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 제주 성산항

 

이곳은 제주 성산항 선착장. 방금 우도 갯바위 유어선이 도착했습니다. 오전 조과를 확인하는데 꾼들의 라이브웰이 가볍습니다. 5월 말~ 6월 초만 하더라도 긴꼬리벵에돔이 꽤 많이 잡혔는데 얼마 전부터 들어온 냉수대에 조황이 좋지 못하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낚시에 임할 줄 알았는데 풍경만 설렌다

 

며칠간 조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서울서 오면서 왜 최근 조황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한숨 ㅠㅠ) 시작부터 맥이 빠지는 상황.

 

 

저쪽도 그 마음을 아는지 손 흔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도가 보인다

 

선착장에서 우도까지는 약 15분. 이날 풍랑이 거셉니다. 오는 동안 노심초사 풍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요. 아 글쎄 말입니다. 제주도에서는 가장 안 좋다는 '샛바람(동풍)' 당첨. 얼쑤~!

 

 

원래 낚시란 것이 뚜껑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 바다낚시가 매력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의외성이 있어서겠지요. 그런데 그 의외성도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 이날 제가 쓸 수 있는 패는 많지 않습니다. 수온 X, 바람 X, 물색 O, 기압 X, 조류는 현장 가봐야 알고.

 

 

우도 작은 동산과 큰동산

 

우도 큰동산

 

배는 큰동산에 도착합니다. 오전에 들어갔던 사람이 철수하는데요.

 

 

조과를 확인하는데 25cm가 조금 넘는 벵에돔 3~4마리와 뺀찌 한 마리. 음.. 6월의 우도 치곤 박합니다.

 

 

작은동산과 우도 잠수함 계류장이 보입니다.

 

 

이제 배는 방향타를 틀어 비워두었던 포인트로 접근합니다. 주말이라 정말 많은 꾼이 우도에 들어와 있습니다.

 

 

던지면 퍽퍽 하고 물 것 같은 웅장한 포인트. 하지만 바닷속 마음을 알 수 없는 한낱 인간들.

 

 

제가 도착한 포인트는 웅장한 직벽 지대를 돌아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들어가는 진빌레.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저와 상원아빠님이 낚시 준비를 서두릅니다. 그나저나 포인트가 굉장히 넓어 보이죠? 수십 명이 낚시해도 될 것 같지만, 사실 진빌레의 낚시 정원은 4명. 많이 내려야 6명 정도입니다. 보기에는 아주 넓어 보이지만, 막상 자릴 잡으면 발판이 불편하고 밑밥통도 경사면에 미끄러지는 등 불편한 곳이 많습니다.

 

저는 이 포인트가 처음이지만, 쭉 다니면서 적절한 자리를 선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가 좋을 듯.

 

 

건너편에는 우도에서 매우 유명한 새우통 포인트가 자리합니다. 몇 년 전 방송 촬영 때 저곳에 내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냉수대가 덮쳐서인지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이날은 특별한 분을 모시고 낚시했습니다. 상원아빠님 말고요. ㅎㅎ 쯔리겐 제주지부 강병철님과 이재안님. 강병철님은 제주도에서 유명한 벵에돔 토너먼터이기도 합니다. 작년 WFG 한국 예선을 우승했고, 올해 6월 후쿠오카에서 펼쳐지는 WFG 본선에 진출해 일본의 열 명인들과 자웅을 겨루었는데요. 16강에 진출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이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사진은 상원아빠님이 강병철님에게 혼나는 장면입니다.

 

 

네. 계속 혼나고 계시는 상원아빠님... 은 아니고 강병철 님이 밑밥 점도 맞추는 비밀 팁을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입질의 추억한텐 절대 비밀이라면서(...)

 

 

그리곤 벵에돔 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품질 스윙을 알려주고 계신데요. (저는 안 보는 척 하면서 힐끔힐끔, 귀는 쫑긋쫑긋 ㅎㅎ) 그러면서 제게는 알려주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는군요. ^^

 

이후 상원아빠님은 마치 비밀병기라도 장착한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겁니다. 제가 봐도 이런 꿀팁은 인터넷이나 카페에서 볼 수 없거든요. 한 사람이 5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면서 얻는 낚시 노하우를 5분이면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팁은 지인이 아니면 잘 안 가르쳐줍니다. 저 또한 제가 알고 있는 팁을 블로그에 모두 쓰지 않습니다. 알짜배기는 혼자만 알고있..

 

어쨌든, 자신감이 충만해진 상원아빠님이 제게 만원빵 내기를 걸어오는데요. (햐~ 저 최근에 만원빵 진 적 없다니까요.) 대상어를 정하면 그것이 마릿수인지 씨알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실력보다는 이걸 잘 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곰곰이 생각하던 상원아빠님은 번뜩이는 표정으로 만원빵 조건을 내겁니다. (어떻게든 이겨 먹을라꼬 ㅎㅎ)

 

"입질님! 벵에돔 말고 긴꼬리벵에돔으로만 합시다. 25cm 이상, 가장 큰 씨알 잡은 사람이 이기는 거로."

