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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에서 맞이하는 둘째 날 아침.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깬 것 같은데 어느새 아침입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기절했을까요. 첫날은 소나기가 환영식을 해주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무지개가 반깁니다.
호텔의 목 좋은 테라스에서 먹는 아침 식사.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여유와 행복이라는 바이러스가 이곳에는 충만한가 봅니다. 이러고 앉아서 아침부터 칼질이나 하고 있으니 여행이란 게 좋긴 합니다.
테라스에는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몇 마리의 길고양이가 테이블 주변을 맴돕니다. 하루 이틀 이러는 것도 아닐 텐데 누구 하나 쫓아내거나 박대하진 않아요. 그래서인지 미코노스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대부분 사람 친화적입니다.
얼마 전에 썼던 미코노스의 조식. 매일 먹어도 이런 조식이라면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호텔 조식에 대한 내용은 첨부한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글 : 섬세함과 작은 배려, 미코노스 레토호텔(Leto Hotel) 조식)
지금 리셉션에서는 렌터카 예약이 진행 중입니다. 호텔에서 연결해준 렌터카 업체 직원과 미팅이 있었는데요.
그사이 우리는 호텔 풀장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심각한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 좋은 날..
인원이 많아 8명이 탈 수 있는 미니밴을 빌렸는데 동생이 차를 인수받고 오던 중 갑자기 연기가 나면서 퍼진 것입니다. 인수 받고 달린 지 100m도 안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다른 차들은 문제 없이 지나다니는 언덕길인데 왜 이 차만 퍼졌을까? 현장에서 직원을 불러 얘기하자, 직원은 클러치 조작 미숙으로 손상된 것 같다면서 우리가 배상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동생은 정상적으로 작동시켰고 이제 고작 100m 달렸는데 차가 퍼질 수 있느냐며 따졌지만, 직원은 새 차라 오작동은 아닐 것이라고만 답합니다. 그러면서 일단은 차를 정비소로 옮겨 클러치가 손상된 것인지 보고 연락하겠다며 끌고 갔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해변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전부터 맥주 한 병의 여유를 즐기는 아내와 처형. 이때만 해도 좋았지~
그 사이 딸과 조카는 호텔 앞 해변에서 신나게 놀고.
우리 딸은 모래 놀이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이럴 때 쓰라고 저런 도구들까지 꼼꼼히 챙긴 우리 어복부인님.
저쪽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연상케 한 꼬마 아가씨들은 우리가 아테네에서 미코노스로 넘어올 때 제 뒷좌석에 앉았던 호기심 많은 소녀들인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산토리니로 건너갈 때 이용하던 페리에서도 만났고, 산토리니에서 4박 5일 여행을 마친 후 아테네로 건나갈 때 공항에서도 만나더니, 아테네를 떠날 때도 공항에서 만났습니다. 우리와 여행 경로, 일정이 100% 같았던 우연을 목격했지요.
한동안 이어지던 물놀이에 아이들이 지쳤나 봅니다. 숙소로 들어오자 딱히 할 일도 없네요. 원래는 렌터카로 미코노스 섬 여기저기를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라이트 하우스, 아노메라 마을,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누드 비치(슈퍼 파라다이스비치). 그곳에서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어른들은 파라솔 몇 개 대여해 선텐을 즐기고(누드비치라 벗고 싶은 사람은 벗고, 물론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ㅎㅎ) 하는 식으로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렌터카 사고로 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죠.
이젠 쉬는 일 외에는 딱히 할 게 없습니다. 즐거웠던 아침이 지금은 황금 같은 하루를 통째로 날린 우울한 신세로 전락. 때마침 전날 사두었던 우조가 생각납니다. 우조는 그리스 전통 술로 도수는 40도 정도 됩니다. 겉보기에는 드라이 진처럼 투명한데 물을 섞으면 뿌옇게 변하죠. 희석해서 마시거나 언더록으로 마셔도 되는 술입니다. 허브향이 워낙 강해서 호불호가 있어요. 기분이 우울하니 술이 안 받습니다.
