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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cm 조피볼락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우럭 중 50cm가 넘는 귀물을 '개우럭'이라고 말합니다.
수산시장에 나가 보면 60cm 이상 되는 대광어는 쉽게 볼 수 있어도 개우럭은 보기가 상당히 어렵고, 만약 물건이 들어오면 단골에게 전화해서 소리소문
없이 팔아버릴 정도로 귀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 개우럭을 어떻게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역시 회가 제일이다 싶어 회를 뜨기로 합니다.
이날 쿨러에 가져온 것은 광어 세 마리, 우럭 두 마리지만 다들 씨알이 큰 편입니다.
밑에 있는 우럭도 35cm 정도 되는데 개우럭이 워낙 커서 작게 보이네요. 개우럭은 현장에서 내장을 제거해 왔습니다.
저 정도 되는 크기라면 내장에 아니사키스가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겨울에 개우럭 배를 까 보니깐 아니사키스가 두어 마리 나왔는데요.
여름에는 더하면 더할 겁니다. 선상 낚시꾼들은 우럭 내장을 제거 안 하고 그대로 가져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회를 뜰 생각이라면 가급적 내장을 제거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사키스 발병률이 비교적 낮은 우럭과 광어라 해도 개체 수에 따라선 들어 있을 확률이 지금 시기에는 높으니까요.
개우럭 비늘을 칩니다. 우리 집 싱크대가 좁지 않은데 이날은 좁아 보이네요. ^^
저렇게 물을 틀어 놓고 치면 비늘 칠 때 튀지 않습니다. 하지만 숭어, 벵에돔, 감성돔같이 비늘이 큰 어종은 될 수 있으면 미리 쳐서 가져오세요.
가정의 계수대에서 잘못 쳤다간 하수구가 막힐 수 있어요. 지난번에도 하수구가 막혀서 고생했습니다.
찌꺼기를 걸러내는 통이 있지만 이러한 비늘은 걸리지 못한 채 통과하거든요.
광어도 비늘을 치고요. 광어 비늘은 작아서 비늘 치기가 수월한 어종. ^^
개우럭 대가리를 분리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1킬로는 될 듯.
조피볼락(우럭)의 성장은 여타 어종에 비해 빠른 편인데요. 생후 3년 차까지는 폭풍 성장을 합니다.
3년 차가 되면 전장 30cm에 달하므로 양식장에선 출하 사이즈입니다. 우리가 횟집과 수산시장에서 접하는 우럭 대부분이 30cm급으로 크기가 거의
일률적인 이유도 양식장 출하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부터는 성장 속도가 둔화하여 4년 차일 때 35cm, 5년 차일 때 38cm, 그리고 6년 차가 되면
40cm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양식 우럭 중에 35cm가 넘는 개체를 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위 조피볼락은 54cm니깐 대략 8~9년 차에 접어든 것이라 보면 맞을 겁니다. 9년 차라니 대단하죠?
9년 전이면 2002년 월드컵이 열릴 시기였는데 그때 부화가 된 녀석이 이렇게 커서 잡혔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
깔끔하게 손질한 우럭은 포(오로시)를 뜹니다. 그 전에 도마를 소독하고요. 칼도 깨끗이 씻고 포 뜨기에 들어갑니다.
54cm 자연산 개우럭의 1/8 분량을 떼어낸 조각입니다. 두께가 상당하죠?
저 두께에는 8~9년간 성장해 오며 축적된 지방이 들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 우럭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맛이 저 안에 있겠지요.
혹자는 그럽니다. 50cm가 넘어가는 대형 우럭이야말로 '궁극의 회맛'이라고, 개우럭 정도면 돌돔 부럽지 않은 육질을 가진다. 등등 개우럭을 찬양하는
미식가들의 말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도마 색깔이 아름답지가 않네요. 소독해서 쓰는 거라 위생에는 문제없지만, 누렇게 변색된 색깔이 보기가 좀 그렇습니다.
