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몰디브의 수도 말레를 구경한 저는 마미길리로 넘어왔습니다. 비행시간은 약 40분. 몰디브에 온 목적이 참치인 만큼 참치가 가장 잘 잡히는 곳을 수소문해서 왔는데요. 마미길리는 리조트가 없고, 주로 현지인들이 사는 섬입니다. 몰디브 자체가 인도양에 뚝 떨어진 외딴 섬나라인데 여기서 비행기로 더 깊이 들어왔으니 오지나 다름없는 곳이죠.

 

그나저나 몰디브의 아이들은 자기 나라의 지도를 어떻게 그릴지 난감하겠어요.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영토가 없어서 대략 형상화한 몰디브 지도가 있을 것으로만 추측합니다. 


 

마미길리 공항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마미길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6일 정도 보낼 예정입니다.

 

 

숙소에서 픽업 차량이 와서 우릴 안내했습니다. 도착하자 웰컴 드링크로 코코넛을 마시는데 이때의 맛은 시중에 파는 코코넛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코넛 특유의 닝닝한 맛 아시죠? ^^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방을 3개 예약했는데 그중 하나가 수도 공사 중이라 다른 방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방은 예약이 차서 할 수 없이 저와 모하메드(현지 코디네이터)는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묶게 되었죠.

 

 

다행히 택시로 3~4분이면 닿는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걸어서 가기에는 애매한 위치라 줄곧 콜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를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요. 섬에는 택시가 몇 대 다니지 않아서 택시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보통은 숙소 직원이 콜을 해주는 방식이죠. 그렇게 해서 저와 모하메드는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여정을 풀었습니다.

 

 

방 구조는 더블 배드 하나에 간이침대 하나로 되어 있는데요. 더블 배드를 놓고 서로 양보 혈전을 벌이다 모하메드가 한사코 양보하는 바람에 저 혼자 더블 배드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4시부터 일어나 참치잡이 첫 여정을 시작합니다. 선장을 비롯해 선원들과 인사하고 배에 오른 시각은 5시. 그 길로 배는 참치 미끼가 되는 작은 베이트 피쉬를 잡기 위해 잔잔한 환초 구역으로 들어옵니다.


 

낡은 참치잡이 어선이라 시설과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이 배에 탄 선원은 어림잡아 7~8명이나 되는데 그중 네 명은 이런 침실을 이용합니다.


 

발전기가 보이고요. 하늘색 파이프를 통해 바닷물을 끌어다 물칸에 채웁니다.


 

인도양 한복판에서 맞이하는 일출

 

이날 참치잡이는 우리 말고 또 있었습니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참치를 잡는 방법도 거의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참치 미끼가 되는 베이트 피쉬를 잡기 위해 항에서 한 시간 정도는 달려와야 합니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는데 보시다시피 배가 구식이고 느려서 스피드 보트로 20분이면 닿는 곳을 참치잡이 배는 한 시간이나 걸립니다.

 

 

이윽고 미끼 포인트에 들어왔습니다. 주변에는 산호로 이뤄진 환초로 둘러싸여서 바다가 잔잔합니다. GPS는 한국 제품이네요. 물속에 암초도 표시해주는 것 같습니다. 현재 배가 있는 부근은 암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변에는 196 같이 숫자로 수심을 표기했는데요. 단위는 피트(ft)인 것으로 보입니다. 196피트면 약 59m 정도 나옵니다.

 

 

바다로 직접 들어가 스노클링으로 군집을 찾는 중이다

 

참치 미끼는 가다랑어가 좋아하는 특정 어종의 군집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두 명의 선원이 직접 수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가야 합니다. 장비는 다름 아닌 스노클링입니다. 보통 스노클링 하면 바다에서 즐기는 레저를 떠올리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계용인 셈입니다.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선원은 바다에서 배로 연결된 밧줄을 잡은 상태로 어군을 탐색합니다. 이때부터 배는 마치 트롤링 낚시하듯 속력을 줄여 두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어군을 찾았다는 신호가 들어오면, 나머지 선원들도 뛰어내립니다.


 

그리곤 어군을 가운데 두고 포위하죠. 이때 한 사람이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 떼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몹니다. 빵조각을 주면서 한 자리에 묶어두기도 하고요. 그러는 사이 그물이 내려집니다.

 

 

저쪽 참치잡이 배도 우리와 같은 작업을 하나 봅니다.

