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편을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부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거문도 참돔 낚시(1), 천혜의 절해고도 거문도를 가다

 

 

결국, 거문도 낚시 첫날은 참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이대로 끝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선장이 귀띔해 준 포인트는 물이 가지 않아 공략이 어렵고, 반대편은 이렇게 직벽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벌건 대낮에 참돔이 들어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감성돔이나 돌돔을 기대하고 담가봤지만, 몇 차례 해초 뜯김만 있을 뿐 찌의 반응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종일 낚시를 말아먹나. 그것도 원도권에서"

 

수많은 출조에서 얻은 경험상, 이런 날은 전반적으로 조황이 부진할 것입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들이 거문도 갯바위를 호령한다 해도 굳게 다문 바다 앞에 인간의 능력은 무기력하기만 하겠지요.

 

이날 쯔리겐FG 회원들이 타고 들어온 배는 총 2대. 그중 제가 탄 배가 이곳 동도 일부를 돌며 하선했는데요. 예상컨대 이쪽 라인은 몰황이 예상되며, 다른 배로 하선한 팀들은 같은 거문도라도 지역이 다르니 한두 마리 정도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이날 철수는 조황이 저조한 관계로 예고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선실에 들어와 조황을 살피는데 현재까지는 참돔이든 뭐든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갯바위에 남아 있는 다른 분들은 얼마나 잡았는지 궁금한 가운데

 

 

 

거문도는 지형이 가파른 곳이 많습니다. 막상 자릴 잡으면 낚시하기에 편한 발판이지만, 자리 잡기까지는 가벼운 암벽 등반을 해야 하는 곳도 있고요. 이렇게 짐을 하나씩 내리는데 쿨러나 라이브웰에서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초상권에 문제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이날 제가 탄 배에서 유일하게 참돔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그것도 80cm에 달하는 대형 참돔인데 돌돔 원투낚시 채비에 올라왔습니다. 이 시기 참돔이 바닥에 붙어있다는 증거겠지요.

 

 

초상권에 문제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요

 

비록, 남이 잡은 참돔이지만 우리 경서지구의 강수님이 포즈를 취해봅니다.

 

 

저는 거문도에 이렇게 다리가 놓인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검색해 보니 동도와 서도를 잇는 거문대교로 완공한 지는 이제 1년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거문도 서도 쪽 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멍가게 한두 곳만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어촌 마을의 모습입니다.

 

 

거문도 어민 중 상당수가 양식업에 종사합니다. 예전에는 갈치와 삼치가 많이 나서 지역 어민의 좋은 수익원이 되었는데 갈수록 어획량은 떨어지고 있어 기존 어민의 상당수가 양식업으로 업종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분들의 삶의 원천은 양식장이 아닌 바다여야 하는데 해가 바뀔수록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습니다. 저의 첫 거문도 낚시도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습니다. 하필 구름이 해를 가려준 덕에 해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 한 치의 오차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동그랗네요. 빛의 속도로 약 8분 거리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은 가깝게 느껴집니다.

 

 

철수하고 난 거문도 민박집 풍경입니다. 방을 배정받고 나오니 회원분들이 회 뜨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살육의 현장이면서도 미식이 탄생하는 지점이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처해서 봉사하는 겁니다.

 

 

아저씨들 회 뜨는 게 답답했는지 민박집 아주머니가 가세합니다. 회원분이 포를 물에 씻자 회는 물에 씻는 게 아니라며 나무랍니다. 여기선 대부분 아는 사실이겠지만요. 낚시 한두 해 해본 것도 아니고, 회도 한두 번 떠 본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회를 물에 씻는 건 '만약'을 대비해서입니다.

 

일식집처럼 도마 2~3개에 칼도 2~3개로 분업화되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생선회의 위생은 담보가 됩니다만, 이렇게 나무 도마 하나로 손질부터 포뜨기까지 하게 되면, 자칫 불순물이 칼과 도마를 통해 생선 살에 옮겨붙게 됩니다. 여기서 아주머니는 씻지 말고 닦으라고 하고, 우리 꾼들은 살짝 씻는 건 괜찮다고 하고. 지금은 비브리오 패혈증이 유행할 시기는 아니니 씻든 닦든 크게 상관은 없겠지요. ^^

 

 

한쪽에는 좀 전에 들어 보이던 80cm급 참돔이 피를 빼고 있습니다.

 

 

민박집은 음식 준비로 분주합니다. 음식의 면면을 살피는데 이 정도면 낚시 민박치고 꽤 푸짐해 보입니다. 

 

 

민박집 아주머니 왈~

 

"잔칫상 같죠? 낚시 민박에서 이렇게 차려내는 데 있음 나와보라 그래요."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신토불이잖아요. 멀고 먼 절해고도라 수입산이 더 귀한 섬입니다. 매일같이 다국적 산지로 식사하는 서울 사람들에겐 꿈 같은 밥상이죠.

 

 

식탁에는 페트병 소주 3병이 턱 하니 올려집니다. 그리곤 밥과 국이 나오는데

 

 

거문도 쑥국

 

상에 올리자마자 향긋함이 코를 찌릅니다. 국물만 한술 떠보는데 얼마 전 제가 끓여 먹은 도다리쑥국은 향도 아니었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분들은 "이거 쑥 아니죠?"라며 예전에 먹었던 쑥과 차이를 실감합니다. 

