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

 

작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바다를 찾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올해 첫 출조를 포항에서 고등어 낚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 시즌을 앞두고 방송가에서 개편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낚시 프로그램의 런칭입니다. 제게 섭외가 들어온 것도 있고, 자문만 맡은 것도 있는데 이날은 모 방송사 낚시 관련 프로그램의 런칭을 앞두고 피디님들과 함께 실전 경험을 위해 고등어 선상낚시를 다녀왔습니다.

 

많은 낚시 중 왜 하필 고등어 그것도 선상낚시를 택했냐면, 아시다시피 지금은 영등철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는 시기죠. 그만큼 좋지 못한 기상과 저조한 어획고로 재미를 보지 못할 시기입니다. 그런 시기에 낚싯대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분들을 모시고 낚시의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생활낚시밖에 없습니다.

 

시기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갯바위나 방파제서 손맛 볼 만한 어종도 딱히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포항 고등어 선상낚시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서도 낚싯대를 한 번도 잡아본적 없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초보 중의 초보가 어떻게 낚시의 재미를 알아가는지 그 현장으로 출발합니다.

 

 

계속된 한파로 한동안 움츠렸는데 이제 정신을 차리고 바다로 나와보니 어느새 2월 중순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2월 대마도 낚시 이후 처음으로 찾는 바다네요.

 

 

학꽁치 낚시를 즐기는 현지 생활 낚시꾼

 

이날 낮 기온은 무려 14도. 여전히 차디찬 겨울 바다지만, 이제는 조금씩 봄 바다의 기운이 느껴지려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해 포항까지 달려왔습니다. 고등어 선상낚시는 오전 7시와 오후 1시로 하루 두 번 출항하는데 저는 오후 배를 타기로 했습니다.

 

 

선장까지 정원 22명의 배지만, 평일이라 다 차진 않았습니다. 출항 때 해경이 승선 인원을 점검하는데 주민등록증을 검사하는 대신 호명하면 주민번호 앞자리를 불러달라는 식으로 점검하더군요. 그 바람에 이날 승객 연령대가 꽤 많이 낮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젊은 친구들과 커플이 제법 보였고, 대부분 장비 없이 빈 몸만 오는 초보가 많습니다.

 

이것이 이 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요. 특별히 낚시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배에서 무료로 대여해 주니 쿨러만 가지고 오면 즐길 수 있는 부담 없는 낚시. 초보자를 위한 여러 유형의 낚시가 있지만, 포항의 고등어 선상낚시만큼 초보에게 특화된 낚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룡포 구평리 방파제

 

최근 포항에는 학꽁치가 가까이 붙었다고 합니다. 학꽁치가 가까이 붙으면 갯바위, 방파제는 잘 되는데 선상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선상에서 학꽁치가 잘 되면, 갯바위와 방파제는 잘 안 되죠. 그건 그렇고 저분은 생활 낚시꾼 중에서도 고수로 보입니다. 저 상그러운 테트라포드를 제집 안방도 아니고 양반다리로 앉아있다니. ^^

 

 

낚싯대에 덕지덕지 붙은 학꽁치 비늘

 

무료로 주어지는 낚시 장비라곤 하나 많이 녹슬어 있습니다. 사용 후 걷어서 세척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배에다 걸어두니 무리도 아니겠지요. 역회전 방지 레버가 돌아가지 않는 릴도 있고 하니 사용에 불편함도 있지만, 고등어 낚시란 게 카드 채비로 내렸다 올리기만 하면 되는지라 낚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날은 모 방송국 피디님들과 함께합니다. 낚시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려면, 우선 '손맛'의 실체를 알아야 하겠지요. 낚시를 무슨 재미로 하는지, 낚시하지 않는 시청자가 보기에도 재밌어 할 만한 포인트는 무엇이 있는지 짚어보자는 취지입니다. 

 

 

유유히 보트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양식장 사료에 몰린 갈매기 떼

 

 

고등어 미끼는 크릴

 

채비는 간단합니다. 배에서 나눠주는 바늘 6개짜리 카드 채비를 낚싯줄에 연결하고, 맨 아래는 추를 달면 끝. 바늘 6개에 일일이 크릴을 꿰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고등어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초보자들에겐 갯지렁이가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고등어는 무리 지어 다니므로 옆에서 한 마리 걸면, 내게도 걸린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수심이야 선장이 알려주는 수심층에 대충 맞추면 되는 것이고, 고등어가 물면 낚싯대가 흔들리는데 그때 릴을 차분히 감아올리면 되니 별다른 테크닉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입질이 빈번할 때는 고등어 입에 꽉 박힌 바늘을 얼마나 신속하게 뺄 수 있는지와 미끼 꿰는 속도에 따라 조과 차이가 뚜렷합니다. 기술보다는 손 빠른 사람이 갑인 낚시인 거죠.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입질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다들 낚싯대가 잠잠합니다. 이러다 바다낚시가 세월아 네월아 하는 취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우려되는데요.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통 입질이 없자 피디님들이 살짝 따분해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입질이 없는 것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고등어는 한낮에는 잘 안 물기 때문에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할 시점을 고대하게 됩니다. 따분해 하는 분들에겐 미리 공표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3시 되면 입질 들어올 겁니다."

