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원래는 새벽 일찍 일어나 참치잡이 배를 타야 했는데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서 하루 일정에 공중에 붕 떠버렸습니다. 그 덕에 우리는 숙소에서 배달 음식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저와 모하메드 씨가 이용하는 샤마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스텝진들이 묵고 있는 라 카바나로 가서 아침을 먹는데요. 어차피 같은 식당에서 배달한 음식이라 똑같습니다. 바싹 마르고 식은 토스트에 퍽퍽한 달걀 후라이, 그나마 먹을 만한 소시지까지 판박이죠.

 

 

고래상어를 봤던 스노클링 포인트

 

먼바다 기상은 악화해 참치잡이 배가 뜨지 못하니, 낚시 대신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해가 뜨고 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것은 몰디브 바다에서 스노클링 해보는 것. 고래상어나 만타 가오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섬 근처 리프로 향합니다.  

 

배가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할 무렵, 오리발과 장비를 챙기고 있었는데 배 아래로 집채만 한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더니 이내 사라집니다. 다름 아닌 고래상어였습니다. 몸길이만 어림짐작으로 4m 정도 되는 비교적 어린(?) 고래상어였죠. 스텝진들이 "카메라! 카메라!"를 외쳤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필자의 소심한 입수

 

고래상어는 스노클링 도중에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입수를 시도하는데요. 오랜만에 하는 스노클링이라서 그런지 좀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피디님은 점프로 뛰어내려야 그림이 산다고 하지만, 예전에 한번 그랬다가 물 먹은 기억이 나서 소심하게 기어 내려옵니다. ^^;

 

 

수심은 5~10m 사이인데 어느 순간 급심으로 훅 떨어지는 구간이 나옵니다. 얼마나 깊은지 짐작도 하기 어려운 시커먼 심해를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찔해요. 스노클링은 주로 얕은 산호 밭을 따라가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산호가 화려하거나 물고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 뉴칼레도니아에서 스노클링을 했을 땐 구명복을 입지 않고 바다에 들어갔는데 세부에서 한번 디이고 난 뒤로는 자신감이 없어져서 구명복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조류가 세서 애를 먹었는데요. 여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순식간에 몇 미터나 떠내려가는데요. 한동안 스노클링을 즐기면서 여유를 되찾는 모습입니다. 다음에는 구명복 없이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이날 고래상어나 만타 가오리를 만났더라면 편집에서 잘리지 않았을 겁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고, 스노클링 환경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방송에서는 통편집되었습니다.

 

 

Flute mouth Fish

 

스노클링을 마치고 항에 도착했는데 발아래에는 홍대치의 일종인 플룻 마우스 피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습니다. 홍대치는 몸길이 1.5m의 기다란 물고기인데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것과 달리 이 녀석은 몸통에 줄무늬가 있습니다.

 

 

샤마에서 라 카바나로 방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원래 숙소는 라 카바나인데 방이 공사 중이라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샤마에서 묵었습니다. 이제 공사가 끝났고 라 카바나가 불편을 끼친 사례로 저와 모하메드 씨에게 각방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마미길리 섬의 작은 선착장

 

오후에도 참치잡이 배는 뜨지 못합니다. 새벽부터 출항해 참치 미끼를 잡고 다시 3시간을 나가서 잡아야 하는 일정이라 지금 나가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다행히 기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내일은 출항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남은 오후를 보내기 위해 인근 섬에 있는 리조트에서 빅피싱 전용선을 빌렸습니다.

 

 

바다 물색 좀 보세요. 이런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몰디브는 어느 섬에 가더라도 대부분 이런 바다색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축복받은 환경입니다. 그런 몰디브가 수십 년 안에 잠길지도 모른다고 하니 슬픕니다.

 

 

리조트에서 낚시 전용선이 왔습니다. 원래는 촬영 컨셉 상 낚시 전용배는 이용하지 않기로 했는데요. 지금은 참치는 고사하고 그 어떤 물고기도 제대로 낚아낸 적이 없어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계획에 없던 최첨단 낚싯배를 빌린 것도 뭐라도 잡기 위해서였죠.

 

 

몰디브에 와서 줄곧 탈탈거리는 배만 타다 보니 이런 배가 이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배가 속력을 내고 나갈 때면 몸이 뒤로 젖혀집니다. 이 배로 참치 포인트까지 내달리면 한 시간 만에 도착하겠지요. 3시간 이상 달려야 겨우 닿는 참치잡이 어선과는 크게 비교됩니다.

 

 

점심은 배에서 제공하는 샌드위치를 먹는데요. 눅눅한 감자튀김에 통조림 참치가 든 샌드위치지만, 배가 고팠는지 꿀맛입니다.

