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모양을 닮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술라웨시섬의 주도인 '마나도'에서 5일을 보낸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은 참치의 섬 부톤으로 향하게 됩니다. 가는 여정이 만만치 않은데요. 마나도에서 부톤까지는 직항이 없어 마카사르를 경유해야 합니다.

 

 

마카사르행 기내에서

 

이륙 후 비행기가 곧장 바다로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섬을 벗어났다는 생각도 들 법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술라웨시섬의 복잡한 해안선을 가로질러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비행기는 바다로 나갔다가 육지로 들어서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합니다. 

 

 

 

거대한 산호 군락

 

언뜻 산호로 이루어진 섬 같지만, 수면 위로 드러낸 면적은 극히 일부. 대부분 수중에 잠긴 산호 지대가 엄청난 면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 아래 산간 마을과 비교하면 얼마나 산호 군락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이 또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자연의 위대함이 새삼 실감 나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저 아래는 다양한 해양 생물과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겠지요.

 

 

비행기는 어느새 기수를 내려 착륙을 준비합니다.

 

 

 

저 아래 우리가 착륙할 마카사르 국제공항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비행기가 그냥 지나쳐서 의아했지만,(주변에 공항이 두 개 있을 리는 없고) 활주로 방향상 유턴해서 착륙해야 하기에 지나친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비행기는 유턴해서 착륙에 들어갑니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논밭이 정겨워 보이네요.

 

 

오후 4시, 마카사르 술탄 하사누딘 국제공항에 도착

 

술탄 하사누딘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면 '술탄(سُلْطَان)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는데요. 술도 안 먹는 문화에서 왜 자꾸 술탄 OO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음 죄송하네요. ^^;

 

하여간 이 술탄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봤더니 군주, 권위, 권력을 지칭한다고 나옵니다. 이름이 힘을 실어주는 말일까요? 어쨌든 술라웨시섬은 워낙 커서 북부와 남부로 나뉘는데 그러다보니 주도도 두 개인가 봅니다. 앞서 우리는 북부의 주도인 마나도를 다녀왔는데요. 마카사르는 남부의 주도입니다. 

 

인구 91만 명으로 고무와 커피, 향료, 모피를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7세기 초 이래 네덜란드인이 정착해 무역항으로 발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이 점령했으며, 종전 후 네덜란드령 동인도네시아의 수도가 되었다가 1949년 인도네시아로 흡수되었습니다. (이상 세계인문지리사전 참고)

 

 

#. 예기치 못한 결항 그리고..

도시 자체가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인도네시아를 찾는 여행자라면 경유지로 잠깐 거치는 곳일 뿐, 공항 밖으로 나가는 일은 흔치 않죠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저녁 7시쯤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부탄으로 가는 항공기가 결항된 겁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탄 섬 바우바우 공항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공항에는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만, 항공 스케줄이 있는데 왜 퇴근함? ㅠㅠ)

 

아마도 제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떤 연유에서 이착륙이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마 직원들이 퇴근한다고 멀쩡한 운항 스케쥴을 결항시키지는 않을 듯)

 

항공사 측은 결항이 결정됐으니 내일 오전 6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호텔 1박을 보상으로 제안합니다. 이 말에 탑승객들이 우루루 몰리더니 항의가 빗발칩니다. 각자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는 사업적인 차질을 빚기도 했으니 그에 맞는 보상을 달라는 겁니다. 저는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사유가 아닌, 안전상의 문제로 결항된 것은 보상 의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항공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호텔 1박 숙식권을 제공하는 정도일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 같이 항의해봐야 바뀌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와 제작진은 재빨리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거기서 힘 빼느니 조금이라도 호텔에서 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길로 항공사 직원의 안내를 받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도착한 호텔의 모습은 이랬습니다. 공항에서는 3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죠.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는 수밖에.. 우리는 이미 연장을 각오하고 있었니까요. 부톤에서 참치 안 잡히면, 처음 열흘이었던 촬영 기간을 2~3일 정도 늘릴 생각이었는데 이번 결항으로 그럴 확률이 조금 더 높아졌습니다. 물론, 남은 일정 안에 제대로 된 참치가 한 마리라도 낚여주면 꽃길로 귀국하겠지만요. 과연 그럴 확률이..

