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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북부에 있는 비퉁 항구.
술라웨시섬은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섬이며, 'K'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방대하고 큰 섬이어서 지역별로 갖춘 공항만 여섯 군데. 해안선 길이만도 한반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매우 큰 섬입니다.
술라웨시섬의 주도는 코타 마나도입니다.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이 묵은 리조트에서 1시간 20분 거리인데요. 이날은 마나도가 아닌 비퉁으로 향했습니다.
비퉁 항구,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비퉁은 계획에 없었던 일정입니다. 방송에서는 시종일관 참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묘사했지만, 원래 계획은 1부인 마나도에서 레드스네퍼를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레드스네퍼의 단서를 찾기 위해 들린 비퉁 항구는 이른 아침부터 이제 막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어선으로 활기가 넘쳤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노점 상인
시장터는 주로 일을 마치고 들어온 어부와 생선을 사러 온 상인, 인부들로 북적합니다. 그런 만큼 이들을 상대로 하는 노점상도 분주하지요. 우리네 시장터에서 볼 법한 김밥과 토스트처럼 여기서는 주로 미고랭 같은 면 종류를 파는데요. 방식만 다를 뿐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한가 봅니다.
새벽 조업을 마친 어선이 속속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인파가 몰립니다. 이날 잡힌 가장 신선하고 맛 좋은 재료를 비교적 저렴하게 사기 위함이겠지요. 얼마나 잡혔을까요?
참치잡이 어부의 표정이 모든 걸 보여주는 듯합니다. 활기가 넘치다 못해 생기발랄함까지 느껴졌던 이곳 비퉁 항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생선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지나다 눈에 들어온 새빨간 지느러미.
트럭에 실린 육중한 어체와 오렌지빛, 흰색 반점이 무성한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올라가서 들어봤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들 수 없을 만큼 무겁습니다.
여기까지 봤는데 '아, 이거!' 하고 떠올랐다면, 그 사람은 셋 중 하나일 겁니다.
1) 이 어종을 수입하는 유통 업자
2) 어류 학자
3) 국내는 물론 해외 식용 물고기에도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
그만큼 생소한 물고기지만, 실제로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먹어왔던 어종이기도 하지요. 그것도 다름 아닌 '생선회'로 말입니다. 이 물고기의 이름은 '붉평치'입니다. 현지에서는 '비티'(Biti)'라고 부르는데요. 다 성장하면 몸길이만 2m, 무게 270kg까지 나가니 개복치와 비견될 만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들어보겠다고 낑낑대던 이 녀석도 붉평치 중에서는 그리 큰 축에 속하진 않을 겁니다.
붉평치 (사진 출처 : https://www.marylandbiodiversity.com)
유통업자들은 붉평치를 주로 '만다이'나 '꽃돔' 정도로 부릅니다. 이유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어류 학자들이 명명한 표준명은 상업적으로 별 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붉평치보다는 꽃돔으로 부르는 편이 기억하기도 쉽고요. 왠지 맛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여러분에게는 꽃돔처럼 보이시나요?
이름만큼 화려하고 독특한 생김새를 가진 붉평치지만, 실제로는 국내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하나 있습니다. 붉평치는 대부분 원양어선과 수입으로 들어오므로 전량 냉동으로 유통됩니다.
참치처럼 토막 내서 유통하는데요. 해동했을 때 빛깔이 꼭 참치와 닮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빛깔이나 살결이 황새치나 청새치에 가깝죠. 여기에 단가가 참치보다 훨씬 저렴하니 한때 유행하던 무한리필 저가 참치집에서는 붉평치가 참치로 둔갑하기도 했고, 출장 뷔페나 돌잔치, 프랜차이즈(주로 돈까스, 우동, 초밥을 파는)에서도 곧잘 활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좀 전에 "우리도 알게 모르게 먹어왔던 어종"이라고 했는데요. 비록, 붉평치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주말이면 외식이다 경조사다 뭐라며 알게 모르게 먹었던 것입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붉평치란 어종의 활용은 그랬습니다. 지금은 수입량이 많지 않아(수입 현황 자료가 거의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입량이 미미하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인지..) 주변에서 구경하기가 어려워졌죠.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국내 붉평치 사용처는 2017년 6월 5일 자에 올려진 신문입니다. 대구에 소재한 뷔페 전문점 5곳이 붉평치를 참치로 팔다 적발되었죠. 붉평치가 참치보다 훨씬 저렴하니 차익을 노린 것입니다.
