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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부부는 바다낚시를 취미로 하다보니 도서지방을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낚시가 잘 되는 곳을 찾다보니 추자도나 울릉도, 제주도와 같은 지역을 선호하게 되는데요. 갈때마다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은 '숙박'입니다. 어차피 낚시하러 왔기 때문에 숙박시설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낚시배 출항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기에 우리부부에게 숙박이란 오로지 '잠만 자다 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였죠. 가뜩이나 낚시로 인해 지출이 많다보니 최대한 저렴한 민박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자도 낚시민박(좌), 울릉도 민박(우)
보다시피 방도 깔끔하고 미니 냉장고와 TV등 있을껀 다 갖춰져 있어 낚시하면서 2~3일 묵고 지내기엔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렴한 숙박만 쫒다보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낚시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샤워시설"이 부실하면 좀 그렇더라구요.
바다낚시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반나절 이상 뙤약볕에서 낚시하다 보면 내의가 흠뻑 젖을 정도로 온몸이 땀에 쩔어버립니다. 여기저기서 풍겨지는 비린내는 또 어떻구요. 그렇게 낚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샤워부터 하게 되는데 이 샤워기의 수압이 약하거나 추운날 따듯한 물도 제대로 안나오게 된다면 주머니 가벼운 자의 설움이 솟구치곤 했지요. ^^;;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아내와 함께 다니다 보니 기본적으로 씻는 부분에 있어선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일부 낚시 민박집들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각 방마다 따로 없고 공동 시설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제가 묵었던 추자도 민박이 그랬어요.) 낚시가 끝나면 대부분 30~50대의 아저씨들이 차례대로 이용하기에 아내는 주인집 샤워실을 이용했던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아내로선 정말 불편한 숙박이지요. 하지만 저렴한 숙박비에 이곳 낚시배를 이용해야 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해비치 호텔, 제주도 표선
서론이 길었는데요. 그랬던 우리부부가 하루숙박 30만원에 달하는 특급호텔을 이용한다는건 사실 꿈에도 못 꿀 일입니다. 이틀을 묵었으니 60만원. 그런데 사람이 살다보니 별일입니다. 6성급으로 유명한 해비치 호텔에서 초청을 다 받고 말입니다. 허구헌날 민박집에서만 잤던 제 인생에 해뜰날이 오기라도 한 걸까요? ^^;
하지만 아무리 특급호텔이라 하더라도 불편한 점은 있습니다. 물론 낚시만 하던 촌놈이 처음 이용해 본 느낌에 지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낚시 여행을 목적으로 온 입장에서 하루 숙박 30만원짜리의 특급호텔을 이용해 본 소감을 적어볼까 합니다.
해비치 호텔의 디럭스룸
일단 호텔에 들어선 순간 첫 인상부터가 다르긴 달랐습니다. 하루 숙박 3만원짜리 민박집만 이용하던 촌놈이 30만원짜리 디럭스룸을 이용하니 그럴 수 밖에요. 솔직히 말해 방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X팔림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이 나이가 되도록 5성급 호텔 한번 이용해 본 적 없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나는 무얼하며 살았나? 싶기도 하고.. 남편도 촌놈이지만 그런 사정은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줄곧 낚시 여행이라는 핑계로 변변한 호텔 한번 이용해 본적이 없으니(해외여행 빼고 ^^;) 괜히 방 구석 여기저기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보는 아내.
욕실과 화장대
샤워룸이 닫히면 유리창을 통해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이것도 적응 안됨 ^^;
뭐가 그리 신기한지 눈이 커질대로 커진 아내는 화장대에 구비된 물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감탄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처녀 같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진 늘상 허름한 샤워실만 이용해 왔고 딸랑 비누 하나, 샴푸 하나만 사용해 왔으니 말입니다.
"무슨 목욕하는데 뭐가 이리 많아?"
사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영화에서나 보던 거품욕도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우선 자야합니다. 벌써 밤 11시인데 내일 새벽엔 낚시도 하고 촬영도 해야 하므로 새벽 4시에 일어나려면 대충 씻고 잠을 재촉해야만 합니다.
샤워를 마치고 옷장을 열어보니 그간 살아오면서 한번도 입어보지 못했던 옷이 걸려 있습니다. 드라마에선 허구헌날 이걸 입고 자더만.. 나도 한번 입어볼까? 하는 맘에 입어봤는데 잘 어울리나요? ^^;
그런데 솔직히 말해 불편하더군요. 한번도 입어버릇하지 않은 가운이다 보니 그런걸까요? 왜 자꾸 옷 자락이 벌어지는건지.. 이걸 입고 침대에 누우니 옷 자락이 접히거나 열리는등 어딘가 모르게 컨트롤이 안됩니다. 에이 그냥 츄리닝이나 입고 자자 ㅋㅋ
미니바, 표선 해비치 호텔
이런건 그림의 떡입니다. 가격표를 보니 다소 후덜덜하네요. 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밖에 나가서 사먹으면 1~2천원 하는 걸 왜 여기서 3~4천원 주고 마셔야 하는지.. ^^; 그나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생수 두병. 근데 물이 시원하지 않아 냉장고 안에 있는 생수랑 바꿔 먹었습니다. 어차피 동일한 제품이니 상관없으리라 보고.. 해비치 호텔의 첫 인상은 민박집만 이용했던 저로선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럭셔리함과 기대감에 마음을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특급호텔에서 촌스러운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남 모를 아쉬움이 밀려오더군요.