도마도 슬슬 바꿔야겠네요. ^^;
언뜻 보면 이것이 조피볼락(우럭)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거에요.
퀴즈를 냈지만 알아 맞히신 분이 두 분 계셨습니다. 대부분은 제가 써왔던 조행기와 혈합육을 보고 추론했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산 우럭과 양식 우럭의 차이점은 분명합니다. 전에도 몇 번 설명해 드렸지만, 이렇게 큰 자연산 우럭은 혈합육이 붉은색 빛깔을 띠며, 우럭의 특징인
'검은 표피'가 많지 않습니다. (껍질을 좀 더 꼼꼼히 탈피할수록 검은 표피가 많이 붙기는 함)
게다가 근육에는 검은 실핏줄이 거의 없고요. 반면, 양식 우럭은 근육에 검은 실핏줄이 있고 혈합육 색이 짙은 갈색인데다 그 위에는 검은 표피가 있어
전반적으로 까맣게 보입니다. 위 사진에서 저 회가 우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소량이나마 붙어 있는 검은 표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눈썰미로는 알아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거에요.
30cm를 훌쩍 넘기는 우럭은 구이를 합니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횟감이 될 녀석도 우리 집에선 구잇감, 탕감 재료가 되곤 합니다. ^^;
저렇게 손질해서 칼집을 X자 모양으로 낸 다음, 굵은 소금을 뿌려서 튀기는데요.
위 사진은 사진을 찍기 위해 저렇게 등이 위로하게 했을 뿐, 실제로 튀길 땐 뒤집어서 합니다.
그러니깐 저는 생선을 굽거나 튀길 때 껍질 부분이 팬에 먼저 닿게 해서 조리해요. 그래야 안 눌어붙고 살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기름이 튀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선은 자주 뒤집는 게 아니라 딱 한 번만 뒤집는데요.
한쪽 면이 70~80% 이상 익었을 때 뒤집고 나머지 면을 익히는 식으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접시에 올리면
죄송합니다. ^^;;
프라이팬도 코팅력이 다해 요즘 뒤집기가 안되고 있네요. 프라이팬도 빨리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설명은 실컷 해 놓고 ㅋㅋ)
오늘은 회 데코레이션도 엉망이네요. 온종일 땡볕에서 낚시하고 들어오니 더위를 먹었는지 만사가 귀찮고, 얼른 씻고 드러눕고 싶습니다.
그래도 낚시 조행기는 자연산 먹거리로 귀결시켜야 제맛이라는 나름의 신조가 있어 회를 치긴 쳤는데요.
처음에는 나름의 포부가 있었습니다. 마치 꽃잎을 둘러친 것 마냥 아름답게 쫘 둘러치려고 했는데 하던 도중 손도 떨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해서 중간에
막회로 돌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충 담아내니 그래도 명색이 자연산 개우럭과 대광어인데 볼품이 없네요. ㅋ
54cm 개우럭은 충분한 치감을 고려해 얇게 썰어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른 판단이었음)
때깔 보십시오. 저게 우럭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
그래서 저는 앞서 퀴즈에서 '자연산 농어'이거나 혹은 '틸라피아'라고 답변하신 분들의 눈이 예리하시다고 했는데 정말 그것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것이 우럭이라고 말하는 유일한 증거는 아주 약간씩 붙어 있는 검은 표피입니다.