 

 

때는 늦은 오후라 참치 포인트까지 갔다 올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섬 주변 리프를 돌며 표층으로 회유하는 공격성 어류를 잡을 계획입니다. 낚시는 트롤링이네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낚시입니다. 스텝진들도 배를 보기 전까지는 트롤링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뭐라도 낚아올리는 그림이 필요합니다. 트롤링이라도 해서 잡아내야 할 만큼 절박한 심정이죠.

 

 

바늘 크기가 대상 어종의 크기를 말하는 군요. 운이 좋으면 청새치나 돛새치가 잡히기도 한다니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 봅니다.

 

 

그러나 낚시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지금까지 낚시를 해보니 그렇습니다. 고기 다운 고기를 걸어 낼 확률은 통상 2할에서 2할 5푼에 머무릅니다. 4~5회 출조에서 1번 정도 성공하는 꼴이죠. 이러한 확률은 몰디브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아무리 천혜의 환경이라 하더라도 그날그날 바다 수온과 기상, 물속 여건 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허사일 것입니다.

 

그러니 딱 한 번의 출조에서 대박을 터트리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트롤링 채비에 생미끼까지 꿰고 끌어봤는데요. 중간에 한두 번 정도 입질이 들어왔다가 숏바이크가 난 것 외에는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 역시 통편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꽝을 치고 있을 때 참치 부레에 관한 애드립을 쳐서 몇 초 분량이나마 살렸던 것 같습니다. ^^;

 

 

낚시를 마치고 우리는 마미길리가 아닌 인근 섬의 리조트로 왔습니다. 몰디브에 온 이후 줄곧 식사가 부실했던 게 마음에 걸렸는지 피디님이 한 끼라도 제대로 먹자 하여 우리를 리조트로 데려왔습니다. 몰디브에 와서 처음으로 몰디브다운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이었죠.

 

 

유난히 평화로워 보이는 리조트 선착장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비록, 낚시 여건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밥값도 못 했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그러한 자책감은 불안감으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휴일이라 배가 안 떴고, 오늘은 기상 악화로 참치를 노리지 못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기회는 단 두 번. 여기서 마저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 방송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가 두렵습니다. 성범이 형은 귀국하자마자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귀국일을 늦출 수도 없습니다.

 

 

낚시는 지금 사면초가인데 해지는 풍경은 눈물 나게 아름답네요.

 

 

내 몸은 분명 몰디브에 있지만, 몰디브에 와도 몰디브에 온 것 같지 않은 이 기분. 낚시 스트레스에 촬영 압박까지. 

 

 

언젠가는 저도 몰디브 해변에서 저렇게 앉아 여유를 즐길 날이 올까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 더욱 분발하자.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을 데리고 몰디브를 다시 찾으리.  

 

 

리조트 레스토랑

 

가는 시간 붙잡을 수 없으니 현 상황은 받아들이고 우선은 먹고 힘내야겠죠.

 

 

무려 1인 40불짜리(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뷔페입니다.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식사는 그저.... 감격입니다. 외국 나가면 호텔식을 피하고 현지식을 즐기는 편인데 이날 만큼은 호텔식이 왜 그리 반가운지 ㅠㅠ

 

 

매콤한 펜네 파스타와 소고기 꼬치 구이는 마음에 쏙 들어서 한두 번 더 가져다 먹습니다.

 

 

몰디브 지폐입니다. 그림이 이색적이지요? 500루피야는 우리 돈으로 약 4만 원에 해당합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예정대로 참치잡이 배를 타고 새벽부터 나왔습니다.

 

 

마미길리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서 온 곳은 환초로 둘러싸인 잔잔한 내만입니다. 이곳에서 참치 미끼가 되는 베이트 피쉬를 잡고 다시 참치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어제 소개한 바쿠루 씨가 스노클링 장비를 갖추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러고 주무시나요?

 

 

베이트 피쉬 포인트에 도착하자 배는 본격적으로 물고기 떼를 찾아 나섭니다. 두 선원이 스노클링 장비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물속을 관찰합니다. 이 상태로 배는 두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강성범 씨도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고기 떼를 발견했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너나 할 것 없이 선원들이 바다로 뛰어들고, 성범이 형도 뛰어듭니다. 성범이 형은 제주방송의 해녀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스노클링 실력이 상당합니다.

 

 

물고기 떼를 발견하자 그물을 내립니다.

 

 

수중 촬영 장면

 

물고기 떼가 그물 위에 올라타면, 양옆으로 중심을 맞춰 그물을 걷어 올립니다. 

 

 

드론 촬영 장면

 

서서히 포위망을 좁힙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이제는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잘 말아서 올려야 합니다.

