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었던 대형마트의 고사리 민어탕

 

며칠 전, 저는 모 대형마트의 고사리 민어탕을 맛보고 후기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관련 글 : 이게 여름 보양식이라고? 이마트 '고사리 민어탕' 구입 후기)

 

글이 발행된 후 SNS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서 이슈가 되었고, 이를 한겨레가 보도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마트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당 제품을 출시할 때부터 어종과 원산지를 밝혔고, 제품 뒷면에도 표기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고사리 민어탕을 출시하면서 냈던 보도 자료를 살펴보실 텐데요. 파란색 표시는 '적절한 표현'이고 빨간색 표시는 '부적절한 표현'임을 알고 보신다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고사리 민어탕을 출시할 당시 보도 자료

 

#. 모호성을 이용한 기만 보도

해당 마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인도네시아산 민어임을 분명히 밝혔고, 그로 인해 가격도 낮출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까지는 원재료와 원산지를 충실히 밝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빨간색으로 표시한 문구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민어는 산란기를 앞둔 6~8월 몸집이 커지고 기름이 오르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들이 여름 보양식으로 먹었다."

 

해당 마트가 사용한 재료는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라는 종으로 우리가 여름 보양식으로 알고 있는 '민어'와는 다른 생선입니다. 그런데도 보도자료는 인도네시아산 민어를 썼다는 사실과 한반도에 서식하는 토종 민어의 특징을 혼합 표기해 소비자의 착각을 유도합니다.

 

 

여름 보양식 민어라 쓰고,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탕을 먹는다

 

다른 보도는 제목부터 심각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대놓고 '여름 보양식, 민어 드세요'란 제목으로 관심을 끌더니 

 

 

 

"민어는 6~8월 산란기를 앞두고 기름이 올라 특히 맛이 좋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들이 여름 보양식으로 자주 먹었던 식재료다. 대문에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재료는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를 사용하면서, 설명은 국산 토종 민어의 특징을 들먹입니다. 그러면서 국산 민어와 맛이 가장 비슷한(?) 인도네시안 '꼬마민어'를 찾아내 사용했다는 앞뒤가 맞지 않은 내용이 보도됩니다.

 

 

여기서 쟁점은 이렇게 보도하고 판매해도 법적 문제는 없느냐입니다. 법리 해석은 제가 다룰 영역이 아니므로 그 부분은 법 전문가들이 판단해 주시리라 믿고, 오늘은 해당 제품이 어느 수준에서 소비자를 기만했는지를 알아봅니다. 앞서 마트 측은 '억울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원산지 표기법을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종과 원산지를 표기했다는 것인데요.

 

 

일단 제품 정면에는 사용된 민어의 원산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제품명은 '고사리 민어탕'이고, 고사리와 민어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그 아래는 성분 함량이 표시돼 있는데 확대해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민어'라고 쓰여있습니다. 적어도 제품을 들었을 때 소비자가 앞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민어를 이용한 민어탕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보도 자료를 보고 이 제품을 찾았다면, 민어를 이용한 매운탕이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종과 원산지는 포장지 뒷면에서야 작은 글씨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마트 측이 억울하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합니다. 전면에는 표기하지 않았지만, 후면에는 반드시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원산지 표기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위배되는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문제가 된다고 해도 최소한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한 셈입니다.

 

다만, 꼬마민어란 종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어로 표기하고 괄호 안에 (꼬마민어, 인도네시아산)식으로 표기한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에 적잖은 소비자가 꼬마민어를 다른 종류의 생선이 아닌 민어 새끼 정도로 알고 구입했을 것입니다. 앞서 보도를 통해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를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내용은 국산 토종 민어의 특징으로 설명했기에 더더욱 소비자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꼬마민어(Protonibea diacanthus)의 분포 현황

 

#. 꼬마민어는 어떤 생선?

꼬마민어는 국산 토종 민어(Miichthys miiuy)와는 다른 종입니다. 영광굴비로 유명한 참조기, 최근 보리굴비로 유통 중인 부세, 그리고 여름 보양식으로 통하는 민어와 함께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 어류이긴 하나 유전적 특징과 종은 엄연히 다른 이종으로 분류됩니다.

 

서식지도 차이가 납니다. 제주도 인근에서 월동하다 이듬해 여름이면 목포, 신안으로 북상과 남하를 반복하는 민어와 달리 꼬마민어는 적도 부근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열대성 어류입니다. 분포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수온은 물론 먹잇감도 다르며, 이에 따른 맛과 식감에서도 토종 민어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어류를 저렴한 가격으로 소싱해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것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되며, 간편한 조리 식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여름 보양식'과 '양반들이 먹었민어탕'임을 내세우면서 보양식과 상관없는 생선을 사용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입니다.

 

 

인도네시아산 꼬마민어를 사용한 제품에 토종 민어 그림이 들어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논란이 불거지자 마트 관계자는 '식약처로부터 제품명에 민어탕을 쓸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짝퉁 민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꼬마민어를 사용한 제품에 토종 민어 그림이 들어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제품에 내건 사진은 '민어'입니다. 아가미에 칼집 내 목을 딴 상태이며, 비늘까지 말끔히 벗겨진 상태를 그래픽 처리해 메인 모델로 내세웠습니다. 결국은 실제 사용한 재료와 포장지 사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이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 되겠지요.

 

 

꼬마민어(출처 국립수산과학원)와 민어

 

꼬마민어는 적도 부근에 서식하기 때문에 저 또한 원물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자료를 통해 생김새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요. 보시다시피 꼬마민어와 민어는 서식지 차이만큼이나 생김새도 다릅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깨알처럼 박힌 검은 반점입니다. 이 반점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참깨'로 비유한 참깨 민어라 하여 '고마니베(ゴマニベ)'라 불렀고, 국내에서는 이것을 '꼬마민어'로 명명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도는 상황입니다. 

 

 

#. 속 보이는 상술은 이제 그만

우리 국민이 한 끼 식사를 넘어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먹방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과거 사례가 말해주듯 단순히 이름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상술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 국민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고, 재료와 원산지를 확인하고 분별하자는 소비자 인식도 생겨났습니다.

 

대만산 민물고기인 틸라피아를 도미로 팔다 철퇴 당하고, 베트남산 민물 메기를 참메기살과 생선회로 팔다 철퇴 당하고, 다금바리와 비슷하게 생긴 능성어를 다금바리로 팔다 적발됐던 앞선 사례에서, 이제는 국민들도 학습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일부 부도덕한 상인과 일부 기업의 윤리 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고, 여름 보양식이란 마케팅에 여름 보양식과 상관없는 열대성 어류로 숟가락만 얹으려는 행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습니다.

 

현재 해당 제품은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식약처가 민어탕으로 표기해도 된다는 것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면서, 식약처는 위법성 및 허위광고가 있었는지 검토에 나섰다고 합니다. 

 

아울러 현재 수산시장에서 '양식 민어'로 팔리는 '큰민어(Argyrosomus japonicus)'란 종이 수산물 검역소를 거쳐 '양식 민어'란 이름으로 유통되는데 이것도 과연 적법한 상거래 행위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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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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