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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이 살고 있는 마을
"가부 까께 노모로 다나우 타나 따붸 을리마 마누 바짜 파에 빠우 짜헤아 하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우리는 이 말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읽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어는 아니지만, 한글을 쓰는 마을이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시섬에 있다고 합니다. 한글 표기를 넘어 아예 한글을 공식적으로 채용해 그들의 문자로 사용하는 신기한 마을. 어찌 된 연유인지 알아보기 위해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은 한글을 사용하는 부족인 '찌아찌아족' 마을로 향합니다.
이곳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남동부에 있는 부속섬 중 하나인 '부톤섬'. 바우바우시(市)에 살고 있는 찌아찌아족의 마을입니다. 저와 제작진은 <성난 물고기> 촬영을 위해 열흘 일정으로 술라웨시섬을 찾았습니다. 앞서 5일은 술라웨시섬 북부 수도인 마나도에서 촬영을 진행했고, 남은 일정은 이곳 부톤에서 참치 낚시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마을이 너무 청명하고 깨끗합니다. 공기도 맑고요. 평소에는 이러한 차이를 몸소 느끼지 못했는데, 요즘은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최근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미세먼지와 황사 영향 탓이겠지요. 이곳은 미세먼지가 없습니다. 열흘간 있어봤지만, 언제나 시계(視界)가 좋습니다. 숨을 마시고 내쉴 때도 뭔가 편안한 느낌이죠.
우리는 찌아찌아족이 다니고 있는 한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는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학교인데요.
이곳도 어김없이 한글이 적혀 있습니다. 까르야 바루 국립 초등학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여기저기 쓰여 있는 한글
촬영팀이 스케치하는 사이 저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장동직 씨가 셀카를 찍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외지인의 난입(?)에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카메라만 들면 이내 부끄러워 내빼는 아이들. ^^
교실에서 아이들과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수업 중인가 봅니다.
우리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마침 수업이 시작되려는 참인데요. 우리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수업에 참관하기로 했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외지인들이 떡 하니 들어와 앉자 시선은 온통 우리에게 쏠립니다. 수업이 시작되자, 이렇게 순수하고 호기심 어린 친구들이 일제히 일어나더니 노래를 합창합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 '시냇물'을 능숙하게 부르는 모습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사연이 느껴집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도 한글이 채택되었는데요. 책을 통해 까께(발), 다나우(호수), 빠우(우산) 같은 간단한 단어를 배우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자체적인 언어를 가지고는 있어도 마땅히 표기할 만한 문자가 없어 한글을 채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 하필 그 많은 문자들 중 한글을 채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의 한글 교과서를 편찬한 사람을 만나보기로 합니다. 마침 학교에 계셔서 만날 수 있었는데요. 놀랍게도 인도네시아 현지인입니다. '아비딘'이란 이름의 선생은 예전에도 EBS 다큐에 출현한 적이 있는데요.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찌아찌아족은 그들의 고유 언어인 '찌아찌아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수백 년 동안 그 언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어 역사를 비롯한 그 무엇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들의 언어를 '라틴어'로 썼는데요. 라틴어는 찌아찌아어의 발음을 정확히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로는 '파' 발음이 없습니다. '파'를 비롯해 '피읖' 발음 자체를 표현하기 어려운데 한글은 그게 되더라는 겁니다.
찌아찌아족은 한글이 자신의 언어를 문자로 표현하는데 적합함을 알게 되었고, 2010년 7월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글 사용을 공식 승인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찌아찌아족은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를 문자로 쓰거나 기록할 때는 한글이 적합할 만큼 발음상 유사성을 지녔다는 것.
아비딘 선생은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전파하고 있지만, 이곳 고등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현지인이기도 합니다. 한국말도 유창하게 잘하는데요. 찌아찌아족의 고등학교는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채택했습니다. 술라웨시섬에서도 부속섬이자 오지 마을에 지나지 않을 만큼 외진 곳이지만, 작게나마 한류 열풍이 불고 있어 한국을 동경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왼쪽은 현지 코디네이터, 오른쪽은 초등학교 교사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나오자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한턱 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어 과자를 집는데요. 아마도 이날 학교 매점은 최고의 매상을 올렸을 겁니다. ^^
EBS1 <성난 물고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편 中에서
위 영상은 이날 촬영한 방영분입니다.
