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 탈출'을 돕는 수산물, 생선회 상식


 

※ 이 글은 지난 7개월 동안 책 집필을 탈고한 수기입니다.

 

아버지는 미식가이자 영화 애호가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영화배우 지망생이기도 했지요.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중학생이었던 저는 을지로, 이문동, 오장동 등을 돌며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음식에 관심 있을 나이는 아니었지만, 미식가이자 영화 애호가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보니 떡볶이나 햄버거를 선호하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이 먹는 음식에도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반지하의 방 두 개짜리 전세에 살았고 넉넉지 못한 형편을 고려한다면,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 맛있는 식사까지, 아버지와 데이트를 통해 나름 호의호식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아버지의 취향 덕분이었지요.

 

생선회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마 이때쯤이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님이 부산 출신이라 어렸을 때부터 수산물과 생선회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린 시절에는 주로 어떤 생선회를 먹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었지 그것이 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기억을 되살려보니 그 당시 자주 먹었던 회는 붕장어(아나고)였고 차례 때는 싱싱한 눈볼대(아까무쯔) 구이를 접했던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생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낚시를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그 시작은 직접 잡은 생선의 이름을 아는 것이었죠.

물론, 우럭이나 광어 같은 생선은 구분에 문제가 없었지만, 낚시를 하다 보니 베테랑 낚시꾼도 잘 알지 못하는 어종이 이 바다에 많음을 알았습니다.

당장 광어와 도다리를 놓고도 '이게 도다리다.', '저게 도다리다.'라며 승강이를 벌이는가 하면, 수산시장이나 횟집 종사자들에게 물어도 한 어종을 두고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이니 말입니다. 소비자인 저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렸습니다.

 

 

일러스트 : 입질의 추억

 

낚시를 즐기기 전에는 밖에서 사 먹는 생선회가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먹은 생선회 맛이 일정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같은 어종, 비슷한 시기여도 말입니다.

의심의 화살은 횟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횟집에서 파는 생선회가 다른 횟집과 차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겉보기에는 깔끔한 인테리어, 정갈한 반찬, 그럴싸한 생선회를 내는 듯했지만, 알고 보니 지금은 판매가 중지된 기름치를 백마구로란 이름으로

팔았고 저는 그것을 참치회로 알고 먹었습니다. 반쯤 녹아서 낸 참치회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웠고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지요.

소스는 기름장이었으니 기름 맛으로 먹는가도 싶었습니다.

 

그렇게 판단했던 자신의 미각이 틀렸음을 알게 된 시기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부터였습니다.

그때는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 하며 술자리가 많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술집에서 먹은 생선회가 참으로 알쏭달쏭하였습니다.

하루는 지인과의 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생선회에 젓가락이 거의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다 녹아버려 흐믈해진 참치회를 먹는 순간 '뭔가 잘못됐구나.'

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회 맛(품질)을 온도로 눈가림할 수 있음을 알았지요. 참치회 뿐 아니라 횟집 생선회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분명, 같은 어종인데 횟집마다 품질의 차이가 확연히 나는 이유에 관해 의심을 품었습니다. 

대게 품질에 자신이 없을수록 갖은 반찬(스끼다시)을 전면에 세워 혀를 무디게 한 다음 가장 마지막에 회를 내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반대로 생선회 품질에 자신 있는 오너셰프라면, 회를 메인으로 냅니다. 이미 다른 반찬으로 배 불려 정작 메인에서 감흥이 죽는 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선회 품질은 무엇에 의해 벌어지는 걸까? 어디서 생선회를 가져다 쓰는지 추적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주방이라도 정탐해야 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제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물증 없는 심증만 갖게 되었죠.

이후에도 저는 생선회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어떤 식으로든 풀고 싶었습니다. 식파라치도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검색'이었습니다. 폭풍 검색을 통해 의문으로 남았던 생선회의 궁금증을 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 보니 되려 의문은 증폭됐고,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생선회 종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터넷 정보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열람된 정보도 많지 않을뿐더러 사실관계 자체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무성했죠.

생선 분야는 일본 포털에서 검색하면 그나마 객관적인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선명한 사진의 부재입니다.

네이버 키친 정보와 쿡쿡 TV는 엉뚱한 생선 사진이 걸린 경우가 종종 있었고 국립생물자원관이나 여타 공신력이 있는 백과사전에는 사진이 오래됐거나

해상력이 떨어져 어종 구별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생선은 카멜레온과 같습니다. 어류를 구별하는 첫 번째 기준은 아무래도 채색과 무늬인데 이것이 물속에 있을 때 다르고 바깥으로 꺼내졌을 때 다르며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 각각 다릅니다. 그런데 도감이나 백과사전은 죽은 생선을 촬영한 것도 많았습니다.

생선이 죽으면 고유한 색이 탁해지고 무늬는 흐려져 판독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이 아쉬워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수산물과 생선회 정보를 만들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것이 '바다낚시'였습니다. 바다낚시는 일반인이 평소 접하지 못했던 어종을 만날 수 있게 해준 통로였습니다.

