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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제 조행기에 문제가 되었던 사진 한 장입니다. 그 문제가 사진에 있었다기보다는 글(어쩌면 말투였을지도)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알배기 잡는다고 비난하실 분, 저는 즐거운 토론의 기분으로 환영하겠습니다. 그러나 비난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비난에 합리적인 근거로써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 하나로 38장의 사진과 7,008자의 텍스트를 들여 만든 조행기의 내용은 완전히 묻힌 대신, 산란철 알배기를 잡았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였습니다. 평소 보이지도 않았던 분들, 달리지도 않던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리면서 결과적으로는 언젠가 이러한 사안으로 논쟁을 유도하고 많은 사람에게 인식을 전환해 보자는 제 의도가 조금은 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논쟁만으로는 인식을 전환하기가 어렵습니다. 산란철 알배기 잡이 같은 해묵은 논쟁은 어업 선진국으로 가는 기로에서 우리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과도기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인식이 어떠한지는 글에 달린 댓글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한 명이 지나가던 조선인 몇 명 죽여놓고선 전후 재판 받을 때 일본제국이 조선인 대학살 한 것에 비하면 나는 잘못한게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요."
이렇듯 저를 전범으로 비유한 댓글부터 "그냥 잡았으면 조용히 드세요. "와 같은 일반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제가 잡은 알배기가 법적인 처벌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랑거리는 아니지 않으냐? 그러니 잡았으면 알리지 말고 혼자 조용히 드시라는 논리입니다. 즉, 이러한 행위를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떳떳치 못한 행위로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입니다.
이렇듯 알배기 잡이가 사회적인 금기가 돼버린 것은 모두가 어족 자원을 보호하자는 한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이 문제를 조금 더 파고들면, 우리가 알배기 잡이를 비난할 적법성이나 충분한 근거를 두고 있는지 별도로 따져보아야 합니다.
#. 우리는 먹으면서 알배기를 잡으면 안 되는 이유?
모두가 알고 계시는 그런 문제 때문입니다. 개체 수 감소, 해양 생태계 파괴 우려. 더 나아가 우리가 대대손손 키우고 잡아먹어야 할 주요 어족자원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알배기를 잡으면 개체 수가 감소한다는 판단, 그건 어디서 하는 걸까요?
해양수산부 같은 관련 부처에서 주요 어족자원의 현황을 파악해 실정에 맞는 금어기를 지정합니다. 꽃게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포획을 금지하고, 오징어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등등.. 그렇게 금어기가 설정되면 어부나 낚시꾼들은 그 법에 따르면 됩니다. 어기면 법적인 처벌이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약에 어족자원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금어기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면, 금어기를 수정하고 관련 법을 고쳐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개인이 잡은 알배기를 불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는 링크입니다.
1) 알배기 생선 좋아하는 한국의 딜레마
2) 산란기 낚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辨明
1)번은 두 달 전에 쓴 원문이고 2)번은 그 글을 다듬어서 월간지로 기고한 것이니 어느 쪽이든 일독을 권합니다.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산란철 알배기를 잡는 낚시인의 사진에는 온갖 불편함과 비난을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명란이며, 알탕이며, 온갖 알을 미식으로 즐기고 밥상에 올리고 있음을 잊고 있습니다. 이 비난의 근거는 낚시가 단순히 취미라는 점에 기인합니다. 낚시는 취미 활동이니 잡으면 안 되고, 어업은 생업이니 괜찮다는 인식인데 이러한 어업 면죄부가 오늘날 무분별한 남획을 부추겼고, 솜방망이 처벌로 불법 조업을 재발시킨 원인이란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남획과 불법 조업은 밤바다라는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르게 긴밀히 행해집니다. 이 중에서 적발 건수는 손에 꼽으며, 극히 일부만 기사화되고 있어 일반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매우 열악합니다. 반면에 낚시로 잡은 사진은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끊임없이 우리 눈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기보다는 어족 자원을 보호하자는 대의의 관점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감성돔(내용과는 관련 없음)
#. 어족 자원 보호에 생업과 낚시를 구분해선 안 돼
낚시는 개인의 관점에선 취미지만, 낚싯배는 다른 어선과 똑같이 돈을 들여 어선으로 등록하고 운영하는 생업입니다. 잡는 사람이 선원이 아닌 손님이고, 그물대신 낚시로 잡는다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 남획을 막고 어족자원을 보호하자는 취지라면, 낚시든 조업이든 같은 잣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야 당장 눈에 보이니 불편한 것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산란철 감성돔 잡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뻥치기라는 인근 해역의 씨를 말릴 수 있는 불법 조업으로 대량 학살해 헐값에 팔아넘깁니다. 그 결과 해마다 5~6월이면 동해 및 남해 쪽 횟집으로 알배기 감성돔이 엄청나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한탕주의에 빠진 일부 어민들에게는 돈 잔치가 벌어진 셈입니다.
또한, 충남 서천에서는 해마다 5월(산란철)에 무더기로 잡히는 광어와 도미로 축제를 벌입니다. 지역 축제가 활성화되면 나들이객이 몰리고 관광 소비가 늘어나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산란기에 접어든 광어와 도미, 주꾸미 등이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남획되면서 개체 수가 줄고 있음은 일반 소비자로서 생각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지역 축제를 이용하고, 알배기 생선을 사 먹으면서 개인이 잡은 몇 마리의 알배기에는 죽자고 달려듭니다. '어부가 잡는다고 낚시꾼도 잡으면 되는가?' 같은 논리가 지금까지 통했던 것은 낚시를 단순 취미로 규정해 생계형 어부와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좀 전에도 언급했듯이 국내에 등록된 4천여 척의 낚싯배는 모두 어업 허가를 받고 생업으로 운영됩니다. 그 낚싯배들이 적극적으로 생업 활동을 하면 할수록 지역 경제도 덩달아 살아납니다. 금어기를 지정함에 있어서 낚시업과 어부 그 어느 쪽에도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금어기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우선시 돼야
손맛의 유희로 잡으나 먹기 위해 잡으나 인간의 어로 행위는 어떻게든 어족 자원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족 자원을 보존함에 있어서 생업과 취미가 따로 없는 것입니다. 이미 같은 잣대를 적용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는 해외의 선진 어업국은 알배기를 잡았느냐 잡지 않았느냐의 단순 논리보다는 허용치 안에서 잡았는지로 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수많은 알(날치알, 명란 등)도 금어기라는 법적 테두리에서 어획돼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인데, 낚시든 어업이든 알배기를 잡을 때 금어기 등 관련법을 준수하는지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낚시꾼은 금어기로 지정하지 않는 어종, 예를 들어 감성돔 같은 어종은 자발적으로 방생하고 있습니다만, 그 와중에 한두 마리 잡아 썰어 먹은들 그게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전국적으로 하룻밤에 수백, 수천 마리씩 잡아들이는 불법 조업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또 그걸 사 먹는 수요가 있는 현실입니다. 수요 없는 남획은 없습니다. 알배기 잡이를 비난하더라도 그 수요가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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