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돔회

 

언젠가 가족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실험 내용은 참돔회를 '3가지 상태'로 만들어 맛의 차이를 가늠해 보는 것인데요. 3가지 상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물에 씻지 않은 참돔회

2) 수돗물에 3초간 씻은 참돔회

3) 수돗물에 10초 이상 씻은 참돔회

 

세 가지 참돔회는 제가 임의로 배열했기에 저 외에 다른 사람은 생선회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시식하게 됩니다. 시식에 참여한 다섯 명은 가장 맛있는 생선회를 고르는 항목에서 한 명을 제외한 4명이 2)번을 고르는 뜻밖의 결과를 냈습니다. 나머지 1명은 3)번을 골랐습니다.

 

1)번은 엶은 비린내가 났고, 3)번은 다소 밍밍했다는 것이 이유인데요. 결과적으로는 2)번이 깔끔하면서 잡내가 없었습니다. 고작 5명으로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만, 이 결과가 제가 평소 생선회를 먹으면서 느꼈던 점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은 그간 오해했던 것 중 하나인 '생선회 맛과 민물의 상관관계'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생선회(포)를 얼음물에 씻거나 헹구는 것은 일식의 오랜 조리기법이다

 

#. 생선회를 수돗물에 씻으면 맛이 없어질까?

생선회에 일가견이 있다는 누리꾼들은 말합니다. "바닷물고기가 민물에 닿으면 수용성 맛 성분이 달아나버려 결과적으로 맛을 헤친다."고. 

 

유튜브에서는 수산시장에서 회를 뜨는 상인의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입니다. 생선회를 마치 걸레처럼 물에 빤 것이 과연 맛있을까? 하면서 대다수가 맛과 위생을 지적했습니다. 지금도 온라인에서는 "생선회가 물에 닿으면 맛이 없어진다."와 "물기를 닦아내면 상관없다"가 첨예하게 대립 중입니다.

 

 

 

일식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과거 이러한 논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합니다. 다시 말해, "수돗물이라도 잠깐 씻고 물기를 닦아내면 오히려 비린내를 없애줄 뿐 아니라 위생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종식된 논란이 우리나라는 이제야 하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음식 문화가 한층 성숙해지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한 번쯤은 거쳐야 할 건설적인 논쟁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1> 마츠카와 타이나 벵에돔 껍질을 토치 구이 처리한 생선포는 반드시 얼음물(민물)에 담가야 껍질에 붙은 불순물과 기름기가 제거되는 동시에 육질이 탱글탱글해진다

 

'마츠카와 타이'를 아시나요? 참돔(도미) 껍질에 뜨거운 물을 부어 껍질만 살짝 익힌 고급스러운 생선회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벵에돔도 토치로 껍질을 구워내죠. 이러한 생선회의 공통점은 열을 가한 후 얼음물에 담근다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하는 얼음물은 수돗물이나 정수한 물이죠.

 

얼음물에 담그면 열에 풀어진 근육이 낮은 온도에 수축하면서 살은 탱글탱글해집니다. 즉, 식감을 좋게 하는 동시에 껍질에 붙은 불순물과 기름기를 제거하는 효과를 보죠.

 

이 과정을 일식에서는 '아라이(あらい)'라고 합니다. 아라이는 씻거나 빤다는 의미. 대표적으로 '농어 아라이'가 있는데요. 누리꾼의 주장대로 생선회를 민물에 씻거나 담갔다고 맛이 달아나버린다면, 일식의 조리 기법인 아라이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아라이는 우리식 표현으로 '냉찜질' 정도입니다. 아무리 싱싱한 생선이라도 겉은 비린내를 유발하는 '트리메틸아민(Trimethylamine)'이 붙어 있습니다. 트리메틸아민은 생선 비린내를 유발하는 물질이지만, 물에는 잘 녹는 성질을 가집니다. 그러니 수돗물이든 생수든 담갔다가 살짝 흔들어주는 것으로 쉽게 제거됩니다.