룸에서 바라본 씨뷰
호텔 룸에서 바라본 풍경
창 밖으로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로 유명한 김태희 등대가 보인다.
새벽 4시로 맞춰놓은 알람에 잠이 깬 우리부부는 곧바로 낚시복을 갈아 입고선 방을 나섰습니다. 어두 컴컴한 복도를 해치며 나가니 호텔 로비에 있는 직원분이 웃음으로 반기는듯 하지만 새벽에 왠 스키복장을 한 커플?이 밤길을 나서나 싶을껍니다. 주로 관광객이 이용하는 호텔이다 보니 꼭두새벽부터 낚시복장을 하고 나온 커플이 뭇내 신기하게 비춰질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아쉬웠던건 위 사진처럼 발코니에 앉아 탁 트인 풍경을 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부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숙박권에 포함된 조식뷔페는 또 어떻구요. 뷔페가 시작되는 가장 이른 시간이 아침 7시인데 그때쯤이면 우리는 한창 낚시를 하고 있을 시간이지요. 새벽같이 나와 호텔 조식도 이용못하고 편의점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야 하니 괜히 낚시하러 왔나 싶은 생각도 들더랍니다.^^;
물과 얼음 서비스가 되는 룸
낚시를 마친 후 민박집과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들의 옷차림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한번씩 지나가는 시선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엘리베이터에 여러 사람과 함께 탔을 땐 혹시라도 비린내가 풍기는건 아닌가 신경도 쓰입니다.
무엇보다도 곤혹스러웠던 건 잡은 생선의 처리입니다. 보통 낚시 민박집의 경우 대형 냉동고가 있어 몇 일 동안 낚시하다 잡아들인 생선도 이름표를 붙여가며 보관할 수 있지만 ,호텔은 잡은 생선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결국 복도 중간에 있는 워터룸에서 얼음을 몇 알 담아 보관할 수 있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은 기껏 잡은 고기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그래봐야 볼락 몇 마리였지만) 무엇보다도 아쉬운건 호텔 시설물(수영장, 헬스클럽)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 이게 다 빡빡하게 잡아놨던 스케쥴 때문이지요.
조식 뷔페에서 본 깜찍한 식기, 표선 해비치 호텔
푸른 파도소리와 와인 한잔의 여유, 별비치 가든
결국 아내의 입이 삐죽 나와버렸습니다.
"좋은 곳에 묵으면 뭐하나? 하고싶은건 하나도 못해보고..."
첫날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밥도 거르면서 낚시를 해야하는 아내. 그녀의 입장에선 일반 관광객들이 엄청 부러웠던 것이지요. 그동안 나 따라 낚시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어야 하니 한탄스러울 만도 해요. 그런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하게 된 궁여지책이 있으니 그것은..
'포기'와 '휴식'이였습니다.
삐져버린 아내를 달래기 위해 가장 확실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낚시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여유로움을 만끽하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였죠. 마침 호텔측의 배려로 '별비치 가든'이란 장소에서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는데 처음 체크인 할 때만 해도 제공해 준다는 것을 굳이 뿌리치며 사양했습니다.
이유는 이용시간이 낚시 스케쥴과 겹치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없다'는 것이였죠. 순간 아내의 얼굴을 보니 굉장히 아쉬워 하더군요. ^^; 이런 걸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냐는 표정입니다. 하지만 눈치없는 저는 끝까지 사양해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입이 완전히 나와버린 아내. 뭔가 의욕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에 순간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부랴부랴 로비로 뛰어가 별비치 가든인가 뭔가를 이용하기로 맘 먹은 거지요. 대신 낚시는 포기해야 했습니다.(이 날 하루종일 낚시 스케쥴로 잡아놔서^^;) 다행히도 호텔측에선 취소를 안시켰던 모양이예요. 덕분에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관련글 : 6성급 호텔의 낭만적인 와인 서비스, 별비치 가든)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낚시와 촬영을 과감히 취소하고 느즈막히 일어나 호텔 조식을 이용했습니다. 모처럼 제주도 낚시를 위해 왔는데 낚시다운 낚시도 못해보고 서울로 올라갈 생각에 저로선 많이 아쉽지만 반대로 아내는 연신 히죽히죽입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낚시도 많이 안하고(?) 편하게 쉬다 간다며 아주 만족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내 입이 들어가고 제 입이 나올 지경) 확률은 떨어지지만 낚시야 오후에도 할 수 있으니깐 오전에 누릴 수 있는 여유는 다 누리고 호텔을 빠져나왔습니다.
주로 3만원짜리 민박을 이용했던 우리가 30만원짜리 숙박을 이용했다고 해서 달라진건 크게 없었습니다. 중요한건 내 자신과 동반인의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고생을 감수해서라도 낚시를 더 많이 했다면 제 블로그 지면에 낚시 이야기가 늘어났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모르죠. 대물을 잡아서 기념사진이라도 한방 찍고 왔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부부가 함께 즐기는 낚시라 해도 어느 한쪽이 불편해 하거나 맘 고생을 하게 되면 아무리 특급호텔에서 묵는다 해도 반쪽짜리 추억만 남긴 채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민박과 호텔, 시설만 놓고 본다면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그보다 중요했던건 제가 "포기"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게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아내의 만족' 이였습니다. 여기에 의미를 두니 낚시 못하고 온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버린 이틀간의 특급호텔 이용기. 한바탕 폭풍이 닥친듯 시간은 무심히도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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