이악어목에 속하는 심해성 어류, 투라치
붉평치는 붉은개복치라 부르기도 하지만, 부유성 어류인 개복치와는 상위 분류에서 갈라집니다. 대신 투라치와는 가까운 사이죠. 보시다시피 형태가 매우 다른데 비슷하다니 뜻밖인데요. 붉평치와 투라치는 '이악어목'이라는 세계적으로도 몇 종류 안 되는 특이한 그룹에 속합니다. 이악어목에는 총 21종이 있으며 대부분 심해성 어류입니다. 아래는 이날 시장에서 발견한 붉평치 촬영분입니다.
EBS1 <성난 물고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1부 中에서
현장에서 붉평치를 직접 낚았다는 어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이 녀석을 끌어 올리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낚는 건 혼자 낚아도 뱃전으로 들어 올리는 건 혼자서 힘들거든요. 성인 여럿이 붙어야 했을 겁니다.
참고로 붉평치는 전 세계 온대를 비롯한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지만, 국내에서는 어획된 기록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11월경 강원도 삼척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걸려든 사례가 있습니다.
각종 참치와 만새기들
시장 한구석에는 이날 잡힌 것으로 보이는 참치가 대거 모여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왼쪽 상단에는 우리나라 갈치 낚시꾼들이 가장 싫어하는 만새기도 보이는군요. ^^;
상품성이 좋은 참치는 이미 배에서 해체작업을 하고 저렇게 포장까지 마친다고 합니다. 가격을 물었는데요. 저렇게 큰 황다랑어를 기준으로 kg당 가격이 우리 돈으로 4천 원입니다. 30kg이면 15만 원. 생참치인데 이 정도면 저렴하죠?
다만, 그날 잡힌 생참치라고 해서 모두 횟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인도네시아는 참치를 회로 먹는 문화가 없습니다. 일부 도시권 사람들이 초밥을 즐기곤 하지만, 이런 섬 지역은 횟감을 위해 잡는 참치가 아니기 때문에 산채로 경동맥을 절단하는 방혈도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크고 좋은 참치는 대가리를 댕강 자르고 내장을 제거하는 정도의 전처리이죠.
돛새치
구석에는 기본적인 손질만 된 돛새치(셰일피시)가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살아생전에는 그리 멋있는 녀석인데 죽으니 역시 볼품없습니다.
청소년기의 황다랑어
이날 우리가 시장에서 찾던 어종은 거대한 레드스네퍼와 참치인데요. 여기서 가장 흔한 참치는 다름 아닌 황다랑어입니다. 황다랑어는 다랑어과 중에서도 비교적 몸집이 작아 다 커도 2m를 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진의 황다랑어는 무게 10kg 남짓한 청소년기인데요.
황다랑어 성체
이 녀석이 어느 정도 자라면, 지느러미가 저렇게 길게 나오면서 꽤 멋있어집니다.
가다랑어(가쯔오)
참치 통조림의 원료인 가다랑어도 보입니다. 잡히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상태가 영 좋지 못하군요.
살오징어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징어. 색이 허연 것이 이것도 잡은 지 시간이 좀 지난 듯합니다.
이건 색이 살아있고 싱싱해 보이네요. 마침 낚시에 쓸 생미끼가 필요했는데 잘 됐습니다. 가격을 물었더니 살 거면 한 통 다 사야 한답니다. 너무 많아서 반만 사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가격을 흥정해 15만 루피아로 합의. 우리 돈으로 13,000원에 이 많은 오징어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이 오징어의 종류를 알면 까무러칠..... 정도는 아니고 약간 의아하실 겁니다. 이 녀석의 정식명은 '살오징어'. 다시 말해, 우리가 시장과 마트에서 주로 사 먹는 오징어와 같은 종입니다. 울릉도 오징어, 속초 오징어, 거기서 수천 킬로미터나 남쪽으로 떨어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오징어가 다 같은 종류란 사실.