 

 

이번에 잡은 물고기는 황다랑어의 미끼가 되는 'Blue and gold fusilier'. 세줄가는돔과에 속한 푸질리어입니다. 일본 남부 지방을 비롯해 동남아, 태평양, 인도양, 사모아제도 등의 아열대 및 열대 해역의 산호초에 서식하는 어류이며, 다 자라도 몸길이 25cm 정도 되는 소형 어류입니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에서 식용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음식은 주로 뼈째 튀겨먹습니다. 이곳 몰디브 어부들은 '무그라'로 부르더군요.

 

 

아침은 황다랑어 미끼를 잡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식사는 이곳 어부들이 평소 먹는 마쑤니(참치, 양파, 커리잎을 버무린 음식)와 자파티, 여기에 가다랑어구이입니다. 여기에 블랙티까지 곁들이면 아침 식사로 든든하지요.

 

 

배는 두 번째 미끼를 잡기 위해 닻을 내립니다. 오늘은 선장도 선원들도 마음 단단히 먹고 나온 듯합니다. 오늘 참치 낚시에 성공하지 못하면, 내일 하루만이 남는데요. 그렇게 된다면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릴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오늘 참치를 충분히 잡아서 촬영 분량을 확보한 다음,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내일을 임하고 싶겠지요.

 

 

근처에는 어느 리조트에서 왔는지 스쿠버 다이버 관광객을 실은 배가 접근해 옵니다.

 

 

미끼 떼를 발견하자마자 지체 없이 들어간 선원들. 그물이 내려지고 튜브를 낀 선원들은 각 자리를 지키며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립니다.

 

 

그사이 한 선원은 참치를 다져 밑밥을 준비합니다. 이걸 쥐고 바다로 들어가 물속에서 살살 풀면 물고기 떼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동시에 그물 위로 올라타게 유인할 수 있습니다.

 

 

그물을 끌어 올리라고 신호를 주면

 

 

그물을 끌어 올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포위망을 좁힙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바닥에 깔린 그물이 암초에 걸려 찢기는 사고가 났습니다. 물고기 떼는 찢긴 그물망 사이로 전부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미끼 잡이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했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그물을 꿰매 던져 이번에는 미끼를 잡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번에 잡은 미끼는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서식하는 샛줄멸입니다. 이 샛줄멸은 가다랑어 대낙기에서 유인용 밑밥으로 쓰일 것입니다.

 

 

이 상태로 배는 환초 구역을 벗어나 망망대해로 향합니다. 참치 포인트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그 시간 동안 선원들은 휴식을 취하고요. 우리도 못다 한 수면을 보충합니다. 그 사이 요리사 선원은 점심을 준비합니다. 자파티 반죽이 한창인데요.

 

 

이렇게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잡은 뒤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해서 굽습니다.

 

 

부선장인 바쿠루 씨가 연유를 따는군요. 이곳 통조림은 우리나라처럼 원터치가 아녀서 칼로 따야 합니다.

 

 

갓 구운 자파티와 거친 빵조각에 연유를 곁들입니다. 블랙티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군요.

 

 

갓 구워내 따듯한 자파티지만, 밀가루 입자가 거친지 입안이 까끌까끌합니다. 방 피디님은 조금 먹다가 거칠고 투박한 맛에 손을 뗐고, 저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먹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깜빡 졸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포인트로 향한 지 4시간이 지났을 무렵입니다. 처음 마미길리에 와서 이 배를 탔을 때 겪은 악몽이 생각나려 합니다. 항해를 시작한 지 5시간이 넘었는데도 배는 여전히 참치만 찾다가 끝낸 적이 있었죠. 오늘은 4시간을 달려 나왔습니다. 여기서 참치 떼를 찾지 못한다면, 다시 4시간을 달려 마미길리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가 허무하게 끝나버리겠지요.

 

참치 떼는 어군탐지기 같은 첨단 장비가 없으니 오로지 육안으로만 찾아야 합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몇 군데 찍어두었던 포인트를 찾아가는데요. 4시간 동안 달려온 그곳에 참치가 없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면 망망대해에서 바다 새가 꼬이거나 보일링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상황이 다른가 봅니다. 저 멀리 참치 떼를 발견했는지 선실이 술렁입니다. 줄곧 쌍안경으로 수면을 훑던 선장과 바쿠루씨는 낚시를 준비하라는 사인을 내립니다. 드디어... 드디어 낚시가 시작되는군요! 이날은 몰디브에 온 지 5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제부터는 다큐와 유튜브 영상에서나 볼 법한 몰디브의 참치 대낙기가 시작됩니다. 선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낚싯대를 들고 있습니다. 저와 성범이 형도 서둘러 투입됩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낚시 장비를 준비했지만, 잡을 확률을 높이려면 현지법을 따라야겠죠.

 

 

낚시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수가 올라옵니다. 과연 참치일까요? 몰디브 인도양에서 펼쳐지는 성난 물고기 촬영 일기,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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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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