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행] 월정리 해안도로에서 본 이색적인 풍경



아침부터 불어재끼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에 일찌감치 낚시를 포기한 저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월정리 해안도로를 찾았습니다. 처음엔 명칭도 모른 채 무작정 해안도로를 따라 나선 길이였지요. 알고보니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시작되어 김녕 해수욕장까지 약 20여km가 넘는 해안도로였습니다.


처음 눈에 들어온 풍경은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법한 해변가지만 가을이여서 그런지 한적하다 못해 적적한 해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달리던 차를 세웁니다. 잠시나마 바닷바람을 쐬며 이 날 하지 못했던 낚시를 대신해 멀찌감치 서서 바다를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그런데 그 한적했던 풍경속에서 눈에 들어온 인파들. 가만보니 바다쪽이 아닌 작은 연못처럼 생긴 또랑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도대체 뭐하는 걸까?

 

 

 


해안도로와 인접해 있는 월정리 해변, 제주도



월정리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

구름 한점 없는 화창한 오후였지만 바람과 파도는 제법 매서웠으니 낚시꾼은 울상이요 서퍼들은 웃는 날. 한때 가졌던 꿈 중 하나가 '파도타기'를 해보는 것인데 그래서 저 분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행여나 서핑을 잘한다 해도 몸매가 받춰주질 못해 별로 멋있을꺼 같지 않은 제 몸뚱아리. 잠깐의 즐거운 상상에 그친 저는 그저 해변을 걸어 봅니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저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로 앞까지 걸어 나와 눈 앞에 보이는 두개의 돌맹이를 방패막이로 삼아 섭니다. 적어도 제 허리춤까지는 잡아 먹을 것만 같았던 파도가 겹겹이 물파장을 일으키며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듯 하더니 발 앞에선 맥없이 부서집니다. 유구한 세월을 견디어 온 저 두개의 돌덩이가 약간의 방파제 역할을 해준 것일까.

저는 밀려온 파도가 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소멸되는 지점을 찾아놓고선 어느새 그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파도의 에너지가 모두 같지는 않을텐데..나름 스스로 정해놓은 마지노선, 이것을 믿고 방심했다간 한번은 당하고 말리라.. 숙소로 돌아와 신발을 빨고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물러나게 됩니다.


월정리 해변의 고운 모래들

현지꾼들의 낚시하는 모습, 월정리 해안도로 앞 바다

월정리 해변을 걷다 다시 차를 탄 후 해안도로를 탔습니다. 몇 초 달리지 않았는데 곧바로 들어온 풍경은 현지꾼들의 낚시 모습. 장화를 신고 진입해 뭔가를 열심히 던지고 감는데요. 그 모습을 보니 일단 벵에돔은 아닌 거 같고 뭘 그리 낚으실까? ^^


발 밑을 보니 숭어떼들이 유유히 노닐 고 있습니다. 이 곳 뿐만 아니예요. 이곳 얕은 바다를 자세히 보면 저런 숭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이렇게 되면 떠오르는 낚시가 하나 있지요? ^^


마침 훌치기로 숭어를 걸어내고 있는 제주도 현지꾼

서해 꾼들만 즐기는 줄 알았던 숭어 훌치기가 이곳 제주도에도 있을 줄이야. ^^ 채비하는 방법도 거의 같습니다. 앞쪽에 떼지어 다니는 숭어보다 좀 더 멀리 던진 후 숭어가 지나갈 때 확 끌어당겨 몸통에 바늘을 꽂히게 하는.. 워낙 개체수가 많다보니 이대로 낚시하게 되면 저분이 집으로 향할 즈음 숭어로 가득 채운 빨간 양동이를 한아름 들고 갈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본 이색 풍경은 따로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곳은 바다가 아닌 작은 연못가?


