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EBS <성난물고기> 촬영 일기를 이어갑니다. 저와 강성범 씨, 그리고 스태프들은 이날 참치 낚시 재도전에 나섰습니다.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낚시 전용선이 아닌 어선을 타고 나갑니다. 하루는 배에서 어부들이 뭔가를 꺼내 습관적으로 입에 넣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낡은 나무통에는 알 수 없는 물건으로 가득한데요. 바로 몰디브인들의 독특한 후식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빈랑나무 열매(Areca Nut)

 

이것은 빈랑나무 열매입니다. 현지에서는 영어명인 '아레카 넛츠', 또는 '아리카 넛츠' 정도로 불리는데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기호식품으로 소비되는 향정신성 열매라고 합니다. 도토리 모양으로 만져보면 너무 딱딱해서 씹을 수 없습니다.

 

부선장 역할을 맡은 바쿠루 씨는 품질이 좋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를 알려주는데요. 사진에 오른쪽은 품질이 좋은 빈랑나무 열매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고기에 마블링이 가득 찬 것처럼 보입니다. 왼쪽의 것은 품질이 나쁜 것입니다.  

 

 

바쿠루씨는 작두처럼 생긴 칼로 열매를 얇게 저밉니다. 저도 따라 해 봤는데요. 보기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손을 다칠 염려가 있어 칼질 자체가 위축됩니다. 바쿠루 씨는 능숙하게 잘라다 입에 털어 넣기를 반복합니다. 심심할 때면 어김없이 나무통을 열어 작두 칼로 열매를 오려내 씹곤 하는데요. 저도 몇 번 씹어봤습니다만, 맛은 떫고 텁텁했으며 그 외에 향이나 맛은 딱히 느껴지지 않은 나무껍질 씹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나 씹다가 뱉어야 할지 정확한 시점을 몰랐는데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몰디브인들은 왜 이런 걸 씹는 걸까요?

 

 

몰디브 수도 말레의 현지 식당에서 접한 빈랑나무 열매와 곁들여 먹는 구성품들

 

제가 몰디브로 떠나기 전, 이러한 몰디브의 독특한 후식 문화에 관해 알아보았습니다. 몰디브 현지인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이것이 생각나서 요청하자 위 사진처럼 내어줍니다.

 

 

또 다른 식당에서 제공받은 빈랑나무 열매와 그 구성품들

 

또 다른 식당에서도 '씹는 것'을 요청했더니 역시 비슷한 구성으로 내어줍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빈랑나무 열매는 몰디브에서 대중적으로 즐기는 기호 식품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먹는 걸까요? 구성품에 관해 하나하나 살피면 이렇습니다. 사진의 번호를 주목해 주십시오.

 

1) 빈랑나무 열매(아레카 넛츠)

2) 베틀후추의 어린 잎

3) 카다멈(Cardamom) 가루

4) 석회질 크림

 

베틀후추잎은 후추나무와는 상관없는 덩굴식물입니다. 인도가 원산지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기호품으로 재배된다고 합니다. 잎을 씹어보면 특유의 강렬한 향이 납니다. 그 향은 민트와 고수, 각종 허브 등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의 곱하기 8배 정도는 되보이고, 끝 맛은 맵고 알싸합니다. 인도에서는 '빤(Paan)'이라 부르는데요. 식후에는 담배 대체재로 씹는 문화가 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함께 제공된 재료를 모두 넣어 쌈 싸먹습니다. (몰디브에도 쌈 문화가? ㅎㅎ) 먼저 베틀후추잎에 석회질 크림을 일정 분량 바릅니다. 석회질 크림은 굴 껍데기와 산호를 갈아 만든 것인데 그냥 먹어보니 생전 처음 느끼는 역한 향이 납니다. 쉽게 말하자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상해버린 화장품(아이크림 같은)을 먹은 기분이랄까요?

 

조금 더 집중해서 맛의 포인트를 짚어보면, 바다의 짠기가 느껴지면서 홍어 삭힐 때의 암모니아 향도 느껴집니다. 현지인의 먹는 법대로 따라해 보긴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맛이 날지는 상상이 안 됩니다. 

 

베틀후추잎에 석회질을 바르고 여기에 빈랑나무 열매 2~3점을 올린 뒤, 마지막으로 카다멈 가루를 뿌립니다. 카다멈은 인도가 원산지인 생강과 식물로 주로 가루를 내어 약재로 쓰거나, 커리의 재료인 마살라 파우더에도 쓰이며, 제빵에 향신료로 쓰입니다. 첫맛은 시나몬과 비슷한데 약간 쿰쿰하면서 맵싸한 큐민 향도 느껴집니다.

