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섶섬 벵에돔 낚시(하), 이 가을에 하고 싶은 낚시


 

 

어제 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못 보신 분은 링크를 클릭제주도 섶섬 벵에돔 낚시(상), 한라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힐링 낚시

 

요약하자면, 2박 3일 제주도 낚시 일정 중 첫날을 서귀포 섶섬에서 하게 되었는데 상원아빠님이 제게 도전장을 내밀어 때아닌 토너먼트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출조 횟수가 잦고 또 몇 차례 만족스러운 조과를 얻다 보면 낚시는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기기 마련이겠지요. 심지어 바다에 가기만 하면 뭐든 낚아 올릴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 누구와 붙어도 조과에서는 지지 않을 것 같은 신감이 붙게 됩니다. 그 시기를 저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백과사전에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질풍노도란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으로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생활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된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그와 동시에 감정의 굴곡이 심한데, 낚시에서는 기량의 굴곡을 말하겠지요. 그 동네에서 혹은 몇몇 사람들과 어울려 낚시했을 때 그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와야 할 때라는 점. 그러면 배움의 은혜와 좌절을 동시에 겪게 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겠지요. 

 

물론, 재밌자고 한 말입니다. ^^ 다만, 농담 속에 약간의 뼈는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도 질풍노도의 시기에 해당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고 어쩌면 저 또한 같은 시기를 겪는 사람에

지나지 않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좋은 조과를 내고 누굴 이긴다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사실. 낚시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은 포인트와 상황이 좋은 것이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자신의 실력

탓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 말입니다.

 

 

제법 당찬 씨알을 건 상원아빠님

 

어쨌든 이 시합의 결과는 오리무중으로 가는 듯했습니다. 제가 1:0으로 리드한 가운데 좀처럼 입질을 받지 못하던 상원아빠님이

이때부터 연타로 입질 받는데 받아내는 것마다 씨알이 범상치 않습니다. 낚싯대 휨새만 보면 30 중반은 됨직한 벵에돔임이 분명한데,

초릿대가 오도방정을 떠는 것으로 보아 그 녀석으로 보이는군요.

 

 

표준명 독가시치

 

바로 따치입니다. 같은 씨알이라면 벵에돔보다 따치의 힘이 좀 더 세게 느껴지는데 이유는 지구력이 좋아서입니다.

갯바위 자락까지 끌고 와도 좀처럼 지치지 않는 힘을 보여주는 따치. 손맛은 특출난데 특유의 오도방정한 액션에 강한 지구력까지 있어

초심자가 걸면, 3짜 이상의 벵에돔이라는 착각을 안겨주는 고마운(?) 녀석이지요. 가끔, 따치가 교통사고로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늘이 벗겨지면서 배나 항문, 심지어 꼬리지느러미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평소보다 두 배에 가까운 손맛을 느끼기도 합니다.

 

 

청복, 키타마크라(キタマクラ)

 

채비를 멀리 날린 저는 들어오는 조류에 찌를 태워 중하층을 더듬으면서 들어오는 방법을 구사 중인데 바닥층에서 지극히 잡어스러운

입질이 닿아 챔질해 보니 청복입니다. 청복은 제주도와 대마도 연안, 심지어 규슈 남녀군도에 곧잘 모습을 보이는 복어의 일종으로

따듯한 바다에서 주로 서식합니다. 독성은 복어류 중에서 가장 약한 편이지만, 잡어로 취급돼 식용하지는 않아요.

 

 

저녁이 되면서 슬슬 긴장감이 형성돼야 할 포인트인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없습니다.

왜나 하면, 물때는 끝썰물에서 간조로 향하면서 조류가 멈추었고, 잡어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으며 그것을 뚫고 내리더라도 손바닥만 한

벵에돔만이 입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방을 조심하자는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기존의 1.5호 목줄에서 1.7호 목줄로 올려, 4짜가 넘을지도 모를 긴꼬리벵에돔에 대비합니다.

