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만 시켜도 정성가득,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맛집


    맛평을 까다롭게 하는 저에게 올해 두번째로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맛집"이 나왔습니다. 첫번째는 서귀포에 있는 OO 음식점이였지요.(관련글 :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 맛집)


    이번에도 제목에 충실하고자 "찾아가는 방법 및 상호"에 대해선 일절 가리겠습니다. 이유는.. 아무리 괜찮은 맛집이라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되면 그 자리는 미어터질 것이고 그러다가 안타깝게 변질되는 모습을 적잖히 봐왔기 때문입니다.(그래도 찾아가실 분들은 어떻게든 찾아 가시더군요.) 저는 이영돈 PD의 착한맛집 소개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소개되면서 우리 주변엔 이런 식당도 있구나란 것을 알리고 맛볼 수 있는 기회 제공을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땐 분명 거기에 따른 폐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집이 변질되는 것은 오로지 식당 주인의 잘못이지 않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요. 물론 식당 주인도 잘못이 있겠지만 실은 주변 환경이 식당의 변질을 부축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지금까지 익히 봐 온 사실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도록 하고요. 오늘은 제주도에도 뻔한 관광지 음식점이 아닌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주도 어느 도로변에 위치한 아담한 음식점

    지금 보시는 집은 별관입니다.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이와 비슷한 규모로 한 채 더 있는데 거기가 본관인 것 같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뭔가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돌담으로 둘러쳐진 미니 정원, 보라색 지붕, 컬러풀한 외관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집 주인장의 집 꾸미기 취향이 각별해 보여요. 자세히 보면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닌 기존의 옛 주택을 개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말해 넉넉한 자본력으로 식당을 세운 게 아니고, 그냥 있는 자본을 이용해 주택을 개조한 후 꾸며 왔다는 것인데요. 자신의 가게를 어필하고 싶다면 간판에 각별한 공을 들이거나 블로그 마케팅을 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집은 인터넷 후기도 많지 않으며, 특히 이곳에서 본 모습들은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수준의 집 꾸미기이니, 주인장의 그러한 애착심은 맛으로도 충분히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내부를 둘러보니 그러한 생각은 점점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대신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공간에서 아늑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점. 여기저기 비치해 둔 화초들과 장식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분위기가 나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의 멋과 맛을 알리는데 괜찮아 보입니다.


    이곳은 별관의 모습입니다. 제주도의 옛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이 공간은 다소 창고같은 느낌이 들지만 나름대로 꾸밀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좀 어설프지요. 전문적인 시공자가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소품들을 가지고 취향껏 꾸미다 보니 통일성은 다소 떨어지는데요.


    저 통나무에 유리 테이블과 낡은 나무 의자는 서로 어울리지 않았고, 뒷쪽에 있는 2인석 테이블은 현대적인 느낌이 강해 이 곳 컨셉과는 아예 동떨어져 어딘가 모르게 조잡해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공간을 꾸밀려고 시도한 흔적이 좋아 보입니다.



    파티션을 둠으로써 연인들이 간단히 차 한잔 할 수 있게 꾸민 공간이 아늑해 보입니다. 딱딱해 보이는 의자를 빼면 말이지요.^^



    별관에도 방이 하나 있습니다. 두명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 치고 이 정도면 명당이 아닐까.. 곳곳엔 주인장의 취향이 느껴지는 소품들이 즐비하고 그것들은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 화사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약간의 언밸런스적인 요소가 보입니다. 화사한 공간에서의 조명등에 붙여진 나뭇잎은 다소 쓸쓸해 보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소품들로 치장한 흔적이 유난히 많습니다. 깨진 조개 껍데기라던가 구멍이 숭숭 난 낙엽 따위를 덕지덕지 붙인.. 아무래도 주인장의 취향은 빈티지를 지향하는듯 보입니다만 전통과의 조화로움에서 약간의 혼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테이블엔 화초와 시집, 수저 받이가 있는데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간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천을 덮어 놓은 수저통입니다.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지요.

     

    식사는 딱 세가지만 판매합니다. 음료와 주류도 판매하는데 제주도에서 좀 꾸몄다 싶은 카페의 커피 값을 생각하자면 상당히 착한 가격입니다. 주류쪽도 마찬가지. 소주 3,500~4,000원으로 파는 집들이 허다한 제주도에서 이 정도면 돈에 욕심이 없다고도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류야 말로 남는 장사이기 때문인데요. 바로 이 근방의 다른 식당에도 소주 한병을 4,000원에 팝니다. 