알고 봤더니 이곳은 뒷쪽에 보이는 "행원육상양식단지"에서 흘러나오는 배수구로 그 유명한 제주산 양식 광어를 키우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꾼들이 모인 이유는 생뚱맞게도 양식 광어를 잡기 위해서라고.. ^^; 바로 저 배수구를 통해 일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광어들이 배출되는데 바다로 흘러보내기 전 이곳에 머무르다 낚인다고 해요.


상품가치가 떨어져서 배출된다니 광어 상태가 어떻길래? 하는 의문점이 들었지만 이곳에 모인 현지꾼들이 광어를 잡아 드신다고 하는 걸 봐선 먹어도 별 문제는 없나 봅니다.


배수구에서 배출되는 해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따금 손바닥 크기만한 광어가 물쌀에 떠밀려 나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사실 방파제 아니면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풍경만 상상했지, 이렇게 인공적으로 조성된 틀 안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비록 정상적으로 출하 가능한 광어는 아니지만 비교적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럿 꾼들이 모인것 같습니다.


지금은 물색의 탁도가 흐려 바닥이 잘 안보이지만 어떤날은 물색이 맑아 바닥에 붙어 있는 광어까지 훤히 보인다고 해요. 물속에 훤히 보이는 광어를 미끼로 꼬셔내기까지 그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낚시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일 것 같습니다. 이 날은 장비를 숙소에 놓고 오는 바람에 낚시 할 수 없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주에 머무는 동안 이곳에서 낚시대를 한번 놀려보고 싶군요. 물론 캐치앤 릴리즈로 말입니다. ^^


옆 조사님의 조과를 확인해 보니 살림망엔 40cm급 광어 한마리가 들어 있었다


지나가다가 열낚중인 조사님 한분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이미 중칫급 광어 한마리를 잡으셨다며 시선을 찌에서 떼지 않으셨는데요. 저는 광어 낚시하면 당연히 지그헤드와 웜을 끼운 루어낚시만 생각했지 이곳에서 대부분 사용중인 찌낚시 채비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찌를 사용하는지는 일일이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배수구에서 흘러나오는 해수의 양이 많아 물쌀이 제법 강해요.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는 양식 광어는 잠시동안 적응기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배출되어진 개체들은 먹이 활동이 활발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일정 시간이 지나게 되면 바다로 나가기 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활동하는데 이때 꾼들의 꼬임에 넘어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보면 참 불쌍한 어생이 아닐 수 없군요. ^^; 어차피 인간들의 미각을 충족시켜야 할 운명, 그 이전까지는 그래도 양식장에서 편하게 사료를 받아 먹으며 자랄 수 있었을 운명인데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양식장에서 퇴출되는 불명예를 앉습니다. 언제나 받아 먹기만 했던 양식광어는 자연상태에서 먹고 살기가 빠듯해지자 스스로 사냥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지는데 하필 꾼에게 걸려들줄이야. 이래도 죽을 운명, 저래도 죽을 운명인가 봅니다.

어제는 숙소 근처 작은 방파제를 둘러봤습니다. 내항쪽 물속은 모래밭으로 되어 있는데도 유유히 지나가는 물고기 떼가 보여 한참을 살펴보는데 바로 발 앞에 광어가 떡하니 있는 것을 발견. 이 녀석을 잡기 위해 급하게 낚시대를 폈지 뭐예요. 그런데 미끼가 없어 아내는 미끼를 구하러 갔고,  그 사이 광어는 그 자리를 떠나 유유히 헤엄쳐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때 헤엄치는 걸 자세히 관찰했는데 배가 시커멓더라구요.


아마 이곳에서 배출되어진 양식 광어가 깊은 바닷속에선 적응이 힘드니 잔잔한 내항으로 들어와 생존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광어가 측은해져 낚시할 생각은 사라지고, 아내는 미끼를 구해왔지만 써보지도 못한 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 날은 고기가 잡힌다면 낚시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삼 깨닭았다고나 할까요. 월정리 해안도로에서의 이색 낚시 풍경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저는 다시 차를 타고 산굼부리로 향합니다. 제주 생활 1주일차, 이제 슬슬 재미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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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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