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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표준명 벵에돔
사진은 벵에돔입니다. 남해와 제주도 낚시인들에게는 친숙한 어종이죠. 국내에서 잡히는 벵에돔의 약 70%가 이 벵에돔입니다. 국내에서는 양식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자연산 치어를 채집해 해상 가두리에서 양식합니다. 대부분 내수용으로 판매하며 일부는 제주도로 수출합니다. 때문에 벵에돔이 잘 잡히지 않는 영등철(2~4월), 고만고만한 크기의 벵에돔이 횟집 수조에 대량으로 들어 있다면, 일본산일 확률이 높습니다.
<사진 2> 표준명 긴꼬리벵에돔
위 사진은 벵에돔보다 더욱 힘이 세고 맛이 좋기로 알려진 긴꼬리벵에돔입니다. 벵에돔보다 비늘 크기가 작으며, 날렵한 체형을 가졌고, 아가미 부근에 검은색 테가 선명히 그어진 점도 벵에돔과 다릅니다.
긴꼬리벵에돔은 국내 벵에돔 조황 중 약 20~30%를 차지하지만, 제주도 및 추자도, 여서도, 마라도에는 벵에돔보다 긴꼬리벵에돔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이유는 서식 환경에 있습니다. 벵에돔보다 좀 더 따듯한 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어류로 서식 환경에 맞는 적합한 수온을 찾아다니는데 앞서 열거한 도서 지역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긴꼬리벵에돔 중에서는 토착성이 강해 섬 주변에서만 서식하는 붙박이 계체가 있는가 하면, 남녀군도 및 규슈에서 발달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1,000km 이상 회유해 국내 원도권으로 들어오는 계체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찬 조류를 타고 다니는 습성이 있어 벵에돔보다 근육이 발달했으며, 같은 크기에서도 일반 벵에돔보다 힘이 더욱 세고 식감이 쫄깃한 이유입니다.
<사진 3> 표준명 긴꼬리벵에돔, 차구레(茶グレ)
그런데 긴꼬리벵에돔 중 먹잇감과 습성이 판이한 계체가 있습니다. 벵에돔 낚시를 즐기는 꾼들은 이를 '차구레(茶グレ)'라 부르는데 벵에돔 낚시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다 보니 일본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차구레에서 '차(茶)'는 갈색빛이 도는 차색을 의미합니다.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은 갑각류를 먹기도 하지만, 주로 해조류(김, 파래 등)를 먹이로 하는 초식성 어류입니다. 색깔은 검푸르거나 청록색을 띠는 것이 일반적인데 차구레는 차색 즉, 적갈색 빛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렇게 색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학술적으로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아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고, 낚시인들 사이에서 추측만 무성한 상태입니다.
차구레의 주요 서식지인 남녀군도는 60~70cm급 대형 긴꼬리벵에돔을 배출하기로 유명한 섬입니다. 그곳에서 70cm에 가까운 긴꼬리벵에돔 기록을 보유한 한조무역 박범수 대표님의 말에 의하면, 차구레는 일반적인 긴꼬리벵에돔과 달리 플랑크톤을 주로 먹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세찬 물살을 타고 다니는 습성이 보통의 긴꼬리벵에돔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갯바위 가장자리보다는 본류대에서 주로 잡힌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도 차구레는 갯바위보다 선상낚시에서 잡힐 때가 많았는데 여기에 제가 생각하는 추론은 이렇습니다. 차구레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주로 먹는 습성 탓에 굳이 해조류를 먹으려고 갯바위로 접근하지는 않는다는 점. 입만 벌리면 동물성 플랑크톤을 쉽게 먹을 수 있어 본류대를 타고 적절한 수온과 먹잇감을 찾아 회유한다는 점. 이러한 점에서 차구레를 국내 갯바위에서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차구레가 많이 잡히는 곳은 본류대(빠른 조류)가 갯바위를 스치는 지역 이를테면, 남녀군도와 대마도, 규슈 일대이며, 국내에서는 세찬 조류가 직접 갯바위에 맞닿는 제주도 일부 포인트와 마라도, 가파도 등지입니다.