 

 

어쨌든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복도로 들어서는데요.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 <쇼생크 탈출>이 생각나려 합니다. 단지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배정받은 방

 

일생을 감옥에서 보낸 도서관 노인이 출소 후 바깥세상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 장소(여관방)가 생각나서 말입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여관 방보다 더 누추하고 음산하게 느껴졌던 곳.

 

 

하룻밤 사이 4성급 고급 리조트에서 누추한 여관 방으로 하락하자 기분이 묘합니다. 게다가 이불과 베개는 빨지도 않는지 냄새가..

 

 

창밖을 보니 모기 안 들어오면 다행.

 

 

저와 제작진은 저녁 식사를 위해 로비에서 만났습니다. 호텔에서 저녁을 제공한다지만, 음침한 식당 분위기와 메뉴 설명을 듣고 나자 먹고 싶은 생각이 샥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로비에서는 우리에게 지급할 돈(?)이 있다며 부릅니다. 방금 전, 항공사가 전 승객에게 30만 루피아(한화 3만 원)를 보상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래서 받은 돈인데요. 보시다시피 지폐에 스템플러를 찍어서 주더랍니다. 왠지 공돈이 생겨 기분은 좋은데요.

 

그 길로 호텔 문을 나서는데 버스 한 대가 도착하더니 거기서 좀 전에 항의한 승객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옵니다. 공항에서 실컷 힘 빼고 이제 도착했나 보군요. ^^

 

 

우린 그 길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번화가로 나가지 않으면 식당 구경하기 힘들겠는데요.

 

 

한참 걷자 다행히 큰 길이 나옵니다. 이슬람의 도시답게 거리 곳곳에는 이슬람 사원이 보이고, 때마침 기도 시간이라 흥얼거리는 특유의 기도 소리도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같은 술라웨시섬인데도 워낙 지역이 넓어서 북쪽은 기독교가, 남쪽은 이슬람이 번창하는데요. 이곳 마카사르는 완전히 빼박 이슬람 도시라 거리에 히잡을 두르지 않은 여성은 흔치 않았습니다.

 

또한, 마카사르는 도시명을 개명했다가 원래 명칭으로 복귀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71년도에는 마카사르에서 우중판당(Ujung Pandang)으로 개명했다는데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2000년부터 다시 마카사르로 명칭을 변경해서 오늘날까지 사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아직도 곳곳에는 우중판당이란 말이 쓰이는데 마카사르와 같은 곳이니 혼동 없으시기를..

 

 

그나저나 식사를 하고 얼른 들어가 쉬어야 하는데요. 모처럼 식당 간판이 나오기는 했지만,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특히, 왼쪽 상단에 있는 음식은 먹고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요상한 비주얼을 뽐내고 있었으니. 

 

 

한참을 걷자 시장터인가 봅니다. 우리네 시골 장터와 비슷한 느낌인데요. 외지 사람들이라곤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지역이라 그런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안 원숭이 보듯 시선이 쏠립니다.

 

 

제가 만약 시간적인 여유와 체력만 있었다면, 이 길로 곧장 들어가 시장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이슬람 문화가 깃든 시장터의 식재료들, 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온갖 물품들이 낯설고 새로울 것이란 기대감에서입니다. 지금은 비록 촬영 일로 잠시 들린 곳이지만, 낯선 곳으로의 모험은 그 나라 재래시장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지나가다 잠시 훑어본 장면에 지나지 않지만, 분위기가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 활기 띤 시장터에 들어오니 축 처진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고요.  

 

 

카메라를 들자 상인들이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사진을 찍었으면 어김없이 가벼운 목례를 합니다. 그러면 생긋생긋 웃어주는데요. 그런 면들이 참 순수해 보이죠. 