 

이러다 안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럴까. 그래도 낚시는 감 아니겠습니까? 저도 낚시 짬밥 좀 먹은 사람인디 ^^; 

 

 

 

드디어 첫수를 거두는 순간

 

초침이 오후 3시를 가리키는 순간. 이제는 들어올 때가 됐는데 했는데 갑자기 제 초릿대가 마구 흔들립니다. 순간 피디님들은 신기해하고 저는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로 3시 되니깐 거짓말처럼 입질이 들어오냐 크크크' 하며 우쭐해 있는데 배 주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피디님 낚싯대도 흔들리기 시작. 

 

 

첫수는 보기 좋게 더블 히트로 낚아 올립니다. 고등어 때깔 좋죠. 씨알은 30cm 정도가 주종.

 

 

오후 3시가 되자, 거짓말같이 입질이 쏟아지면서 저는 본의 아니게 낚시교주가 된 느낌? 무슨 예언이 분초 단위로 맞아떨어지냐 하면서 ㅎㅎ

 

 

하지만 낚시에 익숙지 못한 피디님들은 잡은 고등어를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 제가 대신 바늘을 빼줘야 했습니다. 이는 낚시 처음 하시는 분들이 주로 겪는 어려움인데요. 요령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쉴 새 없이 흔들어대는 고등어를 단숨에 콱 잡아야 합니다. 생각보다 미끄럽고 힘이 세기 때문에 저렇게 목 주변을 강하게 움켜줘서 꼼짝하지 못하게 한 다음, 바늘을 빼는데 바늘이 박힌 방향을 잘 보고 그 결대로 빼내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정 안 되면 플라이어 같은 도구로 확 잡아 뜯는 것도 방법입니다. 고등어가 갑자기 몰리면, 마음이 다급해지거든요. 옆에선 연신 낚는데 나 혼자 이걸로 끙끙 앓고 있으면, 보는 사람도 안타깝고. ^^; 턱이 좀 찢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고등어는 오래 살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뒤처리를 빨리할 수 있을지 이 부분을 좀 더 고민하고 몸에 익어야 마릿수가 됩니다.

 

 

이어서 제게도 한 마리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욕심이 나서 바늘 6개 다 태우려고 했는데요. 지금 상황을 보니 줄 태우는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낚시하면서 옆 사람 뒷사람을 자주 살피는 이유가 고등어 군집이 어떻게 다니는지 보기 위함인데 입질이 한창 들어올 것 같더니 이내 소강상태입니다.

 

아마도 규모가 작은 군집이 잠깐 지나다 몇 마리 잡힌 것 같은데요. 북풍이 불어야 할 겨울 바다에 남동풍이 불고 있어 수온을 떨어트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아무래도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고등어를 만져보니 역시 차갑네요. 여기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날은 낱마리로 끝날 공산이 높을 것 같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날 무렵, 다시 고등어 입질이 이어집니다. 씨알이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피디님들은 생전 처음 해보는 낚시인데도 전에 즐겨본 것처럼 즐거워합니다. 고등어 두 마리가 동시에 올라올 때는 낚싯대가 휘청휘청합니다. 끌어올리면 아주 묵직하죠.

 

 

예부터 남자는 수렵과 채집을 통해 종족을 번식하고 유지해 왔습니다. 지금은 본능이 취미가 되었지만, 남자라면 사냥과 채집으로 성취감을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있다고 봅니다. 손맛을 경험했을 때 십중팔구는 빠져들 수밖에 없겠지요. 처음 겪는 경험이지만, 이때의 짜릿함과 성취감은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덕분에 저도 이날 만큼은 낚시가 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취미인지 새삼 되새겨 봅니다.  

 

 

이날은 조과가 썩 좋지 못해 회를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선장님이 1인당 한 마리씩 갹출 받아 회를 뜨기로 했습니다.

 

 

고등어 손질은 뭐 순식간이죠. ^^

 

 

이 한 접시에 고등어 14마리가 담겼습니다. 잡자마자 망태기에 넣어서 살려뒀기에 아주 싱싱합니다.

