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장어, 통영 중앙시장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곰장어를 심심치 않게 먹고 자랐습니다. 부산에 갈 때면 기장 곰장어를 찾습니다. 80년대 당시 포장마차를 운영하시는 숙모가 해주는 곰장어 구이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매콤하면서 입에 착 감기는 양념, 곰장어 특유의 오독오독한 식감과 감칠맛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다른 바닷장어는 눈에 들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곰장어 하면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자 최고의 술안주입니다. 이런 곰장어에 사람들은 모르는 괴이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곰장어는 장어가 아닙니다. 차라리 지렁이에 가깝죠."

 

이게 무슨 장어 먹다 목에 걸린 이야기냐고요?

 

 

표준명 먹장어(방언 곰장어, 꼼장어)

 

우리가 주로 먹는 바닷장어는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1) 붕장어(아나고)

2) 갯장어(하모)

3) 먹장어(곰장어)

 

여기에 민물에서 자라 바다로 나가 산란하는 뱀장어(민물장어)까지 더하면 총 네 종류입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장어가 아닌 것은 '먹장어'. 우리가 평소 '꼼장어'라 부르며 빨간 양념에 볶아먹는 바로 이 녀석 말입니다. 

 

 

'꼼장어'란 말은 움직임이 '꼼지락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고, 먹장어는 눈이 멀어(실제로는 퇴화)서 붙여진 표준명입니다. 통상적으로는 곰장어(발음상 꼼장어)로 통합니다. 표준명 '먹장어(곰장어)'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 이르는 극동아시아에 서식합니다. 비슷한 종으로는 전 세계 약 80여 종이 서식하지만, '먹장어(곰장어)'란 이름을 가진 것은 사진에 보이는 종이 유일하지요.

 

주산지는 부산 기장이며 통영과 여수뿐 아니라 부산과 제주도, 대마도에 이르는 해역의 저층에 서식하면서 사체의 살과 내장을 파먹고 살죠. (그래서 영양가가 풍부하고 맛이 좋았던 걸까요? ^^;) 

 

 

위턱과 아래턱이 없는 곰장어의 입  

 

#. 곰장어는 지렁이도 장어도 아닌 원구류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전문가가 말하길 "곰장어는 지렁이에 가깝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는 곰장어와 지렁이를 동일시하는 듯한 글이 종종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곰장어가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은 아닙니다. 곰장어는 다른 장어류와 달리 척추가 없는 '무척추동물'입니다. 분명, 지렁이를 비롯한 환형동물도 무척추동물이기 때문에 '장어보다는 차라리 지렁이에 가깝다.'고 빗댄 것이지요.

 

생물학적 분류에서 곰장어의 위치를 정의하면 '원구류(圓口類)'라 할 수 있습니다. '원구'는 말 그대로 입 구조가 동그랗다는 것인데 여기에 머리뼈를 비롯해 턱뼈와 척추도 없습니다. (결국, 지렁이 맞네~) 비록, 척추는 없으나 평생 척삭을 가집니다. 쉽게 말해, 연골조직 비슷한 물질은 있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곰장어를 척추동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장어는 먹이를 삼키기 위해 위턱과 아래턱을 벌립니다. 곰장어는 이러한 턱뼈나 척추가 없습니다. 그러니 장어라 할 수 없으며, 뱀은 더더욱 아닌 곰장어. 그러고 보면 정말 지렁이와 닮은 건가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곰장어는 정소와 난소를 한 몸에 가집니다. 정소와 난소 비율에 따라 수컷이 되거나 암컷이 되기도 하며, 가끔 자웅동체가 된다는 점에서도 지렁이와 닮았죠.  

