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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를 먹을 때 우리 국민이 가장 중요시하는 쫄깃하고 단단한 식감. 그 식감은 활어(살아있는 생선)를 기반으로 합니다. 곧바로 썰어내면 활어회, 포만 떠서 저온에 숙성한 다음 썰어내면 숙성회가 되는 것인데 어떤 생선회든지 식감이란 활어의 활력(컨디션)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활어의 활력'은 무엇일까요? 팔팔하게 살아만 있으면 다 좋은 활력이 아니던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살아있다고 해서 다 같은 활력을 가지진 않습니다. 활어는 자신이 살던 곳(바다 혹은 가두리 양식장)과 가장 유사한 환경에 놓일 때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합니다.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하면, 즉살 이후에도 선도가 오래도록 유지되죠.
그래서 중간 상인들은 산지에서 받은 활어를 수조에 풀어놓고 그때부터 약 2~3일간 수조 적응을 시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순치'라고 하는데 그들만의 은어로는 '이끼가 났다'고 표현합니다. 이끼가 난 활어는 수조 적응이 끝난 것으로 활력이 가장 좋은 상태가 됩니다. 이제 막 활어차에 실려 와 스트레스를 받은 활어보다는 맛과 식감에서 뛰어나다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1) 순치(적응) 완료, 스트레스가 적은 활어 → 맛과 식감이 좋다.
2) 순치(적응) 미완료, 스트레스가 많은 활어 → 맛과 식감이 안 좋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 상식이 반드시 맞는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 죽어가는 생선으로 회를 뜨면 맛이 없어야 하는데 실험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진 1> A급 양식산 참돔
과연 활력이 좋은 활어와 다 죽어가는 활어의 맛 차이는 있을까요? (여기서는 활력이 좋은 활어를 A급으로, 다 죽어가는 활어를 C급으로 임의 지정하였습니다.)
하루는 모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으로 나가진 않았습니다.) 실험 대상은 두 가지입니다.
1) 활력이 매우 좋은 A급 양식산 참돔 2kg (구입비 50,000원)
<사진 2> C급 양식산 참돔
2) 다 죽어가는 C급 양식산 참돔 2kg(구입비 10,000원)
테스트 대상은 모두 '양식산 참돔 2kg'으로 통일했습니다. 또한, 현장에서 즉살 및 피빼기가 선행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죽는 시점까지 통일한 것입니다. 둘의 가격은 각각 5만 원과 만 원으로 5배나 벌어졌습니다. 5배가 벌어진 만큼 맛의 차이도 있기를 바라보면서 실험에 들어갑니다. 오늘 내용은 이 두 가지 실험 대상으로 놓고 똑같이 회를 떠서 제작진들과 함께 시식한 뒤 관능 평가를 할 것입니다.
※ 참고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C급 활어만 모아다가 취급하는 곳이 있습니다. 2~3시간이면 숨을 거둘 것이 예상되는 상태가 매우 좋지 못한 활어들입니다. 그 전에는 수조에서 손님의 오더를 기다려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폐사 직전에 이른 것이죠. 죽어버리면 제값도 못 받으니 숨을 거두기 전에 이런 활어를 모아다 횟감으로 팔아치웁니다. 가격이 매우 저렴하니 초밥집이나 횟집 사장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진 3> 자연산 참돔(선어)
오늘의 실험 대상은 아니지만, 마침 이날 새벽에 잡혀서 올라왔다는 자연산 참돔이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눈알을 보아 당일 잡힌 것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을 듯) 어쨌든 이건 번외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3) 자연산 선어 참돔 5kg (구입비 50,000원)
<사진 3> 세 가지 유형의 참돔회가 한 접시에 담겼다
사진에 a, b, c를 주목하십시오.
a) C급 양식 참돔
b) A급 양식 참돔
c) 자연산 선어 참돔
공정한 맛 평가를 위해 모두 같은 부위를 썰어서 올렸습니다. 이제 실험 대상인 A급 양식 참돔과 C급 양식 참돔을 비교 시식하기로 합니다. 회를 직접 뜬 저는 접시 위에 담긴 회가 무엇인지 알지만, 제작진들은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실험대상이 아닌 자연산 선어 참돔은 일찌감치 탈락하였습니다. 만장일치로 '식감이 가장 무르고, 맛도 없다.'로 결론지었죠. 이유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자연산 참돔은 잡자마자 피를 빼고 즉살해 저온에 보관하지 않는 한 쉬이 물러지는 횟감입니다. 아무리 자연산이라도 선처리(피빼기)와 보관 방법이 적절치 않으면 제맛을 내기 어렵습니다. 상인은 당일 잡힌 것이라며 판매를 독려했지만, 눈알 투명도와 아가미 색으로 보아 어획한 지 하루 이상은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 죽어가는 생선의 회 맛 vs 팔팔하게 살아있는 생선의 회 맛
주요 실험 대상인 'A급 양식 참돔'과 다 죽어가는 'C급 양식 참돔'의 맛 차이는 어땠을까요? 이론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폐사 직전에 놓인 C급 활어가 더 무르고 맛도 떨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 둘의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오히려 C급 양식 활어가 1표를 더 받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아닌 소수의 실험 결과로 일반화하기는 섣부르지만, 제가 맛을 보았을 때도 이 둘의 식감은 사실상 차이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관능적 맛 평가가 이런 사소한 차이를 짚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일반 소비자가 자연산과 양식의 맛 차이를 알기 어려우며, 같은 활어라도 좀 더 팔팔한 것과 죽어가는 활어의 맛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숙성회라면 활어 품질이 매우 중요해
오늘은 어디까지나 '활어회'라는 제한적인 개념에서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A급 활어와 C급 활어의 맛 차이는 없는 걸까요? 활어회는 그렇다고 쳐도, 여기에 시간 개념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시간 개념은 '숙성'을 의미합니다. 똑같이 즉살해 활어로 썰면 활력이 좋은 A급 활어든, 다 죽어가는 C급 활어든 다 같은 활어일 것입니다. 이를 1~2시간 안에 썰면 사후경직(근육이 단단해지는 현상)이 풀어지기 전이므로 식감이 단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활력이 좋은 A급 활어는 사후경직이 유지되는 시간이 대략 5~6시간으로 깁니다.
반면에 폐사 직전에 이른 C급 활어는 사후경직이 유지되는 시간이 극히 짧습니다. 사후경직이 풀어지면 근육이 느슨해지면서 그때부터는 살이 물러집니다. 자연 과숙성이 되면서 식감이 무르고 맛없은 생선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양식산 활어회'를 먹고자 할 때는 활어 상태보다도 가격대비 성능비를 봅니다.
앞서 A급 활어가 5만 원, C급 활어가 만 원이라면, 저는 당연히 만 원을 주고 C급 활어를 사 먹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격 논리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적용되느냐입니다. 잘 모르는 소비자들에게는 C급 활어도 제값 받고 팔게 되겠지요. 이런 내용은 시장에서 알 수 없고 알려주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결국은 본인이 판단해야 할 몫이죠.
이 같은 실험 결과로써 판단해 볼 수 있는 것은 "같은 활어라도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은 전적으로 숙성회에 한해서다."입니다. 숙성회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이나 일식집을 이용하겠다면, 활어 품질이 매우 중요하겠죠. 활어 상태(활력)가 좋고 크기가 큰 활어를 사용하는 것이 숙성회의 맛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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