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명물 '모닥치기'는 우리 입맛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서귀포 올레시장

 

제주도에 오면 왠지 해산물과 흑돼지를 먹어야 할 것 같지만, 이번에는 발상을 전환해서 '이런 분식집도 있구나'란 것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서울에 '김떡순'이 있다면, 서귀포에는 '모닥치기'가 있습니다. 서귀포 올레시장에서는 이미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한 예능프로그램이 이 음식을 다루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화재가 된 적이 있습니다.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모닥치기는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칭송받아오다시피 합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고', '지존의 맛', 그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갖다 붙입니다.

어느 누가 홍보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자발적으로 블로그에 올리며 빠르게 입소문이 전파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모닥치기라는 이 독특한 이름의 음식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다녀왔습니다.

 

 

모닥치기로 유명한 세로나 분식

 

여러 가지 음식을 팔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눈에 띄는 메뉴는 모닥치기. 모닥치기는 어떤 음식일까?

 

모닥치기는 떡볶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재료를 떡볶이 국물에 섞어 먹는 음식.

그 원조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둘 다 원조라 자처하는 세로나 분식과 짱구분식이 현재 가장 유명합니다.

가게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다른데요. 한 가지 공통점은 여러 재료를 떡볶이 국물에 말아 먹는다는 점.

모닥치기에서 '모닥'은 제주말에서 파생된 말로 '모두'라는 뜻이며 김밥, 전, 만두, 떡볶이, 달걀 등을 한데 섞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저는 소짜를 주문했습니다.

 

 

어묵 1,000원

 

모닥치기(소) 5,000원

 

서귀포 올레시장의 명물 모닥치기입니다. 혹시 겉모습에 실망하셨나요?

보다시피 여러 가지가 말아서 나온 게 그리 특색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말아먹을 수 있고요.

또 다른 모닥치기 전문점인 짱구 분식은 '튀긴 떡'이 나오니 이곳과 차별이 됩니다만, 맛의 근본은 양념 국물이 잘 흡수된 적당한 감칠맛에 있습니다.

 

 

 

뒤집어 보니 안에는 군만두와 김치전도 들었습니다.

 

 

달걀노른자를 으깨 국물에 휘휘 젖어 먹으면 매운맛이 중화되면서 고소한 노른자의 맛이 느껴집니다.

저는 학창시절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이렇게 해서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들 그런 맛의 추억쯤은 하나씩 있을 것입니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추억이 생각나는 맛 정도.

 

 

여러 재료를 떡볶이 국물에 적셔 먹는 모닥치기, 추억의 맛은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모닥치기의 평은 대부분 호의적이었습니다. 호의적인 정도를 넘어선 표현도 서슴지 않았지요.

 

"서귀포 모닥치기. 너무 맛있어요. 강추합니다."

"지존의 맛입니다."

 

이런 단순한 표현부터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도 눈에 띠었습니다.

 

"떡볶이 국물이 맛있다. 묽기가 적당하면서 맛이 딱 좋다."

'재료가 국물 양념을 제대로 흡수해서 진짜 맛있었다. 나머지 재료도 국물에 적셔 먹으면 맛있게 잘 어울린다."

 

글만 보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봉할 만큼의 맛으로 느껴집니다. 이러한 평가의 주체는 대부분 젊은이지요.

모닥치기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맛의 핵심을 제대로 공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화학조미료가 내는 맛의 균형입니다.

모닥치기를 구성하는 재료인 김밥, 만두는 개별적으로 봤을 때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식이므로 따로 먹으면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맛의 균형을 맞춘 양념 국물의 힘을 빌리면 그때부터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겠지요.

 

김밥 자체는 당근, 햄, 달걀, 시금치 등 기본 재료만 들었는데 떡볶이 국물의 힘을 빌려서 먹으니 맛이 좋다고 느껴집니다.

분식집에서 파는 공장표 만두는 당면과 후추 맛이 전부지만, 역시 떡볶이 국물의 힘을 빌리니 맛이 좋다고 느껴집니다.

맛의 원리는 이러합니다. 떡볶이 국물에는 기본적으로 매운맛을 내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들어가게 됩니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우리 혀가 아파서 느끼는 통각이므로 그것을 중화하기 위해서는 단맛이 항상 따라붙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만으로는 맛의 조화가 어렵습니다. 매운맛과 단맛을 하나로 조화시켜주는 제3의 맛이 필요합니다. 바로 감칠맛입니다.

 

그러므로 꼭 이 음식뿐 아니라 맵고 달달한 양념에는 화학조미료, 다시 말해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들어가야 사람들이 비로소 ' 이집 음식 잘하네.'라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MSG를 스스로 넣어서 먹으라면 절대 못 넣는 사람이 태반이겠지요.

그러니 지존의 맛이라고 강력 추천한 젊은이들은 여태 MSG 맛으로 먹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모닥치기의 맛 비결은 여러 재료를 떡볶이 국물에 말아먹는 맛. 즉, MSG에 말아먹는 맛에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도 언제든지 말아먹을 수 있는 김떡순 같은 음식에 특별히 열광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어졌기 때문인데요.  

자극적인 양념에 길들인 우리의 입맛은 앞으로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할 것입니다. 좀 더 맵고 좀 더 달달할수록 더 많은 MSG가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것에 비례해 염화 소듐(소금) 섭취량도 늘어나겠지요.

 

모닥치기와는 상관없는 이야니다만, 질 낮은 재료로 맛있게 포장된 음식에 계속 열광하면서 우리의 음식 문화는 그렇게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MSG는 인체에 해로운가?를 논하자는 게 아니지요. 질 낮은 음식도 MSG만 넣으면 눈가림할 수 있는 세태에 우리 모두가 노예가 되어 가고 있음을

경계하자는 뜻입니다. 모닥치기는 비록 분식집 음식의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만, 이러한 세태의 단면을 잘 보여주었던 음식이었습니다.

 

"분식집 음식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네. 대충 처먹지, 맛만 있구먼"

 

뭐 요런 댓글이 달린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현실에 안주하는 '안일한 수요'가 지금의 식문화 수준을 대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저는 그러한 식문화에 동참하는 안일한 수요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만 공감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고 싶은 말로 결론을 짓고자 합니다.

 

"이런 특색 없는 음식을 맛집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 역시 MSG의 힘은 위대했다!"

 

추신 : 이것도 맛집이라고 '맛집 카테고리'가 아니면 발행할 만한 카테고리가 없다는 것도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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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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