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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호텔(El Graco), 그리스 산토리니
엘 그레코 호텔은 산토리니 여행의 중심지인 피라 마을에서 800m 정도 떨어진 4성급 리조트입니다. 허니문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이아 마을의 5성급 호텔들과는 달리, 주로 휴양차 찾은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호텔 조식에 대한 평은 썩 좋지 못합니다. 기대를 접고 이용해 본 4박 5일간의 조식 후기를 남깁니다.
조식은 지상에 있는 별관을 이용합니다. 워낙 호텔 부지가 넓어서 객실 위치에 따라 많이 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분위기는 4성급 호텔답게 정찬 느낌이 나는 화이트 식탁보와 커튼, 벽, 여기에 원목 느낌이 나는 의자와 샹들리에가 조화를 이룹니다. 저렴해 보이지 않는 식사 분위기에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아침 식사가 될 것 같습니다.
빵과 토스트기
다양한 종류는 아니지만, 간이 되어 있지 않은 기본적인 식빵과 호밀빵 등이 제공되며, 이용자가 빵칼로 직접 썰어서 가져가는 형식입니다.
각종 쨈과 견과류.
시리얼과 우유, 주스
가벼운 식사를 원하는 숙박객을 위해 시리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날 밤, 이곳에서 제공하는 저녁 뷔페는 물이나 음료를 제공하지 않아서 별도의 금액을 내고 먹어야 했기에 조식도 그럴까 봐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우유와 모닝 커피, 그리고 두 종류의 주스가 제공됩니다.
샐러드 코너는 그릭 샐러드에 들어가는 재료를 따로 담아 놓은 모습입니다. 전날 저녁 뷔페도 그랬는데요. 사실 이들 재료는 한데 섞어서 먹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원치 않은 재료를 골라낼 수 있다는 점에서라면 일면 필요한 부분이지만, 그릭 샐러드에 빠지면 안 될 필수 재료를 굳이 나눈 것이어서 의미 없이 가짓수를 채워 메뉴가 부실해 보인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토스트 한 빵에 넣어 먹으면 좋을 치즈와 각종 햄.
맛이 저렴합니다. 전반적으로 썩 좋은 제품을 사용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그나마 나은 건 왼쪽의 것이고, 나머지는 텁텁하면서 기분 나쁜 향에 손을 놓게 됩니다.
스크램블은 플레인과 시금치 두 종류로 제공되는데 떡지고 엉겨붙고 퍽퍽하고. 그마저도 음식이 바닥을 보이면 제때제때 채워놓지 않고. 그러니 미코노스에서 비슷한 가격대를 보인 레토 호텔 조식과 비교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시지 역시 텁텁한 밀가루와 불쾌한 맛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개인적으로 호텔 조식에서 소시지나 베이컨 같은 가공육은 품질을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소시지나 베이컨은 호텔 조식에서 빠져선 안 될 메뉴이면서도 구색을 갖추는 데만 신경 쓴 나머지 품질에 등한시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호텔에서는 정해진 예산으로 적당한 가격대와 적절한 품질을 찾아 타협해야 하는 것이 가공육인데 또 가공육만큼 가격에 따라 맛과 품질이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없다 보니, 그 뷔페의 소시지 맛을 보면 구색 갖추기에만 급급한 것인지, 혹은 품질에도 신경 쓴 것인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가공육의 투자를 많이 아낀 듯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소시지나 베이컨이 좋으면 한두 번은 더 가져다 먹는 편인데요. 제가 밀가루 함량이 높은 분홍 소시지도 곧잘 먹는 사람이지만, 이건 단순히 함량 차이를 떠나서 확 올라오는 저렴한 향에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에도 먹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베이컨은 짜기도 짰지만, 한 개를 집어 올리면 덕지덕지 붙어서 올라오며, 어떤 건 아예 탔고, 쭈글쭈글하고 드라이한 상태로 방치된 느낌입니다. 전반적으로 음식의 기본기가 실종됐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느낌이네요.
프라이한 달걀. 손님이 건드린 게 아니고 처음부터 나올 때도 몇 개는 늘 저런 식으로 터져서 나옵니다. 하루 이틀 만드는 음식도 아닐 텐데 왜 그럴까요.
그나마 정상에 가까운 음식은 버섯 꾸스꾸스와 베이크드빈.
