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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피쉬(Lucky Fish), 그리스 미코노스
이곳은 지중해식 요리와 그리스식 정찬 요리를 선보이는 호라 마을 중심가에 있는 한 레스토랑입니다. 요리 창작성과 디스플레이가 좋기로 유명한 'M-eating'과 저울질하다가 가격 부담이 있어 선택한 곳이기도 하죠. 차선책이긴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제법 괜찮은 요리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미코노스 여행 일정의 마지막 저녁 식사로 정했습니다. 특별히 드레스 코드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반바지 차림으로 가기에는 좀 그런 레스토랑입니다.
최대한 깔끔히 차려입고 간 시간이 저녁 7시. 아직 해가 걸려 있어 바깥은 여전히 밝습니다. 그리스의 저녁 식사가 8시는 돼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가족끼리 오붓하게 둘러앉아 9~10시 혹은 그 이상 이어진다는 점이 우리의 식탁 문화와 차이가 있습니다. 내부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져 심플한 느낌을 줍니다.
내부는 이런 분위기
서버가 오늘의 해산물을 구경시켜 줍니다. 설명을 해주는데 그날 잡힌 신선한 생선과 랍스타를 사용한다는 내용이겠죠.
오른쪽 생선은 참돔과 90% 정도 닮은 붉돔으로 보입니다. 같은 종인지 유사 어종인지까지 이렇게 봐서는 알 수 없겠죠. 그 옆으로 얼굴이 약간 삐쭉 나온 것은 빨간퉁돔(홍돔). 영어권에선 그냥 다 레드 스네퍼로 통합니다. 맨 오른쪽 붉은 생선은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살살치(솔치우럭)와 비슷하고,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랍스터도 보입니다.
미코노스에서도 이러한 생선은 고급어종으로 취급하니 음식 가격이 매우 비싸집니다. 딱히 정해진 예산으로 여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음 달 카드 청구서를 보고 머릿 속이 복잡해지지 않으려면, 그리스에서 랍스터나 새우, 흰살생선이 들어간 요리는 참아주는 것이 좋겠지요. ^^;
메뉴판은 다이닝 레스토랑답게 심플합니다. (지금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메뉴 중 일부가 바뀌었네요. 계절별로 바꾸는 듯합니다.)
대략적인 물가는 이러합니다. 1인 예산 4만 원 정도는 잡아야 맥주 한두 잔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수준입니다. 파인다이닝급 레스토랑이라 하기에는 저렴하고, 음식도 거기에 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일반 레스토랑보다는 한 단계 격이 있는 인상을 주지요.
메뉴를 탐색하는데 다들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어떤 분은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네요. 골치 아픈 거죠.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해서 제가 한바탕 정리를 해주었습니다. 우선 와인 드실 분은 와인 시키고, 맥주 드실 분은 맥주부터 시킵니다. 그런 다음, 각자 먹고 싶은 메인 요리를 하나씩 시키게 합니다. 메뉴가 어려워서 주문을 포기한 분들은 제가 임의로 주문하는 식으로.
이럴 땐 빨리빨리 선택해주는 것이 모두에게 편하죠. 사실 그리스 음식이 특별한 향신료를 쓰거나 우리 입에 잘 맞지 않은 재료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뭘 어떻게 시켜도 대충 입에 맞는 편이니까요. 참 이날은 일행이 2분 늘었습니다. 동생 지인들이 때마침 이곳에 놀러 와 우리 팀과 합류했는데요. 덕분에 좀 더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서 맛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기본 테이블 세팅
접시는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듭니다. 접시는 곧 레스토랑의 품격이자 수준을 나타내주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합니다.
입가심으로 주문한 그리스의 알파 맥주. 갈증 해소에 좋은 라거 타입이죠.
"반가운 만남, 그리고 우리의 여행을 위하여~!"
다들 목소리가 작군요. 레스토랑이 워낙 조용하니 어디 가서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다들 몸에 밴 듯합니다.