 

 

그 사이 상원아빠님이 또 한 마리를 걸었는데 이 녀석은 초반에 드랙이 풀릴 만큼 과격한 손맛을 보여줍니다.

연신 눌러대는 녀석의 힘에 대를 새우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원아빠님.

벵에돔이라면 4짜가 넘을 텐데 초릿대를 보니 역시 오도방정을 떠는 것이

 

 

대물 독가시치를 낚은 상원아빠님

 

독가시치였네요. 제아무리 튼실한 독가시치를 잡는다 한들, 스코어는 1:0에서 변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 가눌 길이 없고.

이쯤에서 상원아빠님은 득점권을 전 어종으로 확대하면 자기가 이길 수 있다며 엄포를 놓지만, 그건 안 되죠.

룰은 룰이니까 바꿀 수 없지만, 그 외에도 벵에돔이 토너먼트에서 주는 의미가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토너먼트에서 벵에돔으로 어종을 제한하는 이유는 벵에돔의 습성이 꾼의 실력을 판가름 짓는 변별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조수의 움직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눈에 보이는 무엇이든 입에 넣고 보는 독가시치와 고등어는 마치 수능시험에서 수험생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별다른 변별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낮은 레벨의 문제와 같은 이치겠지요. 

 

경계심이 많고 똑똑한 벵에돔을 꼬셔내야 하는 낚시의 기술. 어지러운 잡어 층을 뚫고 미끼를 내려야 하는 혜안.

조류를 계산해 밑밥을 내 미끼와 동조시켜야 하는 정확성이 요구되는 낚시. 이런 점을 두루두루 만족하는 어종은 감성돔도 참돔도

아닌 벵에돔이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1:1 토너먼트로 꾼의 변별력을 가르는 중요한 대상어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어떻게든 독가시치의 입질 층을 피해 벵에돔을 유혹해야 하는데, 입질이 들어올 듯하면서도 들어오지 않는 묘한

기분이 계속해서 저의 시선을 초릿대 끝 부분으로 가두어 둡니다.

 

이러다가도 한번은 와락! 하며 들어올 것만 같은 입질. 조류가 멈추었다곤 하나 아주 미약하게 흐르는 조수의 움직임에 맞춰 초릿대를

빠져나간 원줄이 구부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 리드미컬한 리듬이 깨지는 순간이 바로 녀석이 미끼를 물고 고개를 틀 때.

일단 먹잇감을 물면 본능적으로 수중여를 향해 달아나는 벵에돔인지라 그때의 속도에 맞춰 원줄이 와락 하고 풀릴 수도 있고 질질

흘러나갈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물이 가지 않아 독가시치가 설칠 때면 벵에돔 역시 시원한 입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원줄이

나가는 입질을 기대하기보다는 바로 저 초릿대 끝 부분에서 방출된 줄의 리듬감이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구부러졌다 펴졌다 하는 줄의 움직임에 미세한 변화가 옵니다. 펴졌다가 다시 구부러지면서 수면에 드리워져야 할 줄이

드리워지지 않고 그대로 일직선이 되더니 스풀에 댄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미끄러져 나가던 찰나였습니다.

한 템포 빨리 대를 치켜세우는데

 

 

 

"왔다!"

 

문제는 독가시치(따치)냐는 것. 대를 바짝 세워 간을 보는 데 힘은 쓰지 않고 마치 쓰레기가 걸린 듯 우둔한 느낌이 그간의 경험으로는

긴꼬리벵에돔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캐스팅 지점은 전방 30m이고 입질 받은 지점은 전방 20m로 그곳의 수심은 섶섬의 지형으로 보아

다소 깊을 것이니 중충에서 걸린 녀석의 시야에는 아직 수중여나 갯바위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최대한 감아 띄워야 갯바위

자락에서 연신 처박는 녀석을 제어할 수 있겠지요. 딸려오는 무게감으로 보아 일단은 기준치인 25cm를 넘겨 보입니다.