"OK!"

 

 

중량감 있는 01채비를 선택

 

#. 나의 채비와 장비

로드 : 엔에스 알바트로스 VS 1-530

릴 : 시마노 BBX 하이퍼포스 2500번 LBD

원줄 : 쯔리겐 프릭션 제로 1.5호 서스펜드 타입

어신찌 : 쯔리겐 아시아 LC 01번, 조수우끼고무 M

목줄 : 토레이 일본선 1.5호 10m

바늘 : 벵에돔 전용 바늘 5호로 시작

 

참고로 쯔리겐 구멍찌의 01번은 0a(제로알파) 정도 되는 부력입니다. 포인트에는 맞바람과 옆바람이 번갈아 가며 불었고, 경사면을 따라 눈으로 훑으면 수심 3m도 안 되는 여밭이 꽤 멀리까지 뻗어있습니다. 한 마디로 장타 포인트. 그래서 원투성과 중량감이 좋은 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바람이 날리다 보니 찌는 가라앉히는 잠길찌 타입이 좋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01번(제로 알파나 제로씨에 해당하는 부력)을 선택했고, 채비 내림의 자연스러움과 원활한 하강을 위해 목줄은 10m를 연결해 목줄이 가진 비중으로 자연스럽게 눌러준다는 생각입니다. 

 

뭐 생각은 그럴싸하죠. 언제나 그랬듯이 뚜껑 열면 잡지도 못할 거면서 ㅋ

 

 

오랜만에 상원아빠님과 긴꼬리벵에돔 씨알을 걸고 만원빵 시작! 제가 먼저 낚시를 시작합니다.

 

 

아~ 느낌이 왠지 올 것 같은데? 전방 20m로 캐스팅한 뒤 밑밥 3~4주걱 품질해 주고 30초 동안은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충분히 가라앉았다 싶을 때 릴을 몇 바퀴 감아 뒷줄에 텐션이 걸릴 듯 말듯 해놓고, 손으로 살짝 잡아당기려는 찰나. 원줄이 쏜살같이 나갑니다.

 

"왔다!"

 

 

약 28cm급 긴꼬리벵에돔

 

"보고 계신가요? 상원아빠님"

 

이로써 선두를 차지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합니다.

 

 

놀래기

 

곧바로 상원아빠님이 뭔가를 걷어 올리는데 작은 놀래기네요. 포인트 앞쪽에는 이런 놀래기들이 지천입니다. 채비 걷었는데 미끼가 없다면 전부 이 녀석들 소행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이때 상원아빠님이 연타석 입질을 받아내는데..

 

 

엇! 이번에는 휨새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오~ 꽤 앙탈을 부리는데요. 설마 이걸로 역전당하나요? ㅎㅎ

 

 

30cm급 벵에돔

 

컥! 시작부터 역전극이 펼쳐집니다. 한눈에 봐도 저보다 1~2cm 큰 벵에돔을 잡아내면서 상원아빠님이 선두에 올라서나 싶은데..

 

 

일반 벵에돔 당첨, 빰빠라밤~!

 

긴꼬리벵에돔이 아니므로 무효. ㅎㅎ

 

 

한낮이라 긴꼬리벵에돔이 적극적으로 입질할 시간은 아닙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마음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아 쫌! 마음의 여유 좀 가질라 그러는데 상원아빠님이 너무 전투적으로 하시네요. 이번에도 벵에돔을 걸며 선두 자리를 위협하는데..

 

 

23cm급 긴꼬리벵에돔

 

이번에는 긴꼬리벵에돔이 맞는데 기준치 이하라 방생.

 

 

이번에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보통 이런 예감은 틀릴 때가 많은데요. 이날은 좀 달랐습니다. 갯바위 주변에는 전에 없던 포말이 거세게 일렁거리며 초들물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조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시종일관 무료하던 공간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그것은 바다는 제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메시지를 잘 읽으면 오늘도 무사히 배춧잎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순간 라인을 만지던 제 손가락에 희미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먹잇감을 노리며 주변을 배회하던 대물 긴꼬리벵에돔의 날개짓이 느껴지려고 합니다. 녀석이 꼬리지느러미를 찰 때마다 느껴지는 잔파동. 그것이 바늘과 라인을 타고 들어오면서(말도 안 되는 소릴 ㅎㅎ)

 

 

 

"왔다!"

 

그런데..엇?

 

"아~!"

갯바위에 난데없는 비명. 그 소리는 제 입에서 나온...

 

 

 

음악을 재생하세요.

 

이 상황에 가장 알맞는 음악을 올립니다. 제가 낚시하면서 SNS에 상황을 알리지 않을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는 고기를 못 잡았을 때, 또 하나는 사고가 났을 때. 이 날은 후자였습니다. 제주도 우도에서 긴꼬리벵에돔 낚시,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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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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