차구레는 주로 60cm급 이상 대형 개체에서 나타난다는데 이는 차구레 비율이 많은 남녀군도 특성상 대물이 많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며, 유어기 시절부터 본류를 타고 다니며 플랑크톤을 섭취한 개체는 그때부터 갈색빛이 돌기 시작합니다. 어떤 개체는 보통의 벵에돔처럼 청록색을 띠다가도 군데군데 갈색이 섞여 있어서 앞으로 성장하면서 차구레로 습성 전환이 유력한 개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색깔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먹잇감 성분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학자들이 성분 분석을 통해 발표한 논문이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추론에 불과합니다만, 보통 어류 껍질과 살에 도는 빛깔이 먹잇감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차구레의 갈색도 동물성 플랑크톤에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진 4> 왼쪽은 일반 황새치 뱃살(메카도로), 오른쪽은 붉은 황새치 뱃살(홍메카도로)
앞서 말했듯이 보통의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은 갯바위 조간대에 붙은 해조류를 주로 먹고 성장하는 데 비해 차구레는 1,000km 이상의 해역을 회유하면서 조류에 떠내려오는 갑각류나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으며 성장합니다. 갑각류나 크릴을 익히면 색이 붉어집니다. 바로 '아스타잔틴(astaxanthin)'이라는 항산화 물질 때문인데 연어의 경우 아스타잔틴을 살 속에 합성해 축적해 두는 방식이라 근육이 붉은 것이고, 참돔은 껍질에 축적하기 때문에 선홍색 빛깔을 띱니다.
일본산 양식 참돔이 자연산에 가까운 색을 내는 이유도 아스타잔틴(갑각류)를 사료에 섞어줌과 동시에 가림막으로 햇빛을 완전히 차단해 야생에 가까운 서식 환경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역설하면 햇볕에 노출된 채 길러지는 국산과 중국산 양식 참돔이 선홍색과 거리가 먼 이유도 설명됩니다.
이 같은 사례를 황새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같은 황새치인데도 호주 남부와 남극해 근처에서 어획된 것은 근육이 붉은 '붉은 황새치(홍메카)'로 특별히 여깁니다. 분명 같은 종인데 색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그곳에 서식하는 황새치가 남극해 크릴(동물성 플랑크톤)을 주로 먹음으로써 아스타잔틴을 합성한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긴꼬리벵에돔이 갈색빛이 나는 것도 아스타잔틴에 의한 합성 효과인지는 앞으로 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부분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해조류를 먹고 자란 개체보다 갑각류 및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개체가 더욱 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는 서식 환경의 차이이기도 하면서, 일부 개체의 일탈(?) 및 습성에 의한 것이라 봅니다. 먼 섬에서 자란 벵에돔이면서 해조류 위주의 습성을 지녔다면, 그 개체는 갯내(낚시꾼들은 풋내라 표현하지만)가 날 수도 있음을 경험적으로 느껴왔습니다.
이러한 향은 갓 잡아 신선할 때 회로 먹을 때보다 굽거나 익혀 먹었을 때 좀 더 도드라지게 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낚시꾼의 발길로 때가 많이 탄 연안의 섬 지역은 낚시꾼이 주는 밑밥에 길들인 탓에 밑밥의 주성분인 크릴(동물성 플랑크톤)에 의한 맛의 개선이 분명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70~80년도 시절을 기억하는 낚시 세대는 풋내나고 맛없는 벵에돔으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릴 찌낚시 보급이 급진적으로 이뤄진 90년도 이후 세대들에게는 '적어도 긴꼬리벵에돔은 감성돔과도 안 바꿀 맛이다.'와 같은 상반된 인식을 둡니다.
긴꼬리벵에돔 낚시를 즐기는 일본, 여기에 대마도 및 남녀군도로 원정낚시를 다니는 한국 낚시인의 인식에서도 빛깔에 따른 맛 차이를 거론하는 부분을 종종 듣습니다. 청색 빛이 도는 긴꼬리벵에돔보다 갈색 빛이 도는 긴꼬리벵에돔(차구레) 쪽이 지방 감이 뛰어나고 더 맛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두 유형의 긴꼬리벵에돔을 잡게 된다면 비교 시식을 통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전달할 날을 기다리며, 차구레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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