음식을 논하기 전에 식재료를 알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그 과정을 이해하듯이, 생선회를 논하려면 생선을 직접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직접

해체하여 포를 뜨는 작업을 여러 차례 해야 했습니다. 같은 어종을 계절별로 맛보면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혹은 꾼들이 손 사례치는 물고기를 회로

먹어보면서 '왜 이 물고기는 회로 먹으면 안 되는지'를 피부로 느끼기도 하였지요.

그러한 지적 호기심은 우리나라 생선회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생선회와 수산물 소비가 많은 한국이지만, 여전히 정립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산물 원산지 표시제'와 '원산지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게끔 추진한 이러한 시스템이 현실에서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는 등의 문제. 그리고 한 어종을 두고 중구난방으로 불리는 지역 방언. 상인이 지어낸 명칭.

일부 상인의 비양심 판매와 바가지 상혼까지 오늘날 수산물과 생선회는 소비자로 하여금 불신의 대상이 되었고 정보 또한 혼탁해졌습니다.

그래서 수산물과 생선회에 관해 체계가 잡힌 책을 쓰자는 것이 저의 올 한해 목표가 되었습니다.

 

 

MBC 어영차바다야 촬영 현장에서

 

#. 국민에게 아뢰는 '대국민생선회담'

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만, 올해 2월부터 쓰기 시작한 이 책은 7개월간 집필을 거쳐 출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의에 넘쳐 쓰다 보니 140개가 넘는 꼭지 수로 채워졌는데 한 꼭지의 분량도 제 블로그 포스팅의 긴 스크롤 바처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출판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쓴 책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며 600페이지가 넘어가면 두 권으로 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책의 방향성이 어떻게 잡힐지는 알 수 없지만, 적당히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모두가 즐겨볼 수 있는 수산물, 생선회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확실히 정해졌습니다. 책 내용의 일부는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없는 주제로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 좋은 생선회와 나쁜 생선회

- 초밥을 먹는 방법과 에티켓

- 생선회를 먹는 순서, 꼭 필요할까?

- 하루 지난 생선, 회로 먹어도 될까?

- 회에 품격을 더하는 고추냉이 상식

 

위 내용처럼 굳이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먹는 데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상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수산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상식의 틀을 채울 수 있도록 주력했지요.

그러기 위해 인터넷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고해상도 사진이 많이 들어갈 예정이며, 최대한 쉬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내용은 블로그에 올려진 생선회 이야기를 기반으로 닦았지만, 편집을 통해 재구성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현재 블로그에

수록된 내용 중 시일이 지나 현 상황과 맞지 않거나 혹은 오류가 있는 부분을 잡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사실관계'의 확인이었습니다. 정보의 홍수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수산물, 생선회 분야다 보니 내용의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직접 다니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의 말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상인, 어부, 횟집 종사자들은 저마다 지역색이 뚜렷하며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내용이 굳어져 '명백한 사실'로 자리 잡았으니 이를 믿고 다른 지역에

가 보면 또 다른 소리를 듣습니다. 한 어종을 두고도 명칭 문제, 음식의 사용처, 시세나 가치를 두는 게 지역마다 다르므로 이를 통합할 수 있는 기준점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기준점은 오로지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판단해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객관성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7개월간의 긴 집필을 끝냈습니다. 탈고하면서 느낀 것은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직 알아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은 가운데 책을 끝냈기 때문입니다. 그저 남보다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책을 쓰는 것은 아닌지, 혹은 과연 이 책이

소비자로 하여금 수산물과 생선회의 안목을 높이는데 일조할 것인지.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책을 쓰면서 '확신'보다는 '의문'과 '책임'만을 느꼈습니다.

수 년간 바다를 누비고 다녔지만, 여전히 바다를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산물과 생선회에 관한 모든 지식이 10이라면 저는 이제 겨우 1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머지 아홉은 평생 배워도 깨우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지금도 배우고 있으며 지금까지 알게된 내용보다

앞으로 알게될 내용이 많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내용에 관해 오류를 최소한 줄여서 객관적인 사실로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하는 책임감도 따랐습니다.

 

지금은 블로그와 잡지로 칼럼 활동을 하다 보니 어찌어찌하여 제게 새로운 타이틀이 주어졌더군요.

최근 방송에서는 저를 낚시 칼럼니스트 혹은 어류 칼럼니스트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이 타이틀이 우리나라에서 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명칭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쇠고기만큼 수산물과 생선회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나쁜 먹거리'의 온상에는 유독 수산물과 생선회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이를 근절하려면 상인과 업자들의 자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음식문화 수준이 높아지려면 수산물과 생선회를 바라보는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소비자의 안목을 높이고 생선회 문화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추신

출판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내년 2~3월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나오는 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더보기>>

우리 수산물과 생선의 모든 상식(2014, 12월 업데이트)

국민이 즐겨먹는 '뷔페 생선회'의 실체

생선회를 직접 썰어보자.(회 써는법)

생선회를 숙성하는 방법(숙성회를 먹는 이유)

임산부가 회를 먹으면 위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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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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