이제 맛을 보겠습니다. 저도 기대가 많은데요. 사실 개우럭이 잡힌 시각부터 지금까지 공수한 과정을 생각하노라면 횟감으로써 좀 불안합니다. ㅎㅎ
왜냐면 아가미를 찔러 피를 뺄 때 해수에 담가 놓은 게 아니라 쿨러에 넣어 버렸기 때문에 피가 덜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집으로 가져올 때는 각얼음 하나만 넣어 왔는데요. 각얼음 하나와 둘은 차이가 상당합니다. 혹자는 한 개면 충분하다. 하지만, 횟감으로 살려 올 생각
이라면 단돈 2천 원을 아끼려다 횟감을 망쳐선 안 될 것입니다. 횟감은 낚시터에서 집으로 가져오는 동안 저온 숙성이 돼야 하는데, 그것은 쿨러의 용량과
생선 양에 비례해서 각얼음 양이 충분히 늘어야만 저온 숙성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온 숙성이라 말하기 어려우며 횟감도 물러지고 맛도 가버립니다.
이날 가장 인기가 있었던 회는 역시 광어. 무난한 맛인 데 비해 개우럭은 뭐랄까. 김빠진 콜라 맛이었어요.
기대가 높아서 실망이 큰 게 아니라, 회 맛의 기본인 씹는 감촉, 살에서 나오는 단맛과 고소한 맛 등등 모두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살은 흡사 스펀지를 씹는 듯 물러져 있었고 비린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맹맹한 맛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선상에서 활어 우럭을 막 쳐서 먹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여름의 우럭은 살도 무르고 지방도 빠져 있어 맛이 볼품없는데요.
이 녀석은 그래도 개우럭이라서 기대를 조금 햇것만, 역시 제철이 아님에는 장사 없나 봅니다.
겨울에 잡혔더라면 맛이 대박이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감성킬러님이 주신 소중한 개우럭인데 이렇게 맛없게 먹어서 죄송하고요. ^^; 이 녀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겠습니다.
개우럭을 뜨고 남은 서더리로 매운탕을 끓였는데요. 이것도 맛이 맹맹 ㅠㅠ
제가 전에 "일식집을 능가하는 매운탕 끓이기 비법"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겨울에 잡히는 몇몇 어종에 한해서는 맹물로 끓여야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선 자체에 기름기가 많기 때문인데요. 굳이 다시를 안 내고 끓여도 기름이 둥둥 뜰 정도로 많으며, 평소보다 더 맵게 해도 기름기 때문에
맵기가 중화되어 칼칼하고 배지근한 매운탕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지금 철에 적용하니 안 되네요. ^^
지금은 멸치+다시마로 육수를 내어 끓이지 않으면 맹물에 고춧가루 푼 맛이 납니다. 그만큼 이 개우럭은 모습만 개우럭일 뿐 기름기가 빠져있다는 것을
이번 실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음식은 실패했고 원하는 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다음에 생선회 관련 글을 쓸 때 지금의 경험이 소중한
데이터가 될 것이라고 낙관해 봅니다.
그런 이유로 이날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저 냄비에 담긴 음식?
처형 부부가 행여나 안주가 모자를까 봐 포장해 온 팔보채. ㅋ
자연산이고 뭐고 저는 이게 제일 맛있었네요. ^^;
54cm 개우럭의 그윽한 때깔 좀 보십시오.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단물인 입안 가득 은은히 퍼져 술이 절로 넘어갑니다.
오늘은 팔보채에 술이 절로 넘어가려다 말아버립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보기엔 상당히 맛있어 보이겠지만, 물컹한 질감에 역시 맹맹하네요. MSG라도 쳐서 먹을 껄 그랬나요. ^^;
다음날 점심, 한번 저온 숙성이 흐트러진 횟감을 가지고 다시 저온 숙성을 한들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혹시나 해서 김치 냉장고에 넣어놓고
다음날 점심에 초밥을 쥐어 봤습니다.
두께가 예술, 살점은 엄청나게 나옵니다. 이 한 덩어리로 초밥 3인분은 쥘 기세.
오늘은 모처럼 네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니, 초밥도 양이 많습니다.
행여나 초밥의 선도가 식을세라 초밥 쥐는 스피드를 올려 봅니다.
두둥~! 자연산 개우럭 초밥과 대광어 초밥 완성!