 

 

우리나라 재래시장이었다면, 어물전에 올려지는 생선이 대체로 뻔하죠. 고등어, 삼치. 조기, 갈치, 병어, 동태, 오징어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데 이곳 술라웨시섬 마카사르에서는 이런 생선들이 사람들 식탁에 주로 오르나 봅니다. 제가 일일이 알지 못하는 열대 생선들이 즐비한데 여기서 시간만 있었다면, 아주 그냥 물 만난 고기처럼 한참을 서성였을 텐데 말입니다.

 

 

갯농어

 

여기 제가 아는 유일한 생선 하나가 보입니다. '밀크 피시'라고도 부르는 이 갯농어는 살결이 우유처럼 희고 부드러워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생선 중 하나이죠. 저도 말로만 들어봤기 때문에 맛이 궁금합니다.

 

 

결국, 우리는 그럴싸한 식당을 찾지 못해 호텔에서 주는 밥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두 피디님은 택시를 타고 시내 구경을 하러 갔는데 차가 너무 막혀 고생만 진딱 하고 왔습니다. 그 사이 저와 장동직 형님, 김태훈 스쿠버 다이빙 강사님은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요.

 

먹다가 먹다가 입에 안 맞아서 포기. 외국 나가면 그 나라 현지식만 먹는데도 이건 소화하기 쉽지 않더군요. 오죽하면 평소 먹지도 않는 불닭볶음면까지 곁들였을까? ㅠㅠ 결국, 편의점 과자로 때우고 잠들었습니다.

 

새벽 비행기라 서둘러 잠을 청하는데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누우면 5분인 저도 이날만큼은 잠자리 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일단 벽에 밴 담배 냄새에 베개와 이불에서도 찌든 냄새가 나고요. 욕실 위생 상태도 불결하고, 모든 부분에서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TV를 켠 채 채널만 하염없이 돌리는데 그 와중에도 한국 방송이 뜨는 게 어찌나 반가웠던지. 평소 보지도 않는 드라마(당시 흑기사를 하더군요.)까지 재미있게 보고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묘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즐겁고 마냥 행복한 기억은 아니지만, 제가 또 언제 이슬람의 도시 마카사르까지 와서 이런 경험을 다 해보나 싶기도 하고요. 결항 때문에 의도치 않게 묵게 된 도시지만, 이렇게 누추한 숙박 환경, 부실한 먹거리를 접한 것이 오히려 기억에는 뚜렷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새벽, 우리는 예정대로 비행기를 타고 참치의 고장 부톤 섬으로 향합니다. 마카사르에서 부톤 섬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

 

 

공항에 도착해서야 모든 짐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촬영 짐이며, 낚시 짐이며, 워낙에 많다 보니 픽업 차량 두 대에 겨우 쑤셔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5일 동안 지내게 될 숙소에 도착합니다. 이번에도 혼자 쓰게 된 방. 그래도 마카사르에서 보낸 최악의 호텔보다는 낫습니다.

 

 

좁은 건물에 비즈니스급도 안 돼 보이는 호텔이지만, 식사가 나옵니다. 커피는 한 모금 마셨다 탄 재 가루 맛에 뿜을 뻔했고, 토스트에는 잼을 발라먹는데 읔~ 이렇게 토 나오는 잼 맛도 처음이고, 나머지도 대부분 ㅠㅠ 기댈 것이라고는 저 푸르팅팅한 귤. 그나마 먹을 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호텔 창가에서 바라본 부톤 섬 항구

 

저 푸른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마나도에서의 5일. 좋은 경험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그 공허한 바다에서 참치와 레드 스네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5일. 이제는 여정의 중반을 넘겼습니다. 부톤에서 남은 5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그에 상응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어차피 참치와 결전을 벌이려면 새벽부터 나가야 해서 이날은 늦었습니다. 당장 이날 할 수 있는 것은 낚시 외적인 문화를 촬영하는 것. 저는 이 오지에서 한글을 사용한다는(?) 찌아찌아 마을로 향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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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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