내려 간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짐 정리할려고 돌아보니 뜰채가 사라지고 없네요. 그새 뜰채도 날라갔나 봅니다. 이게 얼마짜린데 OTL
돌연 성난 모습으로 뒤바뀐 거제도 안경섬
시간이 갈수록 바람과 너울은 거세져 더 이상 낚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진 저는 우울한 기분을 추스리고 철수배를 기다립니다.
높은 곳으로 피신한 채 철수배를 기다리는 아내
아내는 이 와중에 요즘 유행하는 타이니팜을 하고 있네요 ^^;
판타지 영화속 배경 같았던 분위기는 해가 중천으로 뜨면서 온데간데 사라졌고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저희부부와 함께 오셨던 현지꾼.
나중에 물어보니 이쪽 포인트도 상황은 비슷했나 봅니다. 독가시치만 우글우글, 그 흔한 부시리도 오늘은 안보인다며 아쉬워합니다.
저 멀리 경남 홍도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날씨만 좋다면 홍도 뒷쪽으로 대마도가 보인다고 해요.
이 날은 육안으로 관찰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갯바위 접안에 애를 먹고 있는 철수배
너울 파도가 포인트 주변을 집어 삼킬듯 치고 있어 접안에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이곳에서의 접안은 포기하고 등대 뒷쪽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탔지요.
굿바이 안경섬!
낚시배는 우리를 태운 후 그 자리에 다른 꾼들은 내려주고 떠납니다.
이런 날씨에도 낚시하러 오네요. 아마 야영은 못하리라 생각되고 저녁때 까지만 낚시할 것 같은데 이 분들의 조과가 어땠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이번 야영낚시는 고등어 몇 마리 빼곤 이도 저도 못한 조과였습니다.
게다가 첫날부터 밑밥통에 뜰채까지 잃어버렸는데 밑밥통은 두개를 챙겨왔기에 상관은 없지만 뜰채는 당장 사기엔 자금의 압박이 있어 남은 이틀을
뜰채 없이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언제는 뜰채 댈 일이 있었나요? ^^;
언제나 뜰채를 펴 놓고 낚시하지만 단 한번도 뜰채를 만져보지도 못한 채 돌아오기가 일쑨데 말입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면 뜰채를 안씻어서 편하긴 하지만(지금 무슨 말을..;;) 여하튼 거제도 안경섬은 여서도와 함께 복수전 리스트에 당당히 올랐습니다.
일단 들어가 쉬고 다음날 새벽에 거제도 내만권으로 출조를 나갈 예정입니다. 대상어종을 뭘로 할지는 낚시점에 들러서 작전을 세워보고요.
이 날은 16시간 동안 낚시를 했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컸습니다. 담날 새벽까지는 민박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실컷 자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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