 

 

곰장어의 입 구조(출처 : https://www.seattletimes.com/nation-world)

 

입 구조를 내민 모습이 마치 에일리언 같은 곰장어(The Hagfish Is the Slimy Sea Creature of Your Nightmares)

 

#. 괴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곰장어

현재 곰장어와 비슷한 동물로는 칠성장어가 있습니다. 칠성장어도 척추동물에 있는 턱 구조가 없으며 빨판 구조의 입이 있을 뿐입니다. 칠성장어는 물고기에 상처를 내 피를 빨아먹는 흡혈 동물입니다. 곰장어의 입도 빗살무늬 돌기와 혀가 발달해 주로 물고기 사체에 붙어 살과 내장, 피를 녹여 빨아먹니다. 이렇듯 장어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닌 원구류는 지구상 생물 중 가장 진화가 덜 된 원시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통발에 포획된 먹장어(곰장어)가 점액질을 내뿜고 있다

 

#. 곰장어의 괴이한 점액질

곰장어의 괴이함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곰장어는 특유의 점액질을 분비하기로 유명합니다. 잘만 이용하면 벽지 도배용 접착제로도 유용할 것 같습니다.(?) 곰장어의 점액질은 자신의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뿜는데 먹이 사냥 시 물고기나 갑각류를 점액질로 가두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진과 같이 통발이나 낚시로 포획된 곰장어는 외부 환경과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점액을 분사합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즉시, 혈중 *'코르티솔(Cortisol)'이 증가하면서 점액질을 분비하는데 만약, 곰장어의 점액이 과다 분비되면 활력이 저하되면서 급기야 호흡곤란으로 폐사에 이릅니다.

 

'코르티솔(Cortisol)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물질로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두산백과 참고)

 

 

미 오리건주 고속도로에 내동댕이쳐진 미국산 곰장어(출처 : https://www.seattletimes.com/nation-world)

이 점액질은 매우 질기고 끈끈해 산업용으로 연구 대상입니다. 작년(2017년)에는 이러한 점액질로 인해 고속도로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곰장어를 싣고 가던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공사 중인 도로를 미처 보지 못해 급정거하면서 도로로 튕겨 나간 곰장어 13통이 도로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도로와 차를 엉망으로 만든 곰장어 점액질(출처 : https://www.seattletimes.com/nation-world)

당시 운송 중이던 3.4t의 미국산 곰장어는 모두 한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곰장어는 심각한 자원고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에서 비슷하게 생긴 곰장어를 매년 수천 톤씩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무분별한 남획'에 있습니다. 돈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잡아다 파는 행태. 해마다 어획량 감소가 뚜렷한데도 이렇다 할 규제가 없는 수산자원관리법과 솜방망이 처벌.

 

이제는 귀하고 비싸진 국산 곰장어를 두고 더 이상 서민 먹거리라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곰장어 구이를 맛보려면 부산을 찾아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서울과 내륙 지방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대부분 수입으로 국산 곰장어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비록, 겉모습은 징그럽지만 매콤한 양념에 볶아먹는 양념구이, 그리고 짚불에 훈연하듯 구워 먹는 소금구이가 간절한 요즘입니다. 오늘 소개한 곰장어의 괴이한 사실 따위는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세요. ^^;

 

참고 논문 : '먹장어(Eptatretus burgeri)의 혈액성상과 산소소비에 미치는 수온 및 염분의 영향'(국립수산과학원, 부경대학교, 도용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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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 추억 ★입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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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20 10:0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꼼장어가 포함된 먹장어강이나 칠성장어가 포함된 칠성장어강은 경골어상강 조기어강에 속하는 뱀장어목이 아니니까 당연히 장어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류라고 볼 수는 있지요. 요즘은 척삭동물문 척추동물아문의 어상강(Pisces)이란 용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어류를 분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먹장어강이나 칠성장어강은 어상강이란 분류가 있던 시절에도 무악어강이란 이름으로 어상강에 포함되어 있었지요. 따라서 꼼장어나 칠성장어는 장어는 아니지만 어류는 맞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 2018.07.20 23:2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우선 어류인지 아닌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대사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어서 어류가 아니다는 부분은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조언 감사해요 ^^
  2. 2018.07.20 11: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기장에서 곰장어 사라진지가 꽤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기장꼼장어집에서 쓰는 곰장어들은 거의 통영에서 온다더군요. 포장마차에서 싼값에 서민의 안주가 되었던 꼼장어는 이제 옛날이야기로만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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