초등학교 옆에는 고등학교가 붙어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가 시작됐는데요. 일부는 남아 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여고생들
마침 하교길에 몇몇 여학생들과 마주쳤는데요. 모두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히잡을 둘러쓰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술라웨시섬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이슬람권입니다. 부모의 신앙심 정도에 따라 아이들의 히잡이 결정되죠. 부모의 신앙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자녀의 히잡 쓸 시점이 앞당겨진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딸보다도 어린 2살 난 아기가 히잡 쓴 것도 봤습니다. 그 부모는 이슬람 율법을 FM대로 지키는 독실한 신자일 것입니다. 이 율법을 얼마나 지키는지와 신앙심 정도에 따라 길거리 여성 패션도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히잡을 패션화 한 여성은 단지 스카프처럼 이용하는데 아시는 분들이야 아시겠지만, 이쪽에서 가장 엄숙한 이들은 '검은색 히잡', 그중에서도 눈만 드러낸 '니캅'이 있습니다.
니캅보다 더 엄격한 것도 있습니다. 눈마저도 그물망으로 가린 부르카. (음식 먹는 장면을 봤는데 그들이야 마땅히 지켜야 할 사명이자 율법일지 몰라도 우리의 시선에서는 정말 안쓰럽게 보이죠. ㅠㅠ)
여담이지만, 현지 코디네이터로부터 들은 바로는 이슬람 여성은 하의 패션만 봐도 신앙심 정도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 전통 무슬림이라고 하면, 옷이 달라붙어 몸매가 드러나는 것에 거부감이 있죠. 최근에는 무슬림 여성 사이에서도 스키니진이 유행이라고 합니다.(주로 젊은 여성)
다리에 착 달라붙어 각선미가 도드라지는 바지를 선호하는데요. 이 역시 신앙심이 깊은 여성들은 안 입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헐렁한 바지나 긴 치마를 입고 히잡을 둘러쓴 여인들은 굉장히 보수적인 무슬림이라고 하죠. 이 이야기를 듣고 나자 길거리 여성 하의에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었는데요. ^^; 바지 모양만 보고 저 사람은 무늬만 무슬림이네 혹은 진짜 무슬림이네 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우리의 친절한 코디네이터씨도 무슬림이인데요. 이날 저녁을 삼겹살로 먹자 하니 얼굴이 노래집니다. (아이고 농담이야~ 이 친구야 ㅎㅎ 근데 먹고 싶어 ㅠㅠ )
여담이 길었는데요. 어쨌든 이 순진 난만한 여학생들은 낯선 외지인의 관심에 호기심과 쑥스러움이 교차합니다.
그녀들이 향하는 하굣길. 우리와 사뭇 다르죠? ^^
근방에는 관리되지도 않은 바나나 나무가 지천입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쓰는 이유는 알았지만, 그걸 우리가 미리 알고 간 설정이라면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참치 낚시가 이번 여정의 컨셉인데 난데없이 한글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뜬금포인 것 같아 약간의 자연스러움을 더하기 위해 연출을 시도하였습니다.
길 가다 우연히 한글 간판을 본 것처럼 ^^; 아시겠지만, 방송에서 이 정도 연출은 애교가 아닐까 싶은.. 물론,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라 그것이 애교가 될 수도, 기만이 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렇다 할 기준이 없으니 판단은 시청자가 하겠지요.
우리는 우연히 발견한 듯한 길거리 씬을 찍기로 했습니다. 낚시에 대한 단서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한글로 된 간판을 보고 "이게 뭐야?"하는 장면인데요. 앞서 찌아찌아족을 촬영하고 난 뒤여서 감정을 이입해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연기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굉장히 어설프고 티 날 수 있거든요.
한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걸 보고 정말로 처음 본 듯한 반응. "왜 한글이 이런 오지에 있지?" 하는 표정이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고 반응해야 했죠.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러분은 "연기하고 자빠졌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저는 혼신의 힘으로 연기하느라 힘들었습니다. 걍 애교로 봐주세요. ^^;;
우연히 학생을 만나 이곳에 왜 한글 간판이 있는지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ㅠㅠ) 학생이 말을 더듬거리는 바람에 세 차례나 반복 촬영해야 했습니다. 학생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단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데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냐고 ㅎㅎ
규동(일본식 소고기 덮밥)
촬영을 마친 저와 제작진은 다운타운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 작은 쇼핑몰에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됩니다. 현지식에 지칠 대로 지친 터라 한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 줄 음식이 필요했는데요. 마침 일식 덮밥집이 있어서 고민 없이 앉아버렸습니다.
메뉴가 다양하지 않고, 현지식과 섞인 듯 요상한 메뉴 사이에서 진주처럼 발견한 이것은 규동입니다. 달걀은 다 익었고, 인도네시아 특유의 찰기 없는 밥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정말 맛있게 흡입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쇼핑몰에 마트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김치를 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른 사다 김치와 함께 먹는데 그 맛이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나올 것 같은 맛 ㅠ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음 날 참치 낚시가 예정되어 있는데 새벽 4시 출항입니다. 문제는 숙소에서 출항지까지 차량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기상 시각은 앞으로 쭈욱~ 새벽 1시입니다. 슬슬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되나요?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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