 

쑥을 한 움큼 씹어보는데 몇 번의 씹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여린 줄기가 노지 쑥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향은 또 어떻고요. 쑥국 하면 도다리 같은 생선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부들부들한 연두부와 함께 맑은 된장국의 느낌으로 끓인 것도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갑니다. 

 

 

좀 전에 회를 뜬 게 한 접시씩 나왔습니다. 주로 벵에돔과 농어입니다. 자연산이라 특별할 것 같죠? 저도 몇 점 집어 먹어봤습니다만, 뻔히 예상되는 맛(?)입니다. ^^; 다른 테이블을 살펴봐도 회는 잘 안 건드리는데요. 다른 반찬에 젓가락 가기 바쁩니다. 

 

 

거문도 하면 갈치가 유명한데 최근에 갈치 자원이 많이 줄면서 어획량도 줄었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갈치구이를 내어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꾼들의 젓가락은 갈치를 외면합니다. 실은 저도 잘 안 먹게 돼요. ^^; 생선은 이제 지겹습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해삼은 몇 점 먹을 만 합니다. 좌우지간 낚시로 잘 잡히지 않은 것이면 뭐든 맛있습니다. ^^;

 

 

그리고 이날 감탄하면서 먹었던 것이 바로 멍게젓입니다. 너무 맛있는 나머지 상원아빠님이 한 통 사가려 했지만, 판매하지 않는다는 말에 좌절했습니다. 꿩대신 알이라고 거문도 해쑥을 10kg 나 사 갔지만 말입니다. 저도 남도에 내려올 때마다 멍게젓을 먹곤 하는데 이건 향이 달라도 한참 달라요. 멍게 특유의 향이 살아있습니다. 설마 자연산 멍게로 담근 걸까? 어쨌든 판매용으로 만들 물량도 안 되겠지만, 만약에 판매한다면 필시 대박을 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선 같은 담백한 음식을 자주 접하는 낚시꾼들은 몸에 일정 분량의 기름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음식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겠지만요.  

 

 

그 화룡점정은 돼지고기 보쌈입니다. 보기에는 다소 퍽퍽해 보여도 막상 입에 넣어보면 푹 삶은 부드러움이 느껴집니다.

 

 

거문도산 방풍나물과 매실 장아찌

 

향긋하면서도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는 방풍나물과 함께 먹으면, 이보다 좋은 궁합도 없겠지요.    

 

 

보쌈은 대~충 된장에 발라다 밥과 함께 싸 먹습니다. 그러면 하루 낚시의 고된 노동이 잊히는 듯한 기분.

 

 

에라 모르겠다. 돼지보쌈에 생선회에 해삼에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모두 싸봅니다. 소주 한 잔 원샷으로 들이키고요. 거문도를 한입에 삼켜봅니다. 이제 거문도를 한입에 먹었으니 왠지 내일은 낚시가 잘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꽝이라도 쳤으면 이렇게 음식에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어야지, 그것마저 없으면 조행기가 너무 황량하잖아요. ^^

 

이날 종일 낚시에서 꽝을 친 서운한 마음은 거문도의 자연 밥상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밥이 상심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그것만큼 좋은 밥상이 있을까 싶습니다. 또 이렇게 먹고 있자니 아내 생각도 납니다. 좋은 음식이 있으면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겠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남도의 시골 밥상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멍게조차 먹을 줄 모르는 그런 아내가 이곳의 밥상을 접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다음 날 새벽 3시

 

거문도에서 둘째 날을 맞이합니다. 이날은 쯔리겐FG 정출이 있는 날입니다. 당일치기로 정출만 참가하는 회원들은 지금 녹동항에서 배로 오는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원래는 3시 출항인데 보시다시피 안개 주의보가 발령돼 배가 출항할 수 없답니다. 천상 해가 뜨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날 오전 6시

 

다시 눈을 붙인 우리가 잠에서 깨었을 즈음엔 해가 다 뜨고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바로 식사하고 출조 준비하랍니다. 눈을 비비며 식당에 들어가자 이런 아침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1분 만에 음식을 먹으려니 목이 맥혀서 들어가질 않습니다. 우선 물 한 잔 마시고 국물부터 한술 뜨자 그제야 밥이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좀 그랬는데 먹다 보니 별다른 고기반찬이 없는데도 술술 넘어가네요.

 

오이는 왜 그리 즙이 많고 아삭삭한 지. 저 실한 굴 젓 좀 보세요. 한 통 집어가고 싶은 맛입니다. 잠에서 덜 깬 이때야말로 혀의 감각이 깨어있을 터이니 밑반찬 하나하나 맛이 선명히 다가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밥이 잘 넘어가는 이유가 있군요. 섬에서 난 재료라 좋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주머니 손맛이 좋습니다. 간도 기가 막히게 잘 맞추고.

 

 

참돔 낚시는 해뜨기 전, 갯바위에서 밑밥을 개고 준비를 다 한 상태에서 여명을 맞이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해가 다 뜨고 나서야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가시거리 최대 40~50m밖에 되지 않는 안개 밭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다. 기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라지만, 출조 전부터 김이 새는 건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앞으로 제게 주어진 낚시 시간은 겨우 4시간. 해가 다 뜬 상태에서 4시간이라는 그 짧은 시간 안에 희망을 가져야 하는 절박함. 그것이 서울, 수도권 꾼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거문도라 더욱 그러합니다. 4시간 동안 내가 조행기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니 머리가 아파져 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어렵게 입질 받은 대물을 놓칠 수 있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거문도에서 참돔 낚시,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바다의 미녀 참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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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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