 

이렇게 재료를 다 올리면 잘 감싸서 한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습니다. 계속 씹으면 침이 나오는데요. 그 침은 삼킵니다. 삼킬 때의 맛도 온갖 향신료로 물들어서 오묘한 맛이 나는데요. 이렇게 설명해도 무슨 맛일지 상상이 잘 안 가죠. 그만큼 우리로서는 생전 접하지 못한 낯선 향입니다. 빈랑나무 열매 자체는 맛과 향이 덜한데 씹으며 씹을수록 살짝 단맛이 나기는 합니다.

 

입안에 감도는 향은 대체로 베틀후추잎의 강렬한 향이 지배합니다. 어느 정도 씹다가 뱉었는데 입안이 살짝 얼얼합니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어른들이 즐기는 기호 식품이니 이 맛을 잘 모르는 저는 돌연 어린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왜 이런 문화가 생긴 걸까요? 저는 이곳 사람들이 즐기는 후식 문화를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몇 점 더 씹어보았습니다. 여전히 낯선 맛이지만, 그 낯선 맛을 음미하면서 이곳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짚어보려 애씁니다.

 

몇 번 씹어본다고 해서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씹어 본 사람들만큼 알 수는 없지만, 주전부리를 대하는 심리는 어느 나라든 비슷비슷할 것입니다. 입이 심심할 때 뭔가를 씹고 있으면 긴장도 풀리고 뭔가에 집중할 수 있게 되겠지요. 계속 씹을 때 나오는 즙과 향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그 맛을 즐기려고 더 자주 씹고, 더 오래 씹으려고 할 것입니다.

 

가장 큰 효과는 '각성효과'입니다. 일 년 내내 더운 기후에서는 식후 졸음을 쫓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빈랑나무 열매는 택시 기사를 비롯해 노동자들이 즐겨 씹던 후식이기도 합니다.  

 

 

사실 빈랑나무 열매를 씹는 문화는 몰디브뿐 아니라 인도, 북아프리카, 대만과 몇 개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행해지던 전통이자 풍습이기도 합니다. 현지 코디네이터인 모하메드 씨의 말에 의하면, 초기 몰디브인들은 허리춤에 빈랑나무 열매를 담고 다니다 친구든 지인이든 만나면 하나씩 건넸다고 합니다. 마치 학교 화장실에 모인 친구들에게 담배를 권하듯이 말입니다.한, 결혼을 프러포즈한 사람에게 승락의 의미로 이 열매를 수여한 것으로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후식 문화는 놀랍게도 전 세계 인구의 1/3이 즐겼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이러한 풍습과 습관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빈랑나무 열매를 많이 씹으면 구강암과 식도암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말이죠.

 

대만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있습니다. 빈랑나무 열매를 석회를 바른 베틀후추 잎에 말아서 씹어 먹는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한참 씹다 보면 열매에서 나오는 붉은 색소로 침이 붉게 물드는데 이러한 이유로 대만을 비롯해 동남아 국가의 길거리에는 붉은 침 자국이 종종 보인다고 합니다.  

 

 

참치잡이 어선의 선원은 총 8~10명. 선장부터 말단 선원까지 서열 관계가 확실합니다. 그 서열은 나이순이 아닌 경력순입니다. 젊은 선원이 나이 지긋한 선원보다 선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에서 맨 오른쪽인 바쿠루 씨는 부선장이라고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선장이 쉴 때마다 키를 잡았고 배의 지분도 함께 보유한다고 하니 거의 부선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이 분의 삶입니다. 바쿠루 씨는 사실 몰디브에서도 몇 안 되는 재력가입니다. 특급 리조트를 다섯 채나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형은 몰디브에서 매우 유명한 정치인입니다. 집안 자체가 일반 서민과 거리가 멉니다. 돈 많고 여유도 많아 보이는 바쿠루 씨가 왜 힘든 뱃일을 자처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쿠루 씨의 답변은 명료하였습니다. 단지 바다가 좋고 참치잡이는 나에게 즐거운 취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배에 탄 말단 선원 중에는 이른바 몰디브 드림을 안고 방글라데시에서 오기도 합니다. 거친 일을 하는 만큼 보수도 좋아서 몇 년간 고생하러 온 것입니다. 한 배에 탄 사람들끼리도 이렇게 신분이 다르고 운명도 다르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바쿠루 씨는 배를 몰거나 스노클링 장비를 하고 바다에 들어가 참치 미끼를 잡는 것 외에는 딱히 거친 일을 하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돈 많고 시간도 많으니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그이지만, 가진 재력만큼 화려한 삶을 살기보다는 그저 바다와 참치가 좋아서 소박한 삶은 택한 바쿠루 씨. 

 

그는 오늘도 인도양 어딘가에서 빈랑나무 열매를 씹으며 참치잡이를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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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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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1 07:4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하네요 ^^
    빈랑나무열매를 저렇게 씹는걸 본적이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씹었던거였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 호홓
    2017.11.02 11:1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很神奇的文化!我不想吃它。。哈哈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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