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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4년 1월 2일.
비록 새해 첫날은 아니지만, 항공편이 일출 시각과 겹치는 바람에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감상하는 것도 이색적이네요.
국토최남단 마라도에 입도한 우리 부부는 숙소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오후 출조를 준비하는데 원래 가기로 한 곳은 '작지끝'이라는 마라도에서는
제법 유명한 포인트입니다. 이 포인트는 물이 반 이상 빠져야 건너갈 수 있는 간출여로 시간상 일러서 출발을 늦게 했는데 이미 다른 민박 손님이
포인트를 선점했다는 소식이 들려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간 곳은 숙소 앞 갯바위. 이때가 오후 3시.
알려진 포인트가 아니라 조금 실망했지만, 바다에 운을 맡겨보기로 하고요.
어쨌든 새해 첫 출조를 국토최남단 마라도에서 하게 되니 기분이 의미심장합니다. ^^
민박 손님의 오전 조과
밑밥을 개는데 오전에 출조한 손님이 이제 막 철수해 살림통을 엎습니다.
썩 좋은 조과는 아니나 혹돔(맨 위)에 벵에돔 두 마리, 볼락 세 마리를 낚았군요. 볼락은 뜻밖에도 청볼락이 아니네요.
제주권에서 낚이는 볼락은 대부분 청볼락입니다만, 마라도는 일반 볼락도 잘 나온다고 합니다. 일반 볼락이 청볼락보다 좀 더 찬 수온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볼락이 벵에돔과 같은 물에 섞여 논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의 고전을 예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라도 게스트하우스 앞 포인트
이름 난 유명 포인트는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포인트에는 한 사람이 낚시 중인데 그 옆이 비어있어 출조지로 선정.
밑밥은 2~3시간만 할 예정이므로 적당량만 준비했습니다. 저는 크릴 3장 + 파우다 1봉. 아내는 크릴 2장 + 파우다 1봉.
새해 첫수는 어떤 고기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포인트로 진입하는데
올해 첫 출조지가 될 포인트 현장
먼저 온 낚시꾼은 아직 조과가 없는 듯하였다.
한겨울에도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낚시할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1월 초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날씨네요. 낮 기온이 무려 12도나 됩니다.
마라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가 이틀 연속 이어지니 오히려 파도가 없어 걱정이 들 정도예요.
어쨌든 이렇게 좋은 조건에서 낚시할 수 있어 축복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상 악화로 일주일 미뤘던 게 절묘히 맞아 떨어진 것도 같고요.
낚시인으로서 좋은 기상, 좋은 물때에서 새해 첫 출조를 맞이하는 것만큼 설레는 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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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며 이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장밋빛 전망에 웃고 있었죠. 곧이어 닥칠 시련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나저나 포인트 주변이 전부 젖어 있네요. 바다를 보니 너울이 좀 있습니다.
마라도 특성상 이정도 너울은 정말 양호하지만, 잔잔한 바다에서 가끔 들이닥치는 너울 파도는 우리 부부의 옷가지를 적시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떨 때는 갯바위에 부딪혀 솟아오르는 너울이 제 키를 넘기니 카메라가 신경 쓰이는데요.
그런데 발끝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땅을 보았습니다.
"미끌"
햐 이게 다 뭐야. 난감 그자체다.
자세히 보면 온통 김 천지다.
물이 드는 갯바위라면 전부 김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고기를 걸다가 중심이라도 잃으면 큰일 나겠습니다.
발판은 평평한데 온통 김발이라 서 있기 조차 힘듭니다.
아내가 선 자리는 김이 없지만, 여기서 낚시하면 고기를 걸고 파이팅할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너울을 맞을 생각으로(촬영은 어쩔?) 몇 칸을 밝고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너울에 순간 움찔.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김이 껴 내려가던 도중 엉덩방아를 찧고.
한가운에 커다란 수중여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이 역시 여의치 않고
다시 올라와 낚시할 자리를 꼼꼼히 찾는데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 낮고 평평한 자리가 들어옵니다.
아내는 수중여가 가로막고 있다며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수중여는 포인트로서 가치를 높이지만, 이처럼 안으로 만곡진 홈통에서는 대상어가 갯바위
가장자리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천상 수중여를 넘겨서 흘려야 하므로 까다로운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곳 말고는 자리가 없어 밑밥통을 들고 저 아래(사진에서 왼쪽 평평한 곳)로 내려가 봅니다.
이곳도 전부 김 밭. 평평한 곳임에도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자 할 수 없이 가이드님께 연락해 다른 포인트를 안내받기로 합니다.
낚싯대도 못 펴보고 포인트 이동하는 중.
