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톤섬에서 첫 낚시 결과는 꽝. 동트기 직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포인트에 진입해야 성공률이 높아지는 참치 낚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출항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합니다. 이날은 4시에 출항하기로 했는데 선장이 5시 30분이 돼서야 나타나면서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 빗나간 거래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참치잡이 선장과 모종의 거래를 하였습니다.

 

"큰 참치를 잡게 해주면, 지금 보수에 X 3배를 주겠다."

 

선장과 선원은 OK 하였고, 그들을 독려하는 마을 이장도 "내일은 문제없이 출항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거래입니다. 낚시가 성공한다면, 수입을 배 이상 늘릴 수 있을 테니 그들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음 날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먼동이 트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을 맞이합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새벽 1시에 기상해 차량으로 두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참치잡이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습니다. 이장댁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대답이 없습니다. 이미 출항 준비를 하는가 싶어 선착장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인 겁니다.

 

그 사이 마을에서는 이슬람 사원의 확성기를 통해 기도 소리가 짱짱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도 사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2~3명뿐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철수 길에서

 

그로부터 수 시간이 지났습니다. 낚시는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사진에서 짐작이 되겠지만, 선장과 선원은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보낸 이들은 키를 잡는 20대 청년과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 둘이 전부입니다. 어른들이 용돈을 빌미로 보낸 겁니다. 성공하면 보수를 3배나 늘려준다고 했지만, 그들의 새벽잠을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우리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전방에 보이는 마을이 참치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바자우족의 거처입니다.

 

 

물이 빠지면서 수심이 매우 얕아졌습니다. 군데군데 간출여가 있어서 조심조심 입항해야 합니다. 특이하게도 선착장 근처는 이곳보다 수심이 깊습니다. 그러니까 거대하고 평평한 수중 암초가 선착장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선착장에는 마을 아이들이 나와 있습니다.

 

 

한 무슬림 아낙은 생선을 다듬고 있군요.

 

 

우리가 도착한 후 연이어 다른 배가 도착하는데 커다란 새치를 잡아 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사진만으로 청새치인지 녹새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길이 1.5m 정도 돼 보이는 비교적 작은 새치입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큰 참치나 새치는 매일 1~5마리 정도 잡히는 듯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은 아니죠.

 

 

코구나 해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남부 부톤섬

 

낚시를 마친 저와 <성난 물고기> 제작진은 이곳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신과 저주의 새우를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이 장면은 설정 신인데요.

 

 

관광지가 아닌 원시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 해변에서 성난 물고기를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천연 해변의 깨끗함이 참으로 좋습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잠시 머물다 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죠. 그렇게 잠시 걷다가 때마침 공사 중인 인부를 만납니다. (이건 설정이 아님)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부를 찾고 있습니다."

 

라고 물었더니 뜻밖에 날아온 답변은 "숲속에 매우 특이한 물고기가 있다."였습니다. (그렇게 답변해 달라고 부탁을..이 정도 설정은 애교로 ^^;)

 

 

그가 가리킨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자 이런 연못이 나옵니다. 사전에 알고 간 곳이지만, 실제로는 처음 봅니다.

 

 

빨간 새우만 대량 서식하는 독특한 연못

 

바로 옆이 바다임을 잊게 하는 고요한 숲, 그 중앙에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연못이 형성돼 있습니다. 들어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는 일반적인 연못이 아닌, 숲에 빗물이 고인 듯 낮고 평탄한 지대가 쭉 이어집니다. 계속 보고 있으니 마치 숲속의 정령이라도 나올 듯한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특이한 것은 이 연못에 다른 물고기는 없고 오로지 빨간 새우만 수천 마리 서식한다고 합니다. 

 

 

빨간 새우를 찾으려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 바라볼 것도 없이 발밑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우당메라(Udang Merah)', 인도네시아어로 '빨간 새우'란 뜻이다

 

희한하죠. 바로 옆이 바닷가인데 그 근처에 다른 물고기가 전혀 서식하지 않는 담수 연못이 있고, 새우만 서식한다니. 정확히 어떤 연유인지 알아보았는데 여기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당메라는 1971년 처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부족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미신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을 당시, 병사들은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복종을 거역하고 도망친 군대에 격노한 왕이 저주를 내려 병력을 죄다 새우로 만들어 버렸다는 설이 있고, 이곳으로 도망친 병사가 나쁜 짓을 해서 왕이 저주를 내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왕이 저주를 내려 병사들을 새우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인데요. 그렇게 변한 새우는 빨갛게 익자마자 즉시 먹히고 말았다는 것."

 

이 새우가 른 지역에도 서식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이 연못에만 서식하는 특산종으로 보입니다. 주민들이 말하길 외부 반입은 물론, 잡아서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요. 만약. 이 새우를 잡아가거나 먹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불행해지거나 병에 걸려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곳 자체가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떠들면 안 되고, 정숙을 지켜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빨간 새우가 사는 이 연못은 수심이 낮은 습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연못에는 다른 수생생물이나 물고기가 전혀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빨간 새우만 수천 마리가 번식해 지금까지 자생한다고 하니 신비스러울 만도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새우 색깔이 저렇게 붉은지는 아직 연구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미신에 관해 설명한 사람은 인부가 아니고 우리와 일정을 함께한 운전기사였습니다. 처음에는 현자에서 만난 인부가 설명했는데 말을 잘 못 해서 운전기사로 바꿨다죠. 다행히 그는 새우와 미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미신이지만 앞으로 중요한 일정이 남아 있는 우리가 새우를 잡아갈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주민들이 보호하려는 것을 말이죠.