그리스 전통 음식인 '돌마데스(Dolmades)'입니다. 쌀과 고기, 각종 허브를 다져 포도잎에 감싼 뒤 찐 음식이죠. 내용물을 보면 꽤 건강식인데 샴푸 향 비슷한 향신료가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것입니다. 이 음식의 경우는 다양한 곳에서 먹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비교할 만한 기준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음식 자체가 어떻더라는 평가는 쓰지 않겠습니다.
찐 채소입니다. 당근과 콜리플라워, 여기에 절인 케이퍼가 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케이퍼가 엄청나게 짭니다. 짠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도 이건 소태라 어떤 음식과 함께 먹으면서 간을 맞춰야 할지 조금은 고민이 되었던 음식.
그리스의 국민 소스인 짜지키입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종류로 제공되는데요. 짜지키는 그릭 요거트를 기반으로 만든 소스로 주로 육류의 느끼함을 잡아주기 위한 용도로 쓰입니다. 그런데 호텔 조식에는 육류가 제공되지 않아서 무엇을 어떻게 곁들여야 할지 그 활용처가 묘연하군요.
달콤한 파이와 쿠키 등이 제공되는 디저트 코너입니다. 전반적으로 밀가루의 텁텁한 맛이 많이 나는데요. 어지간하면 그리스의 빵이나 밀가루 음식이 괜찮은 편인데 여기는 대체 어떤 밀가루를 사용하는지 9,900원짜리 저렴한 뷔페에서나 볼 법한 구색 맞추기용 쿠키 맛이 납니다.
후식으로 제공되는 과일입니다. 수박을 제하면 모두 통조림 제품입니다.
처음에 멋모르고 가져온 한 접시입니다.
먹음직스러운가요?
4박 5일간 거의 변하지 않는 조식 메뉴를 접하다 보니 나중에는 이렇게만 먹게 되었습니다. 정말 맛있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흡족한 메뉴들이죠. 다소 퍽퍽하긴 해도 재료 자체가 문제없는 한 맛은 보장되는 시금치 스크램블과 버섯 꾸스꾸스, 그릭 샐러드가 그렇습니다.
#. 마치며
음식의 평가란 것이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과 취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또 한국인의 입맛도 반영된 것일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음식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단 저뿐이 아니어도 호텔 조식을 이용하는 숙박객이라면, 이 음식이 좋은 음식인지 아닌지 정도는 느끼는 사항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산토리니의 엘그레코 호텔 조식은 이 호텔이 가진 유산과 규모, 시설 등에 기대어 보았을 때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어쩌면 음식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4박 5일 동안 이 호텔 조식을 이용하면서 다소 심각하게 염려되는 것은 음식보다도 직원들의 눈빛이었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셰프, 매니저, 서버 등 다양한 직원이 레스토랑을 관리하고 꾸려나갑니다. 이들의 눈빛, 표정, 고객 응대(특별히 불친절하지는 않았음), 그 외 보여지는 모든 행동에서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법인데, 이상하게도 이 호텔에서는 그런 기운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다소 풀린 눈, 무표정하거나 퀭한 얼굴, 축 처진 걸음, 음식이 떨어지면 바로바로 채워놔야 하는데 그런 대응이 느린 점 등 여러 면에서 의욕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들로부터 일에 대한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런 요소들이 한둘씩 모여 아쉬운 조식 서비스를 만든 게 아닌가 싶군요.
IMF를 겪은 그리스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관광자원일 것입니다. 관광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해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숙박객 유치는 호텔 측이 안고 가야 할 고민일 것입니다. 어쩌면 포화상태에 이른 산토리니의 관광 산업이 이러한 고민을 더욱 심화시켰을 지도 모릅니다. 등급을 받기 위해 호텔 규모를 늘리거나 일정 시설을 갖추고, 투자를 받고, 객실이 많은 만큼 직원 수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그만큼 복리후생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겠고요.
글을 쓰다 보니 본 주제에서 다소 멀어졌는데요. 한두 사람의 의욕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느낌이 그러하다면, 근무 환경이나 조건 탓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겠지요. 적어도 조식 뷔페만큼은 톱니바퀴처럼 딱딱 물려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느낌보다는 나사 몇 개 빠진 느낌이 듭니다. 나중에 이 호텔을 리뷰할 때 다시 거론하겠지만, 인종차별이 의심되는 객실 배정으로 한바탕 클레임이 제기된 적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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