 

 

갓 잡아 썰어낸 고등어회의 자태

 

바라만 보고 있어서 아주 막 사랑스러운 빛깔 하며.

 

 

이렇게 떡 하니 한 상 차려졌습니다.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먹어도 맛있고

 

 

이렇게 쌈에 싸 먹어도 별미입니다. 일각에선 숙성회 숙성회하는데 회는 한 가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죠. 어떤 음식이든 한 가지 맛으로만 먹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획일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활어회가 맛이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활어 유통 구조와 수조 환경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갓 잡은 건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에 횟집의 그것과는 구별됩니다.

 

산 고등어를 즉석에서 쳤으니 살이 단단해지는 이른바 사후경직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씹으면 찹쌀떡 씹는 듯 차집니다. 지나치면 질기지만, 고등어는 원래 살이 무른 생선이므로 이때가 적당히 씹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맛보는 자연산 회라 그 맛이 다른 무엇과 비교가 되겠느냐만, 그런 점을 제쳐놓고 맛으로만 냉정히 따졌을 때 고등어 특유의 기름기(지방)가 선명히 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고등어가 가장 맛있는 제철의 시기 중에서도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릴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 시기입니다. 봄이면 알을 밸 것이고, 알을 배면 살은 더욱 물러지고 맛이 빠져 맹숭하겠지요. 등푸른생선이 맛이 빠져 맹숭해지면, 담백함 대신 비린내를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봄 고등어는 일 년 중 가장 맛이 떨어질 시기입니다.

 

지금은 그 시기로 가는 기로에 있습니다만, 여전히 지방이 들어서 적당히 고소하고 차집니다. 계속 먹고 있으니 고소한 맛도 점점 진해지는 듯합니다. 보리밥과 구운 김이 있다면, 크게 한 입 싸 먹고 싶어지는 맛입니다. 마음 같아선 두세 점씩 팍팍 집어 먹고 싶은데 젓가락 든 인원이 많아서 적당히 먹고 낚시를 시작합니다.   

 

 

시간은 오후 4시 반, 철수 시각 30분 정도 남기고 있습니다. 입질은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옵니다.

 

 

한 마리 추가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이상 들어올 같지는 않네요. 선장님에게 여쭈니 저와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북풍 대신 남동풍이 불어 수온을 떨어트렸다고. 이틀 전만 해도 고등어가 적어도 1인당 열댓 마리 식은 잡은 것 같은데 오늘은 1~3마리 조과입니다. 심지어 어떤 커플은 둘이 합쳐서 한 마리. 다른 분들은 많이 잡아야 3~5마리. 가는 날이 장날인가 봅니다.

 

 

우리 팀은 횟감으로 몇 마리 내고 그나마 이 정도 잡았습니다. 혼자 잡아도 시원찮을 양을 셋이서 잡았으니 이날 얼마나 낚시가 안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나마 우리 팀 조과가 가장 낫다고 하시는 선장 말에 위안을 얻고 철수합니다.

 

 

구룡포의 일몰

 

낚시를 처음 할 때는 과연 내가 낚시에 재미를 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뭐든 처음 접할 때의 기억입니다. 음식도 처음 접할 때 입에 안 맞거나 체해서 온종일 고생했다면, 트라우마로 남게 되듯이 말입니다. 영하의 날씨 속에 동동거리는 찌만 보고, 하루 종일 벌벌 떨다가 철수하게 된다면, 낚시는 원래 그런 것이란 인식을 심어놓게 됩니다.

 

지금 시즌에는 감성돔, 벵에돔 낚시가 어려운 탓도 있지만, 뭐든 처음 하는 분들에게는 쉽고 간편하게 손맛 볼 수 있는 어종을 택해야 합니다. 고등어, 학꽁치, 망상어, 볼락 같은 어종이 그래서 좋습니다.

 

피디님들은 4시간의 낚시가 지루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 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낚시가 처음인데도 고등어 몇 마리를 잡아서 만족했는데 실은 이게 가장 안 잡힌 수준이라니 얼떨떨해 하기도 했습니다. 미끼 꿰느라 시간을 지체했을 때 다른 사람이 고등어를 낚으면 마음이 급해지는 심리 경험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산 고등어회는 처음 먹었는데 그 맛도 꿀맛이었고, 무엇보다도 선장이 우리더러 가장 많이 잡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이 모습에서 제가 처음으로 낚시를 시작했을 때 느낀 감정을 되새겼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이날 낚시 체험을 통해 피디님들이 많은 영감을 얻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조행기,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포항 구룡포 고등어, 볼락 선상낚시 문의

동인호(054-276-9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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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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