Greek Salad(tomato, pepper, cucumber, olives, capers, onion & feta cheese), 10유로(약 13,000원)
인원은 성인 일곱에 아이가 둘. 그래서 그릭 샐러드를 두 접시 깔고 시작해 봅니다. 재료는 보시는 대로 전형적인 그릭 샐러드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케이퍼와 빵조각이 들어간 점이 다른 레스토랑과 다르네요.
대충 해체해 먹기 좋게 섞어 놓습니다.
Seared scallops(with fennel, pink grapefruit & proschiutto), 20유로(약 26,000원)
강한 불에 구운 관자 요리를 두 번째 애피타이져로 주문합니다. 프로슈토 햄들 깔고 관자와 무화과 절임을 교차로 배치한 디스플레이죠. 가운데는 루꼴라로 보이고, 자몽의 일종인 핑크 그레이프 푸릇을 소스에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건드리면 다칠 것 같은 디스플레이. 일단 눈으로 보고
한 조각 먹어 봅니다. 관자는 미디엄 느낌이 나게 구웠는데 입에 넣자마자 씹을 것도 없이 풀어지네요. 살살 녹아내리는 느낌. 완벽한 굽기입니다. 프로슈토의 씹힘과 달콤한 무화과 절임이 맛과 향으로 지원사격 해주는 느낌. 다들 한 입씩밖에 안 돌아갔지만,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한 접시 더 시킬까? 살짝 고민해 버렸습니다.
Grilled octopus(with "fava" & capers gremolata), 16유로(약 21,000원)
세 번째 애피타이저는 문어구이. 전날 리틀 베니스에서 선셋을 감상하며 맛 본 문어 요리가 강렬했었죠. 누가 만들어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던 질긴 문어였는데요. 물론, 이것과는 몇천 원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함께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벌써 디스플레이부터 시선을 압도합니다. 문어구이에서 가장 중요한 식감이 궁금한데.
표면이 꾸득한 반건조한 문어를 구운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미코노스와 산토리니는 반건조 문어를 많이 사용하죠. 바닷가에는 여지없이 문어를 널어 놓기도 하고요. 해풍에 말려낸 문어를 그릴에 굽는데 한 번 말렸기 때문에 속까지 다 익히진 않았을 겁니다. 예상대로 칼 들어가는 느낌이 부드럽습니다. 입에 넣자 야들야들하게 씹히면서 쉽게 풀어지는데요. 어쩜 문어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을까요?
씹다 보면 문어 특유의 구수한 즙도 느껴지고, 여기에 거품 질감이 나는 부드러운 잠두 퓌레와 짭조름한 케이퍼 그레몰라타가 곁들여져서 문어 구이가 더욱 조화롭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어는 당분간 잊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Penne with Chicken(with Sun-dried Tomato, Fresh Cream and Parsley), 14유로(약 18,500원)
잘게 썬 닭고기와 크림소스에 버무린 펜네 파스타. 맛은 진하면서 덜 느끼해 무난합니다. 펜네를 어설피 삶으면 너무 쫀쫀한데요. 이건 딱 적당합니다.
Salmon in Herbs Crust(Served with Mediterranean Spaghetti), 20유로(약 26,000원)
지중해식 스파게티가 함께 제공되는 연어 스테이크. 스파게티와 연어 모두 아이들이 먹기에 무난한 메뉴입니다.
연어살이 제법 두툼하지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었습니다. 위에는 허브로 만든 크러스트라 되어 있는데 빵가루와 섞은 느낌이 나서 질감을 높여줍니다. 아직은 뭐 하나 실패하거나 허투르단 느낌이 들지 않아요. 가격대에 맞는 품질과 디테일, 적절한 익힘, 좋은 디스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Seafood Orzo(with Crayfish Bisque & Fresh Herbs), 26유로(34,000원)
해산물 오르조입니다. 오르조라는 독특한 파스타가 이 음식의 주재료인데요.