마라도 낚시 포인트
그래서 옮긴 자리는 마라도에서 남쪽에 있는 '장시덕'이란 포인트. 장시덕은 국토최남단 마라도 중에서도 최남단 포인트입니다.
어쩌면 이곳이 대한민국 최남단 낚시 포인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위 지도는 2박 3일 동안 출조한 곳을 차례대로 표시했습니다.
포인트가 멀리 형성됨에 따라 원투력이 좋은 제로찌를 선택하였다.
<<입질의 추억 채비>>
낚싯대 : 로젠기 1.75-530
릴 : 다이와 임펄트 2500번 LB
원줄 : 쯔리겐 프릭션제로 1.5호 서스펜스 타입
어신찌 및 수중쿠션 : 쯔리겐 '급류심장' 0호, 조수우끼고무 M 사이즈.
목줄 : 쯔리겐 제로알파 2호 3m를 직결, 3호를 약 10cm가량을 직결로 덧댐.
바늘 : 긴꼬리 전용바늘 9호
봉돌 : 5번 봉돌 하나로 운용.
마라도 벵에돔 낚시채비가 좀 투박합니다. 이곳 벵에돔은 기본 씨알이 30 후반에서 4짜가 자주 출몰하고 5짜급 대물도 간간이 나와주고 있어 현지꾼들이
사용하는 목줄은 기본이 3호이고 심지어 4호도 사용하는데 대물을 걸면 4호도 속절없이 터진다고 민박집 손님들이 말합니다.
걸기 까지는 문제가 아닌데 걸고 나서가 문제. 수심 낮은 여밭이다 보니 터트릴 위험이 곳곳에 있고 만약 터트렸다 하면 무리를 지어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옆 사람이 터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줄은 굵게 써야 한다는 겁니다.
특별히 목줄을 탄다거나 하지는 않으니 저 역시 최종 목줄은 3호로 마감했지만, 원줄을 1.5호로 사용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이유는 원줄의 강도 테스트를 하기 위함이에요. 4짜를 걸어도 절대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PM 4시, 아내의 새해 첫 캐스팅이 이어지고
너울을 뒤집어쓴 아내, 시작부터 험난하다.
오후 4시가 돼서야 첫 캐스팅을 했습니다. 요새는 5시 30분을 기점으로 급격히 어두워지므로 잘 해봐야 6시까지밖에 낚시할 수 없습니다.
길어야 두 시간. 그 시간 안에 어떤 녀석이든 낚일 것을 기대하면서 캐스팅하는데.
새해 첫 캐스팅의 감격도 잠시, 아내는 얼마 못 가 너울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거참.
언뜻 보면 평화로운 바다처럼 보이지만,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밀려와 갯바위 앞에서 와락 하고 덮치는 너울에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 것입니다.
마라도가 우리 부부에게 텃세를 부리나요. 초반부터 우리 부부에게 대하는 태도가 영 거칩니다.
아내의 새해 첫수가 낚였다.
새해 첫수는 어랭이의 일종인 황놀래기가 되었다.
낚시하기 전부터 '새해 첫수'에 대한 기대를 했는데 맥빠지게 어랭이가 당첨되고.
어느새 해는 수평선 너머로 기울 준비를 하고 있다.
해가 기울면서 벵에돔 낚시에서 최고의 시간이 찾아오고
몇 번 던지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남은 밑밥을 모두 소진하려고 열심히 품질해 보지만, 적어도 이 주변에서는 낚싯대 세우는 장면을 끝내 보지 못하였습니다.
PM 5:30분.
던지는 족족 미끼가 없어져 마음이 불편한 가운데 잡어의 입질 파악을 위해 제 차 던져 시간을 재 봅니다.
그랬더니 1분이면 미끼가 도둑맞고 30초는 미끼가 살아오는 상황. 도대체 어떤 녀석이 깔짝대는 걸까?
채비 회수 전에 혹시나 해서 낚싯대를 슬쩍 드는데 갑자기 꾹꾹 합니다.
"왔다!"
이제야 새해 첫 입질을 받은 입질의 추억.
제법 앙탈을 부리길래 LB 두어 방 주고 살살 달래 봅니다.
몇 번을 꾹꾹 하더니 슬슬 지치는 기색이 보이고 그 상태로 수면으로 띄우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찌가 올라오고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긴꼬리벵에돔. 사이즈는 어림짐작으로 35cm급으로 마라도 씨알치고는 잔 편이에요.
그런데 뜰채가 저 멀리 있어 가지러 가거나 들어뽕 해야 할 상황. 그 순간 갑자기 팅!
"뭐지?"