매운탕은 전날 끓인 걸 재탕 ^^
빛깔 참 곱죠. 비주얼로 보면 고급 일식집에서 쓰는 금박이라도 몇 점 뿌리고 싶습니다.
가운데는 자연산 광어, 양 가 쪽은 자연산 개우럭. 그런데 모양새는 틸라피아. ㅠㅠ
개우럭 뱃살 초밥(좌), 광어 지느러미 초밥(우)
우럭 뱃살은 먹을만하더군요. 그래도 지방이 많은 부위에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있으니.
광어 지느러미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요.
이렇게 보니 피는 제대로 빠진 것 같습니다.
초밥 모양새는 정말 맑고 청초한 느낌이 드는 이미지고요. 그런데 맛은?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먹는 가족들 표정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왜 이래. ㅋ
이거 맛없다고 말은 못하겠고 계속 먹자니 좀 그렇고. 딱 그런 표정이랄까.
먹는 속도가 점점 늦어지더니 은근슬쩍 남기려고 합니다. 저는 동생에게
"이거 정말 귀한 거야, 어디 가서 이런 거 먹을 수 있을 꺼 같아? 많이 먹어 둬"
라며 으름장을 놓아보지만, 몇 피스 먹다가 이내 젓가락을 놓고 맙니다.
평소 음식과 맛에 대해 일절 관심 없는 동생. 미식과는 거리가 아주~ 먼 동생이 맛없음을 느꼈다면 정말 맛없다는 얘긴데. ㅎㅎ;
얼마나 맛이 없길래 그러나? 싶어 제가 직접 시식해 보는데.
"아니 이 맛은?"
우욱~ ㅠㅠ
그래도 이걸 몇 피스나 집어 먹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저는 곧바로 먹던 걸 뱉어 버렸습니다.
광어는 그런대로 먹을만한데 이번 것은 비린내도 납니다. 차라리 횟집에서 파는 양식 우럭이 더 쫄깃하고 맛있을 것 같은 생각.
하지만 그날 맛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음식을 먹고 나니 "광어 다운샷"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초대박으로 맛이 좋았던 이 음식!
광어 순살까스와 직접 만든 타르타르 소스
50cm급 광어의 두툼한 살을 이용해 생선까스를 만들었는데 이게 정말 대박이었지!
이제껏 밖에서 사 먹었던 정체 불명의 냉동 생선까스는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을 정도로 진정한 생선까스의 맛을 보았습니다.
2.5kg 이상의 광어로 만든 두툼한 생선까스. 곁은 바싹하고 속은 부드러운 생선까스의 지조를 보여준 음식.
이걸 생선까스라고 만들어 팔면 초대박이 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팔다간 장사고 뭐고 집안 말아먹을 듯 ^^;
광어 다운샷 하시는 분들 꼭 참고하세요. 이미 해 드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남아도는 광어(?)를 포 떠서 김치 냉장고에 4~5일가량 숙성시킨 뒤 이렇게
생선까스를 해서 드셔 보세요. 아니 남편분께서 직접 만들어 보세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집에서 "낚시가라고~ 낚시가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
"광어까스 강력추천!"
지금까지 저는 '여름에 광어 잡아봐야 맛도 없고' 이 생각만 했는데요. 이걸 먹고 나서 우리 부부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만간 홀로 광어 잡으러 갈 겁니다. 다녀와서 포까지 떠주면 나머지는 아내가 생선까스를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생선까스야 레시피는 뻔하겠지만, 그때 하게 된다면 한번 제대로 만들어 올려보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량으로 제조해서 주위 분들에게 나눠주고
그랬음 좋겠네요. 이상 자연산 개우럭과 대광어가 주는 맛의 반전이었습니다. 다음 조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PS : 취미가 아닌 맛집으로 잘못 발행했네요. 아침에 정신이 없습니다. ㅠㅠ
아니면 우리 집이 맛집이니 대충 맞는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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