 

 

EBS1 <성난 물고기> 술라웨시섬 편, 빨간새우 신 中에서

 

영상은 이날 촬영분입니다.

 

 

그날 저녁, 한국인 코디네이터 집으로 초대받았다

 

촬영을 마친 우리는 부톤섬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자 인도네시아 방송 전문 코디네이터와 접견했습니다. 바쁘신 분이더군요. 원래는 일찍 만나기로 했는데 자카르타에서 무한도전 촬영을 마치고 오느라 이제야 합류한 겁니다. 참치 마을도 이 분이 소개해 주었는데요. 이틀 동안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자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마도 그런 것이겠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잡히는 것이 참치인데 여태 못 잡았다고 하니.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잡히는 것은 작은 참치를 모두 포함한 것이죠. 대형 참치는 그들에게도 그렇게 쉽고 간단히 잡히지 않음을 몸소 느꼈으니까요.

 

어쨌든 우리는 코디님 댁에서 며칠 만에 한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코디님이 촬영팀을 위해 손수 만든 음식이라는데요. 솜씨가 상당합니다. 앞서 마나도에서도 리조트 관계자분께서 보쌈과 설렁탕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단순히 취미로 보기에는 당장 식당을 차려도 될 맛이었습니다.

 

다른 음식은 그렇다 쳐도 사진에 보이는 양념치킨까지 직접 만들 줄은 몰랐죠맛도 그냥 치킨집에서 주문한 그 맛입니다.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음식을 잘 만든 것은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해외에서 객지 생활하다 보니 한식이 그리운 건 당연지사. 오랜 해외 생활에서 만족할 만한 한식을 접하기 어려워지자, 차라리 직접 만들어 먹자며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고, 그 결과물을 우리가 맛보는 것일 수도 있음을 말입니다.

 

 

이어서 푹 끓인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내어오는데 모두의 입에서 크고 작은 탄성이 새어 나옵니다.

 

"으아~"

 

집에서 끓여 먹는 김치찌개 맛입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입에 막 침이 고이고 으흑. 다만, 이 와중에도 음식에 입도 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부톤섬 현지 주민이자 보조 코디네이터. 이틀 동안 메인 코디의 부재를 메꾸느라 고생했는데 지금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돼지고기가 들어간 찌개와 잡채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메인 코디님이 소 불고기를 따로 해준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눈에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죠. 이 맛있는 음식을 종교적인 이유로 먹지 못하다니  ㅠㅠ

 

 

식사를 마치고 시내에 잠시 들렀습니다. 마침 낚시 방이 있어서 부족한 바늘과 추를 보강하고요. 이쯤에서 우리는 긴급 회의에 들어갑니다. 원래는 내일이 귀국날인데 계속된 낚시 실패로 촬영 분량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저와 장동직 형님은 물론, 피디님도 이대로는 귀국하기 어렵다는 의견으로 입을 모아서 촬영을 이틀 연장하기로 합니다. 이틀 연장하니 두 번의 출조 기회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서둘러 잠을 청합니다.

 

 

다음 날 새벽, 출항

 

#. 무슬림 마을의 일탈과 돌발 상황

이날은 새롭게 합류한 전문 코디님과 함께 참치 마을 이장 집으로 향했습니다. 코디님과 이장은 친한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전날 통화로 통사정을 했는데요. 첫날은 선장과 선원이 모두 늦게 나와 골든타임을 놓쳤고, 둘째 날은 보수를 3배나 올려준다는데도 청년과 아이들만 보냈다. 그래서 이날은 이장이 꼭 좀 나서서 선장과 선원이 모두 제 시각에 출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자정에 일어나 일찌감치 마을로 향했습니다. 새벽 3시에 도착한 우리는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낚시를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코디네이터가 이장을 깨우러 아예 방으로들어갔는데 아무리 흔들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침 이장의 딸이 나와 있어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이어진 그녀의 답변은 제 귀를 의심하게 했죠.

 

전날 밤 마을에 잔치가 있어서 늦게까지 과음했다는 겁니다. 무슬림 마을에서 술 잔치가 열리고, 이장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고. 중학생 남자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담배 피우고(여기서는 흔한 일이라네요.) 새벽 기도 시간인데도 모스크로 향하는 이들은 뜸하고. 여기 무슬림 마을 맞나요? ㅠㅠ

 

제가 바라본 바자우족의 삶은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기준에 맞춘 잣대일 것이란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유목민 생활을 했던 그들의 역사, 가난과 생계의 위협에서 어쩔 수 없이 고기잡이로 연명해야 하는 그들의 삶이 다소 서글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술과 담배는 지친 일상에서 작은 위로가 되는 유일한 수단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은 선원들을 깨워 나가야 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총체적 난국을 맞이한 저와 <성난 물고기> 촬영팀. 과연 이 난국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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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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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운태
    2018.04.17 14: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국에서도 체리새우라고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데 매우 닮았군요.
  2. 2018.04.18 04: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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