남해 낚시꾼들은 이 오징어를 크기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은 건 '화살촉오징어', 중간 크기는 '총알오징어'로 부르는데요. 알고보면 모두 같은 종이죠.
오징어 두루치기, 오징어 무침, 오징어 순대, 오징어 숙회, 오징어 내장탕, 오징어 뭇국, 오삼불고기, 오징어 먹물 파스타(이제 그만..;;), 오징어 튀김, 오징어 떡볶이, 오징어 숯불구이, 심지어 마른 오징어로 구워 먹어도 시원찮을 이 싱싱한 녀석을 단돈 13,000원에 싹 쓸어다가 미끼로 쓰다니요. 지금 한국은 오징어가 귀해 금값인데(중국 어선이 싹쓸이해서 ㅠㅠ) 제가 이곳에 살았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오징어만 먹으면서 식비를 절약할 자신이 있습니다. ^^;
줄무늬고등어
태국과 베트남의 수산시장에서도 자주 보였던 이 녀석. 주로 아열대와 열대 해역에만 서식하는 줄무늬고등어입니다. 동남아 국가 사람들에게는 국민 생선이라 할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생선인데요. 우리가 주로 먹는 고등어(노르웨이산 포함)와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는데 끝내 먹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ㅠㅠ
꼬리돔 성체
항구 깊숙이 들어오자 이번에는 사람 몸집만한 녀석들이 반깁니다. 맨 위에 거뭇한 녀석은 스쿠버 다이버들로부터 인기가 좋은 '나폴레옹 피쉬'입니다. 물 속에서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녀석이지만, 이렇게 죽어버리니 제 색을 잃고 검은 송장처럼 돼버렸습니다.
그 아래 붉은색 돔은 꼬리돔입니다. 길이가 무려 1m가 넘습니다. 방송에서는 "저도 모르고 처음 보는 고기"라면서 한발 뺐는데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어종이 있었지만, 방송은 글과 달리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정확하지 않은 것은 그냥 모른다고 하는 게 낫습니다.
나중에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가 알던 꼬리돔이 맞았네요. 지금까지는 어린 치어만 봐 왔기에 이 녀석과 매칭이 안 됐는데 자료를 뒤져 동정한 결과 꼬리돔이 다 자란 모습이며, 맛이 좋은 생선입니다. 이렇게 봐선 크기가 가늠이 안 되는데요.
꼬리돔(위), 갈색둥근바리(아래)
아래 제 신발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지 가늠되실 겁니다. 아래에 있는 갈색둥근바리는 제주 다금바리와 사촌격입니다. 필리핀에서는 '라푸라푸'라 부르며 대량 양식을 합니다. 그리곤 한국인 관광객에게 "이거 너네가 좋아하는 다금바리야"라고 파는 생선이기도 하죠. 양식산은 횟감으로 맛이 썩 좋지 못하다고 하는데 자연산인 이 녀석은 좀 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비퉁 항구,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여정. 그리고 이어진 항구에서의 촬영 씬을 마치자 어느덧 8시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원래는 빨리 마치고 낚시하러 갈 계획이었는데요. 지금이라도 숙소로 달려가 오후 낚시를 준비해야 합니다.
돌아오는 차량에서는 먹은 간식입니다. 리조트 이사님이 시장에서 샀다는데요.
평소에도 종종 즐겨 먹는 시장표 밥이라고 합니다. 밥에 간장 양념이 되어 있는 듯하고, 그 안에는 생선 살과 잘게 다진 채소가 섞여 있었습니다. 연잎밥처럼 향이 강한 잎에 싸서 찐 찰밥이라 맛이 있군요. 이제는 진짜로 낚시하러 갑니다. 그 결과는 방송에서 보신대로지만..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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