 

 

노장의 선원이 올라와 수신호를 보냅니다. 이제 그물 위로 물고기 떼가 올라탔으니 걷으라는 겁니다.


 

이때부터 배에 남아 있는 선원이 그물을 올리는데요. 올리는 와중에도 철저히 수신호에 맞춰야 어느 한쪽이 과하게 끌어올려 중심이 틀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양쪽에서 똑같이 끌어올린 그물에는 반드시 물고기 떼가 담겨야 합니다. 실패하면 물고기 떼는 흩어질 것이며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실은 이때가 두 번째 시도였습니다. 그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기껏 잡은 물고기 떼가 죄다 빠져나가 버린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분은 영화배우를 해도 될 만큼 강직하면서 우직한 분위기가 납니다. 이렇게 보니 캐리비안 해적의 한 장면 같기도 ㅎㅎ


 

이후로는 촬영 중이라 선원들과 함께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잡힌 물고기를 뜰채로 퍼 물칸에 실었습니다. 이 과정을 두어 번 더 하니 물칸에는 어느새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로 바글바글합니다. 참치가 좋아하는 미끼 잡이는 이걸로 끝입니다. 그런데 이 물고기가 뭔지 아십니까? 

 

 

표준명 샛줄멸

 

우리나라에도 잡히는 샛줄멸입니다. 샛줄멸은 농어목 청어과의 생선인데 멸치와 비슷하게 생겨서 제주도에서는 '꽃멸치'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주도에서 '멜'로 일컫는 멸치와는 다른 종이죠. 제주도에서는 주로 회나 무침, 튀김으로 이용합니다. 샛줄멸은 우리나라 남부와 제주도, 일본 남부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지만, 베트남과 몰디브 같은 인도양에도 폭넓게 서식합니다.

 

지난주에는 성난 물고기 베트남 편을 촬영하고 왔는데 그곳에서 피쉬 소스의 재료인 늑맘을 촬영하다가 원재료인 작은 생선을 보았습니다. 현지에서는 까껌(Ca Com)이라 부르는 청어과의 작은 물고기인데요. 그것도 샛줄멸이란 사실을 아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베트남 음식 열풍이 불어 많은 이들이 피쉬 소스를 찾습니다.

 

피쉬 소스의 근본이 되는 늑맘은 몇 종류의 생선으로 발효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생선이 바로 샛줄멸이란 사실. 그러고 보면 샛줄멸은 작아도 작다고 얕볼 수 없는 참으로 고마운 생선입니다. 


 

한바탕 미끼 잡이가 끝나자 선원들은 그제야 여유를 찾았습니다.


 

아침 식사는 몰디브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마쑤니(Mas Huni)로 해결합니다. 전날 잡은 참치를 삶아 으깬 뒤, 코코넛 가루와 라임즙, 다진 양파와 고추, 커리 잎을 섞어 잘 버무린 것입니다. 이것은 인도의 난과 비슷한 자파티에 싸 먹기도 하고, 지금처럼 빵에 싸 먹기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블랙티(홍차)와 함께면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되죠.

 

몰디브의 전통 아침 식사인 마쑤니에 관해서는 어제 자세한 글을 썼으니 참고 바랍니다.

관련 글 : 몰디브 어부들이 먹는 이색적인 아침식사, 마쑤니(Mas Huni)

 

 

이제 배는 참치 포인트를 위해 이동합니다. 참치는 외양성 어류라 환초로 둘러싼 지역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내만권과 원도권을 지나 좀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최소 3~4시간이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헉.

 

저와 제작진은 카메라를 끄고 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쉬기로 합니다. 시설이 열악하니 적당히 자릴 잡고 있을 만한 공간이 없었죠. 갑판에는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선실에는 선원들로 찼습니다. 2층 조타실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서 잠이 들었는데요.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5~6시간이나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아직 참지 잡이가 시작되지 않은 걸까요? 자초지종을 묻자 선장과 부선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까지 조업하면서 봐둔 참치 포인트가 있는데 오늘은 참치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주로 갈매기 떼가 꼬이거나 보일링(수면에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뒤엉켜 먹고 먹힐 때 물이 끓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찾아야 참치잡이가 시작되는데 지금으로써는 계속해서 찾는 중이라고만 합니다.