이젠 졸리기까지 해요. 침대에 몇 분만 누워있으려고 했는데(그게 되나) 결국, 이 귀중한 시간을 낮잠으로 허비합니다. 낮잠도 힐링이라면 힐링이겠지만, 렌터카 사고로 인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미코노스 여행을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것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요? 눈을 뜨는데 제 앞에 이런 햄버거가 덩그러니.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서 두 자매가 '기로스코너(Gyros Corner)'라는 곳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사왔다고 합니다. 메뉴는 오징어 기로스와 돼지고기 기로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먹었는데도 상당한 맛이 느껴집니다. 햄버거도 괜찮고요.
우리가 숙소에 있는 동안, 정작 사고를 친 동생 일행은 소형차를 한 대 더 빌려 해변에서 낮잠을 즐기고 왔답니다. 이제는 하루가 저물어가네요. 여행은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힐 수 있는 향해와도 같은가 봅니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지만 않는다면, 그 또한 여행 일부로써 의미를 가질 것이니 지나간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하겠죠. 이번 일로 소중한 시간과 경험, 여기에 포스팅까지 몇 개 날아갔지만, 지금은 훌훌 털고 앞으로의 여행을 이야기할 시간입니다.
다시 뭉친 우리 식구는 근사한 저녁 식사를 위해 호라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미로처럼 얽힌 복잡한 골목길이지만,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곳이죠.
그런데 오늘따라 이 녀석, 도통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동생이 번갈아가며 안고 가야 했죠. 이러다 손타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얼씨구 우린 힘들어 죽겠는데 지는 좋댄다~
미코노스는 고양이의 천국과도 같은 곳. 우리네 길고양이와는 달리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 않아요. 손짓하면 오히려 와서 부비적거립니다. 단지 사람 많고 먹을 게 많은 관광지라서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이곳에 살며 인간에 의해 쫓겨나거나 해코지를 당한 적 없는 기억이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탓일 겁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길냥이들만 유독 사람을 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과거 어르신들이 고양이에 가진 인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죠.
이곳에는 배고픈 길냥이들이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그러다가 손님이 떼어준 빵조각을 먹기도 하면서 그런 습관들이 오랜 세월 몸에 익었을 겁니다. 심지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훠이 훠이~ 손짓하며 쫓아내는 우리나라와 달리 쫓아내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곳 사람들이 고양이를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나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문득 스치더군요.
오전에 미리 봐둔 레스토랑인 럭키 피쉬 앞에 도착했습니다. 7시인데도 대낮처럼 환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첫 손님이 될 것 같은데요.
럭키피쉬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선택한 점도 없잖아 있지만
꽤 합리적인 가격에 그리스식 정찬 요리를 선보인다는 점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모처럼 드레스코드로 분위기를 즐기며 식사할 수 있었던 곳이었죠. 이 레스토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관련 글 : 근사한 그리스 요리를 선보이는 럭키피쉬(Lucky Fish))
아~참. 이날은 동생 지인 두 분이 합류해 일행이 늘었습니다. 벙거지 모자를 쓴 분은 무려 아이돌 그룹이었던 HOT 백댄서였단 사실. 그래서인지 노는 것도 수준이 다르더군요. 그걸 알게 된 시점은 다음 날 아침인데요. 이날 밤, 클럽에서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광란의 댄스를 추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는 후문입니다.
즐겁게 식사하고 배도 부른 상태로 나오는데 또 들어가고 싶게 만든 멋진 레스토랑이 눈에 띕니다. 미코노스에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저 나무가 분위기 잡아주는 데는 정말 갑인 듯해요.
미코노스 하면 쇼핑이 빠질 수 없겠지요. 처형은 여기서 옷을 사고
리틀 베니스로 넘어옵니다. 이날 합류한 동생 지인들이 미코노스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고 해서 제가 안내하기로 합니다.
미코노스 여행에서 이곳이 빠지면 섭하겠지요. 리틀 베니스와 카토밀리 언덕의 풍차 뷰. 문제는 바다가 거칠어지고 있어 잘 건너가 질지 모르겠습니다.