    그래서 물었죠. 왜 소주가 4천원이냐고? 그랬더니 거기 아주머니께서 하는 말.. 육지에서 섬으로 들여오는 비용이 있어 비싸다며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또 물었죠.

    "그런데요 아주머니, 한라산 소주는 제주도에서 생산한거 아닌가요? 이건 왜 4천원이죠?"

    아주머니 대답이 없으십니다. 소주 한병에 500~1,000원 붙여 팔면 그 이윤이 상당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팔고 있는 제주도에 이 가격을책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그런데 한가지 의문점이 든 건 소주와 맥주를 팔면서 안주는 팔지 않네요? 설마 비빔밥을 안주로 먹을린 없을테고.. 예약만으로 받는 백숙만이 이 집에선 유일한 술꺼리로 보이는군요.


    어쨌든 저는 삼색들깨수제비(7,000원)와 강된장쌈정식(10,000원)을 주문해 봅니다. 아래는 깔리는 반찬들인데 그릇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맛에 정성을 담은 집들의 공통점 하나 있지요. 바로..
     
    "그릇에도 신경 쓴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부침개

    단호박 향이 은은히 났던 부침개.


    셀러드

    여기 사용된 셀러드 재료들은 바로 옆 텃밭에서 키워진 유기농 채소.


    참치전

    통조림 참치를 넣어 반죽한 걸 부쳤는데 집에서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해준 그런 맛이 납니다.


    중국산 식재료가 난무하는 요즘이지만 이 집은 전부 국내산 재료를 쓰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쌀, 김치, 고추가루, 돼지고기에 대해 국내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부 제주도의 관광지 식당에선 수입산, 중국산 쓰지만) 하단 중앙에 있는 비엔나 소시지는 밀가루 맛이 많이 나서 다소 아쉽습니다.

    이는 소시지 선정이 아쉽기도 하지만 실은 시중에 나온 소시지들 상당수의 품질이 엉망인 탓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할말이 많습니다. 인스턴트 섭취를 줄인다는 저도 비엔나 소시지 만큼은 마니아를 자처할 정도로 여러 제품들을 사먹어 왔는데요. 싼 게 비지떡인 줄로만 알던 이 소시지, 100g당 비싼 단가를 자랑하는 제품마저도 밀가루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포장만 그럴싸하게 해서 마트에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가며 팔지 않습니까? 제가 거기에 몇 번 속았습니다. 국내산 돈육 몇 % 이것이 과연 믿을만한 수치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돼지고기 굴소스 볶음

    솔직히 이건 좀 엔지입니다. 이 집이 슬로건으로 내건 문구가 "조미료 사용은 일체 없다"인데 직접 굴소스를 만들지 않는 한, 시판되는 굴소스는 그 자체가 조미료 덩어리입니다. 아무래도 쌈을 사먹어야 하기에 돼지고기 볶음을 낸 거 같지만, 그 좋은 유기농 쌈에 왜 이런 반찬을 싸먹으라는 건지 좀 의아하군요.


    함께 들어간 채소도 숨이 죽어 볼품이 없습니다. 저 같으면 대패 삼겹살이라도 좋으니 전날에 미리 양념에 재어놨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후레쉬하게 볶아내어(대패 삼겹살이므로 단가도 절감하고 볶는 시간도 단축되며, 화력이 좋으면 불맛도 살립니다.) 재료의 텍스춰를 살리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불고기 양념도 좋고 제육볶음 양념도 좋습니다. 끈적한 굴소스에 쩔은 양념만은 제발..

    반찬 양도 무리하게 담아내지 않아 재활용 걱정이 없습니다. 양이 적을 수도 있지만 필요한 건 언제든 리필해 주십니다. 김치는 물김치 형태로 찹쌀풀로 쒀서 만든 느낌이 확연히 나 집에서 먹는 느낌이 났습니다. 아래쪽은 볶은 김치. 이 메뉴의 주인공인 강된장은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여져 나옵니다. 직접 담근건지는 모르지만(항아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 못했슴) 무난한 맛의 강된장입니다.


    잡곡밥과 된장국

    된장국에 은은한 멸치육수 향이 느껴지네요. 조미료가 안들어갔기에 어떤 분들에게는 다소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유기농 쌈

    텃밭에서 직접 키운다는 유기농 쌈입니다. 상당히 푸짐하죠? 지금까지 보신 상차림은 2인상이 아닙니다.