 

 

그렇게 배는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달렸고, 저와 제작진들이 발만 동동 굴리는 사이 한 선원이 미끼로 잡은 샛줄멸을 도로 퍼 올리고 있습니다. 참치 줄려고 잡은 미끼를 어째서 도로 퍼 올리시는지? 알고 보니 이걸로 식사 준비를 하려는 거랍니다. 헐~ 그렇다면 오늘 참치잡이는 이대로 끝난 겨?

 

 

시간도 시간인지라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 주방에는 말린 고추를 굽고 있었고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참치 미끼로 잡은 샛줄멸을 그대로 기름에 넣고 튀깁니다.

 

 

바삭하게 튀긴 샛줄멸 튀김

 

강성범 씨에게 건넨 밥을 맛보는데요. 과자처럼 바스러질 만큼 바싹하게 튀긴 샛줄멸을 밥 위에 올려 먹는데 그 맛이 진짜 기가 막혔습니다. 이어서 저한테도 밥이 오나 싶었는데 하필 이때 샛줄멸 튀김이 다 떨어져서 새로 튀긴다는 것이 


 

이런 상태입니다. 튀기다 만 샛줄멸이라 식감은 물컹, 가시도 씹히고 맛도 비립니다. 그러니 사람은 어딜 가나 줄을 잘 서야 한다는 ㅎㅎ 그나저나 지금 반찬 타령할 때가 아닙니다. 3~4시간만 가면 시작하는 줄로만 알았던 참치잡이가 6~7시간이 지나도 시작할 기미가 없습니다.

 

모하메드를 통해 선장의 의중을 엿들은 결과로는 참치 포인트에 참치가 없었다 입니다. 가는데 세 시간이니 오는데도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참치잡이는 이걸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완전 허무)


 

섬 근처로 돌아오자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다의 표정이 변화무쌍합니다. 맑았다가 흐렸다가, 오는 동안 비가 내렸다 금새 개었다가. 촬영으로 온 몰디브라 아직은 몰디브에 온 기분이 나지 않아요. 저기 보이는 무인도의 백사장에서 마음껏 수영하고 스노클링을 즐긴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저 그림의 떡, 가까이 있어도 먼 당신입니다.

 

 

수평선에는 무지개가 선명히 떴습니다.


 

알고 보니 쌍무지개였네요. 저 무지개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서 수평선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 무지개가 그곳에서 기다려줄까? 하는 생각을 어렸을 적에 많이 해보았지요. ㅎㅎ


 

반대편은 스콜이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맞아봐서 아는데요. 바다에서 만난 스콜은 무시무시합니다. 목욕탕에서 버튼을 눌러 내리는 폭포수 같은 물줄기 있죠. 딱 그거 맞는 기분입니다. 얼마나 따갑던지. 저는 비를 맞고 살이 따가울 수 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근방에는 식당이 없고, 뭐 하나 먹으려면 택시든 뭐든 타고 나가야 하니 할 수 없이 숙소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데요.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시킨 식당 음식 같습니다. 가운데 세 접시는 참치와 닭고기, 돼지고기가 들어간 몰디브식 크로켓인데 먹을 만합니다. 사실 튀김이란 음식이 어지간하면 맛이 있으니.

 

위에는 그릭 샐러드라고 해서 시켰는데 너무 조악하고 비슷하지도 않아서 웃음부터 나왔습니다. 그 옆은 볶음밥인데 이게 우리에게는 가장 베스트 메뉴였습니다. 문제는 배달 음식이 너무 느려서 주문하면 1시간 30분 뒤에나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미리 시켜놓고 각자 정리하고 샤워하고 나와도 한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왼쪽부터 나, 방피디님, 성범이형, 명피디님

 

하루를 허무하게 말아먹었지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어서 표정이 밝았던 걸까요?

 

"그래 우리에게는 남은 날이 많으니까. 아직은 기회가 있어"

 

그런데 내일은 배가 안 뜬답니다. 왜냐니 금요일이라고. 이슬람 국가에서 금요일은 공휴일. 모든 상점은 아니지만, 대체로 문을 닫으며 낚싯배를 비롯해 어부들은 쉰다고 합니다. 빨리 참치를 잡아서 방송 분량을 채우고 남은 일정은 느긋하게 보내고 싶은데, 막상 현장에 와보니 모든 여건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배가 뜨지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의 삶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 이왕이면 100% 리얼로 가자는 말에 순간적으로 움찔합니다. 섭외도 없이 그냥 되는대로 찍어보자. 어떤 그림이 담갈지 전혀 예상되지 않는 내일 일정에 마음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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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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