 

이와 동시에 제거되는 것이 생선 표면에 붙은 기름기입니다. 기름기가 많은 생선회를 담백하게 즐길 때 이러한 냉찜질을 하면, 불필요한 기름기가 씻기면서 생선회 맛이 한층 깔끔하고 위생적으로 됩니다. 

 

물론, 물에 씻거나 담갔다면 재빨리 건져 수분을 닦아야 합니다. 마른 수건이나 키친타월에 생선포를 돌돌 말아 수분을 닦아주는 것. 이러한 방법은 결과적으로 맛과 위생을 동시에 챙기게 합니다.

 

 

여름 생선회일수록 더더욱 수돗물에 씻어야 살균 효과를 볼 수 있다

 

#. 생선회를 수돗물에 씻어야 하는 중대한 이유

앞서 말한 이유 외에도 생선회를 수돗물에 씻어야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충남에서 50대 남성이 대하를 날로 먹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죠. 사인은 '비브리오 패혈증'이었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수온 18도 이상이면 급격하게 증식합니다. 일 년 중 수온이 가장 높은 9월은 온 바다가 비브리오 블니피쿠스균 천지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름 생선회를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첫 번째, 위생적으로 처리된 생선회를 먹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설사 비브리오 균이 우리 몸에 침투했더라도 정상 면역력을 갖추었기에 방어가 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상실되면, 여름에 회를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대하를 회로 먹다 사망한 남성은 기저질환(급성신손상)을 앓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회를 먹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입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간질환자 같은 고위험군에 발병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비브리오 패혈증의 출현 시기인 7~9월은 날음식의 섭취를 삼가고 익혀 먹을 것을 권장하는 겁니다. (올해는 유례 없는 폭염에 해수온 상승 폭이 큽니다. 10월까지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비브리오 패혈증을 예방해주는 예방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돗물'입니다. 비브리오 균은 민물에 매우 약하기 때문에 단 몇 초라도 생선회를 수돗물에 씻으면 살균 효과를 봅니다.

 

 

지난여름에 낚시로 잡은 민어회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죠? 저와 우리 가족은 계절 가리지 않고 회를 먹는데요. 그 뜨거운 바다에서 잡은 민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회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위생적인 처리'와 '수돗물 소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직접 낚아 손수 회를 칠 때도 7~9월만큼은 반드시 수돗물이나 생수에 살짝 헹굽니다. 그런 다음 뽀송뽀송하게 물기를 닦아내고 썰면, 맛에서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든 생선회는 다섯 살 난 어린 딸을 비롯해 온 가족이 먹습니다.

 

 

<사진 2> 삼투압을 막기 위해선 횟감과 얼음(민물)을 철저히 격리해 포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닷물고기가 민물에 의해 맛을 잃게 되는 경우는 삼투압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삼투압이 일어나려면 생선회가 민물에 수분 이상 노출돼야 합니다. 그러면 삼투압 현상에 의한 농도 조절로 수용성 맛 성분이 빠져나가는데요. 그랬을 때 생선회는 비린내가 나고 밍밍한 맛이 나서 먹지 못하게 됩니다. 바지락이나 새조개 같은 조갯살을 수돗물에 씻지 말고, 소금물에 씻어두라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사진 2>는 대마도에서 낚시로 잡은 횟감을 서울로 공수할 때 포장법입니다. 반나절이 걸리는 여정에 결국은 얼음이 반쯤 녹기 때문에 그 녹은 물이 횟감에 닿지 않게끔 철처히 격리한 것입니다. 이때 횟감은 김장용 봉투에 감쌓는데 가끔 날카로운 지느러미에 구멍이 나고 물이 스며들어 횟감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횟감이 민물에 닿아 망치려면 수분 이상 노출돼야만 합니다. 그러니 단순히 횟감을 수돗물에 씻는다고 맛이 달아난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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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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