모양이 쌀과 닮아서 리조또로 착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파스타입니다. 리조또 쌀보다 좀 더 두껍고 길쭉한데 씹으면 알알이 씹히면서 탱글탱글한 식감이 재미있죠. 진주담치(홍합)를 비롯해 조개와 왕새우가 충실히 들어갔는데요. 특히, 속살이 붉고 껍데기가 큰 조개는 마치 우리네 백합 조개처럼 씹는 맛도 좋고, 달달합니다.
중간 크기인 이 조개도 아주 신선한 맛. 개인적으로 오르조라는 쌀알 모양의 파스타 식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한참 먹다 보니 다소 짭니다. 음식이 식으면서 짠맛이 두드러지는 건데요. 이 음식은 해물 육수로 바짝 졸여서 그 국물이 오르조에 스며든 만큼 육수의 감칠맛도 풍부하지만, 그만큼 간도 세질 수 있음을 유의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Risotto with Cuttlefish ink(Squid, Fennel, Lemon zest and Parmesan Cheese), 21유로(약 27,500원)
갑오징어 먹물 리조또입니다. 먹물은 갑오징어의 것을 사용했고, 고명으로 올려진 건 오징어인데 어떤 오징어로 사용했는지는 정보가 없습니다. 파마산 치즈가 들어간 크림에 레몬 제스트가 들어가 산뜻한 산미가 나는데요.
무엇보다도 리조또 쌀알이 하나하나 살아있고, 통통 씹혀서 마음에 들었던 요리. 살짝 꼬릿한 치즈 향도 좋고, 오징어 씹는 맛과 먹물 특유의 향이 잘 어우러져 포크를 재촉하게 만든 요리입니다. 산미가 조금 있어서 그런지 은근 중독성이 있습니다.
Grilled chicken(with grilles vegetables & fresh oregano), 15유로(약 20,000원)
무난했던 치킨 요리. 퍽퍽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굽는 기술이 좋아요. 조금이라도 덜 퍽퍽하게 하려고 신경 쓴 것 같습니다. 구운 채소와 함께 먹으니 영양적으로도 균형감이 좋죠.
Beef Fillet(with Mushrooms Saute & Pepper Sauce), 28유로(약 37,000원)
그리고 대망의 비프 필렛. 재빨리 튀겨낸 버섯과 페퍼소스, 루꼴라 샐러드가 함께 제공된 형태입니다.
시어링을 부드럽게 하는 스타일이네요. 설명에는 없는데 수비드해서 그릴 자국만 입힌 느낌도 나고.
미디엄 레어로 주문했는데 얼추 맞춰져 나왔습니다. 썰 때 육즙이 흘러나오면 레스팅을 안 했거나 잘못 한 거죠. 이렇게 전체가 촉촉하게 젖은 느낌이 나면서도 육즙은 흘러나오지 말아야 제대로 된 스테이크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위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정말 살살 녹는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없네요. 충분히 숙성한 육향도 나면서, 씹을 때 팡팡 터지는 흥건한 육즙.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자면, 육즙에 흠뻑 젖은 고기를 씹다 스르륵 풀려선 액체가 되어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했는데 대체로 기복이 적고 안정된 맛을 내는 레스토랑입니다. 미코노스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레스토랑도 있고, 테이크 아웃 전문점도 있지만, 한 번쯤은 분위기와 맛을 음미하며 특별한 식사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신혼여행이나 커플 여행자라면 더욱 그럴 텐데요. 전반적인 물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리틀 베니스의 레스토랑들과 비슷한데 거긴 목만 믿고 음식을 대충 만든다는 느낌이 있는 반면, 이곳은 맛과 품질, 신뢰를 중시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 번은 멋진 드레스 코드로 둘만의 오붓한 식사를 즐겨볼 만한 곳으로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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