    주문한 건 삼색들깨수제비(7,000원)와 강된장쌈정식(10,000원)

    "이것은 1인 상입니다."

    강된장쌈정식의 1인 가격은 만원. 그렇게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상차림은 왠지 2인분 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수제비는 단품 메뉴이니 그렇다 쳐도 한정식은 보통 1인분씩 주문을 안받거든요. 아무래도 많은 반찬들이 깔리기 때문에 여럿이 시켜줘야 남는 장사이기도 하고, 실제로 저도 주문했을 당시 그렇게는 안받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1인 상차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2인 상차림으로 보여지는데 여기에 대해 물었더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는 말..

    "그렇다고 이 반찬들을 어떻게 혼자서만 드시게 내놔요. 이왕 낸 거 함께 드시라고 냅니다"

    (참고로 수제비를 시키면 이러한 반찬들이 안깔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빠졌다며 갓 볶은 훈제오리가 뒤늦게 나오고

    이 집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들

    구멍이 숭숭 난 모습들, 유기농 쌈 채소의 특징이지요. 맨 위에 난 구멍은 왠지 익살스러운 표정을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맛을 봤는데 유기농 특유의 쌉사름한 향이 입안 가득 들어옵니다. 유기농 쌈 채소가 마트에서 파는 쌈 채소와 다른 점, 바로 향이 강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삼색들께수제비

    수수하고 단아해 보이는 톤에 꽃잎이 뿌려져 나온 수제비. 그 모습을 보니 여백의 미를 살린 미술 작품처럼 느껴지는군요. 언틋 보기엔 심심한 감이 있습니다. 저 안엔 무엇이 들었을까..



    직접 빚은 수제비가 세가지 컬러로 나옵니다. 색상만으로 들어간 재료를 알아맞추긴 어렵지만 예상컨데 시금치, 백년초, 단호박과 같은 재료들을 빻아 가루를 내어 수제비 반죽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질감이 살아 있었고 들어간 국물은 갓난 아기들이 먹어도 될 만큼 자극이 없습니다. 구수하면서 은은하게 전해오는 들께국물. 그 점도와 간의 세기에 적잖은 공력이 보입니다. 양은 남성분이 드시기엔 조금 부족하고, 여성이 드시기엔 적당량입니다.

    이 정도의 맛과 분위기,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의 싹싹한 친절함이라면.. 특히 수저통을 덮어 놓는 센스, 유기그릇에 공을 들인 점, 손수 가꾼 유기농 쌈 채소에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다는 점(시판되는 굴소스나 간장에 들어간 MSG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1인상을 받는 인심까지 미루어 본다면 감히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 맛집"으로 칭해도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이런 집은 어련히들 알아서 입소문 타고 오기 마련이지요. 금전적으로 비싼 댓가를 치뤄가며 홍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금전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 블로거 혹은 바이럴 마케팅사들이 이런 집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해서 이 집을 검색해보니 지극히 개인적으로 다녀간 손님(블로거라 할 수도 없는)의 솔직한 후기 2~3개 이외엔 포스팅이 전무합니다. 어쩌면 이 글도 발행하자마자 포털 검색의 10페이지 뒷쪽으로 밀려 읽히지 않은 채 잠들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맛집 정보들은 검색 최적화를 위해 OO맛집과 상호명을 매 문장마다 거론하는 글들이 포털 검색 결과의 최상단을 차지하므로 제 글이 수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진짜 맛집은 정상적인 검색 방법으로는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상업적으로 얼룩진 맛집 글들은 검색 최상단에 위치하고, 그나마 좀 먹을만 하고 솔직한 후기는 저만치 밀려나 노출이 안되고 있고.. 그것이 우리나라 포털 검색의 한계입니다.

    저는 이 곳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대형 관광버스가 오고 거기서 수십명의 관광객들이 우루루 들어가는 모습을 원치 않습니다. 어차피 그런 집들은 여행사에게 일정 커미션을 주고 하기에 이 집이 그럴수는 없겠지만.. 그저 원할 때, 지금과 같은 운치를 느끼면서 여유있게 식사하고픈 마음입니다. 또 그러한 환경이 뒷받침 되야 텃밭의 쌈 채소도 모자름이 없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며, 또 지금과 같이 양질의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상호와 연락처는 가리겠습니다. 이 점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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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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