 

녀석은 자신이 낚인 줄도 모른 채 딸려오는가 싶더니 발 앞에 당도하자 그제야 사정없이 처박기 시작합니다.

줄은 바짝 조이고 대는 수평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그대로 몇 초를 보내 힘을 뺍니다.

대단한 씨알은 아니지만, 기준치가 넘어가는 시커먼 고기가 수면에 띄워집니다. 

 

 

30cm를 조금 넘기는 긴꼬리벵에돔

 

뜰채를 댈까 하다가 떠밀리는 파도에 실어 들어뽕.

음지에서 찍어서 그런지 사진은 좀 작게 나왔는데 그래도 30cm를 살짝 넘기는 긴꼬리벵에돔이 올라옵니다. 이로써 스코어는 2:0.

사진을 찍고 다시 던지는데 

 

 

상원아빠님이 또다시 입질 받고는 추격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독가시치를 낚으며 득점에 실패하는 상원아빠님. 그 씁쓸한 표정이 사진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 제 마음이 찢어지게

즐겁습니다. ㅋㅋ 독가시치 귀신이 붙었나요? 일부러 독가시치만 낚으려 해도 저렇게는 못하겠구먼요. ㅋㅋ

 

 

이어서 제게는 바닥층에서 뺀찌 한 마리가 물더니

 

 

25cm가 될까 말까 한 긴꼬리벵에돔을 한 수 더하며 낚시를 마무리합니다.

앞서 저는 원하는 대상어를 잡거나 누군가를 이기면 운이라고 했는데..

.

.

 

실은 운 맞습니다. ^^ 다음에는 상원아빠님에게 어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PM 6:00 철수

 

원래는 6:30분까지 하려고 했는데 5:30분 쯤에 배가 오더니 선장이 6시에 철수한다고 하네요.

물때는 간조이고, 잡어는 여전히 물러가지 않으니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해봐야 마릿수가 어려워 미련은 없습니다.

 

 

철수 길에서 바라본 지귀도

 

서귀포의 아름다운 일몰

 

제주 현지꾼들에게는 늘 보는 풍경이건만, 그래도 휴대폰을 꺼내 연신 찍는 모습을 보니 이날의 노을이 특별히 아름답긴 한가 봅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온 이들에게는 오죽하겠어요. 정말 실제로 봐야 느낌이 더 잘 전달될 텐데 언제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입니다.

 

 

흑돼지, 제주시에서

 

흑돼지 김치전골

 

항에 도착한 우리는 이날 잡은 고기 중 잔씨알은 모두 방생하고 나머지를 손질해 비닐에 담았습니다.

숙소는 제주시 연동에 있는 모텔로 잡았는데요. 주말이다 보니 위치보다는 방이 비어있다는 사실에 예약했더니 아 글쎄 연동에서도

가장 혼잡한 바오젠거리 중심에 있는 모텔이라 전용 주차장도 없고 해서 한 바퀴 빙 돌다가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모텔 앞에는 무슨 공연장 같은 게 설치되어 있어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어찌나 시끄럽던지.

 

하여튼 여기서 제주시에 거주하는 독자분이신 즐거워야인생이다님과 합류.

새로 이전했다는 돈사돈을 갔다가 줄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늘봄에서 늦은 저녁을 때웁니다.

 

 

북제주군에 속한 관탈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숙소를 빠져나와 관탈도로 향합니다. 다들 긴꼬리벵에돔을 치러가는 관탈도지만, 저는 목적이 조금 다릅니다.

대상어는 돌돔. 아니 뺀찌라고 해야 정확하겠네요. 예전에 이곳에서 25~30cm급 뺀찌를 마릿수한 기억이 있었는데 절기도 딱 이때여서

기대를 품고 찾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돌돔도 긴꼬리도 없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 난무하는 무법지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10월 초, 관탈도는 전체가 이 녀석들로 낚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게다가 이날 저는 꽝보다도 더 두려운 사고를 치게 됩니다. ㅠ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관탈도 낚시,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섶섬 출조 문의

볼래낭개호(010-217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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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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