바닷물이 튈 수 있는 상황에도 꿋꿋이 자리를 고수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는 커플들. 혹시 저 뒤는 남남 커플이려나요? 미코노스에서는 남녀커플은 물론, 남남 게이 커플도 흔히 봅니다. 커플이 아니어도 남자 둘이 저렇게 나란히 앉아있으면 커플로 오인하기 쉬운 곳이 바로 게이들의 천국 미코노스이니까요. 어쨌든 하루 중 한 시간이라도 이렇게 앉아서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나가는데.
리틀 베니스와 카토밀리 언덕
타이밍 잘 못 맞추면 물벼락 맞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일이 무슨 게임 같네요. ^^
석양에 노랗게 물든 리틀 베니스(Little Venice)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사진 포인트가 바로 이곳 자갈밭입니다.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리틀 베니스를 담으면 더욱 완벽해지는 곳. 이렇게 사랑스러움이 한가득 느껴지는 공간에 저도 함께 서봅니다. 내일이면 미코노스를 떠나야 하기에 이 기운을 듬뿍 받아가고 싶은 마음이겠죠.
카토밀리 언덕으로 오르는 길
올라와 보니 미코노스의 렌터카가 여기 다 모였군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하루. 그렇게 미코노스의 3일 중 2일이 지나갑니다. 내일은 미코노스에서 산토리니로 이동하는 데만 반나절 이상 걸리니 도착해서 호텔에 투숙하면 그걸로 하루가 끝날 것입니다.
해질녘의 리틀 베니스
이번 그리스 여행 중 온전한 석양을 감상하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있을까요? 미코노스에 도착한 첫날, 황금색으로 저무는 오메가 일몰을 기대했지만, 허사로 돌아갔고, 둘째 날인 이날은 더 많은 구름에 뒤덮여 해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내일은 어차피 이곳에 없으니 됐고, 그다음 날은 산토리니에서 선셋 크루즈를 타고 석양을 감상할 예정이고, 그다음 날은 세계 3대 선셋 중 하나로 알려진 이아마을 석양을 구경갈 텐데 이 모든 계획이 정말 계획대로 될지 기대 반 염려 반입니다.
선셋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저녁 손님이 몰릴 것입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손님맞이에 들어간 어느 레스토랑.
우리는 그 길로 호텔로 돌아옵니다. 예배당이 예쁘죠.
미코노스의 밤거리, 아니 밤 골목이라고 해야 하나
이곳 사람들에겐 이때(5월)부터가 대목일 것입니다. 7~8월은 최대 성수기고, 그러다 9~10월엔 한적해지고 겨울은 내내 비수기에 접어들어 썰렁한 섬이 되겠죠. 어떻게 보면 울릉도와 비슷한 관광 사이클을 가진 섬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부지런히 여행자들을 실어나르는 미코노스행 항공편들
리큐르 상점
얼마 있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벌써 미코노스의 마지막 밤이 왔습니다. 이곳에서 맥주를 종류별로 구입해 숙소에서 홀짝홀짝 마시며 그렇게 마무리될 것입니다. 미코노스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 지나고 생각해보면 별것 아니었지만, 행복했어요~! (다음 편 계속)
※ 추신
렌터카 사고 문제는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그쪽에서는 정비 결과로 클러치 파손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래서 클러치 교체 비용으로 400유로를(약 50만 원) 낼 것인지, 아니면 계약 당시 면책 보험을 들어놨으니 하루 치 요금을 결제한 것으로 끝낼 것인지 선택하라더군요. 당연히 금액적으로 보면 하루 치 요금(120유로)을 낸 것으로 끝내는 것이 나으니 그리 선택하긴 했는데 어째 기분이 좀 찜찜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게 클러치 파손인지 차량 문제인지 우리가 확인할 방법도 없고, 하루 치 요금이라도 우리 측 실수가 아니라면 돌려받고 싶었으나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나라에서 이런 일로 논쟁을 벌이면 좋은 여행에 스트레스만 받을 것 같아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죠. 호텔 측에선 7년간 거래하면서 한 번도 이런 문제로 손님에게 바가지 씌운 일이 없고 또 그럴 업체도 아니라면서 우릴 달랩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넘어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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