올려보니 설 걸렸는지 바늘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새해 첫 고기를 이런 식으로 놓치네요. 허무.
서둘러 크릴을 꼽아 던지고 열심히 품질해 봤지만, 이후로 입질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습니다.
물도 차고 입질도 약고. 제가 생각한 마라도 벵에돔 낚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겨우 두 시간 했으므로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게 마라도에서 첫 낚시는 단 한 번의 입질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숙소의 저녁 식탁
철수 후 숙소에서 씻고 나오자 저녁밥이 차려지고 있습니다. 이날 메뉴는 4짜 긴꼬리벵에돔 초밥.
다른 데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초밥이지요. 마침 다른 포인트에서 벵에돔 생포에 성공한 손님들이 이날 저녁상을 위해 풀었습니다.
4짜 긴꼬리벵에돔 회
이러한 회를 두 번이나 비웠습니다. 비슷한 씨알이라도 긴꼬리벵에돔의 회 맛은 낚이는 지역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네요.
회 맛이 좋은 철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인데 고소함은 관탈도 산이 우세했고, 쫄깃함은 마라도산이 우세했습니다.
이유는 마라도 해역의 특성상 빠른 조류가 한몫한 것으로 보이며 근처의 먹잇감, 서식 여건 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김초밥 되시겠다.
기존에 먹었던 김초밥이라 함은 야채 김밥을 몇 줄 사서 그 위에다 초고추장을 듬뿍 찍은 회를 올려 먹는 것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김밥 회였죠.
이곳 마라도에서 긴꼬리벵에돔을 먹는 방법은 단촛물을 섞은 초밥(샤리)을 회와 함께 마른김에 올린 후 생고추냉이를 얹어 싸 먹는 겁니다.
조미 김도 아니고 마른 김 향도 그리 강하지 않아 회 맛을 그르칠 염려가 없는 긴꼬리벵에돔 김초밥입니다. ^^
워낙 벵에돔이 많은 섬이다 보니 4짜 이하는 회를 잘 안 친다고 해요. 어쩌면 분에 넘치는 소리 같지만, 이게 다 자원이 넉넉하기에 가능한 거겠지요.
7~8년산으로 추정되는 개볼락(꺽저구)
마라도에서 입가심은 개볼락으로 마무리합니다. 다른 손님이 우연히 잡았다는 개볼락. 씨알은 언뜻 봐도 30cm는 되어 보이는데요.
보통 20~25cm 사이즈가 많고 30cm가 넘어가는 개체는 드문 편입니다. 그런데 이 개볼락은 좀 다릅니다.
예전에 개볼락의 변종에 관해 한 차례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볼락은 총 세 종류인데, 도감에서는 단일 종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 개볼락은 그중에서 '표준'에 해당하는 종으로 일본에서는 '무라소이(ムラソイ)'라 부르며 개볼락 종류 중에서는 유일하게 40cm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저 정도 씨알은 바다에 많을 것이란 게 제 생각이에요. (관련글 : 개볼락 변종에 관하여)
미식에는 언제나 잔인함과 희생이 따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장면을 눈으로 보는 것과 보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군요.
미안하다. 얘야 ㅠㅠ
예전에 가거도에서 봤던 개볼락의 뽀얀 속살, 이것도 똑같습니다.
보기에도 살이 탱글탱글해 보이죠? ^^
이런 회는 탄력이 강해 최대한 얇게 저미듯이 썰어야 좋은데 칼이 잘 안 드나 봅니다. ^^;
개볼락의 고귀한 살점
돌 틈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개볼락은 성장 속도가 어느 시점부터 느려져 30cm가 넘는 개체는 못해도 7~8년 산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에 떠버린 개볼락 회입니다. 아니 회라기보다는 근육을 썰어놨다고 봐도 무색하네요.
비단결처럼 고운 때깔에 고귀한 기품마저 느껴지는 이미지와 달리 식감은 강인합니다. 그 거친 탄력 속에는 그간 생존해 온 세월의 깊이가 들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씹다 보면 이가 아플 정도예요. 회는 너무 쫄깃해도 문제가 되는군요.
하지만 그 쫄깃함 때문에 오래 씹게 되고, 오래 씹다 보니 속에서 나오는 단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칼이 잘 들었다면 더 근사했을 듯.
두 시간이라는 짧은 낚시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그래서 내일이 기대되는 마라도. 마라도에서 첫 밤은 그런 설렘을 갖고 보냅니다.
다음날 새벽, 우리 부부는 다른 민박 손님과의 포인트 경쟁을 우려해 서둘러 출조를 재촉합니다. 장소는 마라도 유람선이 드나드는 '자리덕'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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