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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3년 5개월 만의 부부동출, 그날 이후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남해 갯바위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휴가를 내야 했으며, 그조차 여의치 않으면 주말을 이용해야 했던.. 그래서 다닌 곳이라곤 경기도나 그보다 조금 더 먼 충남권 정도였습니다.
서천 홍원항으로 낚시가는 날이면, 기대감에 부푼 나머지 밤잠을 설쳤던 우리. 신진도 마도 방파제에서 20~25cm급 고등어 몇 마리에 세상을 다 얻은 기분. 그렇게 다니다 보니 이제는 TV에서나 보던 감성돔과 벵에돔까지 노리게 됩니다. 우리는 장비를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큰맘 먹고 5만 원짜리 낚싯대를 샀고, 아내는 월마트에서 파는 만 원짜리 낚싯대로(릴까지 달린) TV에서나 보던 감성돔 낚시에 도전합니다.
도전장을 던진 곳은 거제 장승포 갯바위. 무려 2008년 9월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감성돔, 벵에돔, 독가시치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관련 글 : 부부조사의 거제도 낚시 포토 조행기)
지난 1월, 대마도 낚시에서
그리고 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낚시에 한 번 빠지니 삶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지출이 늘면서 가계가 휘청거리는 안 좋은 부분도 늘었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은 신혼을 누비다가 딸을 출산하면서부터 부부 낚시는 그 상태로 중단되었습니다. 지금은 딸이 어느 정도 커서 처형에게 맡길 수 있게 되자, 올해 첫 출조를 아내와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국내가 아니란 점이 아쉽지만, 그렇다고 한파와 풍랑이 기승을 부리는 이 계절에 함부로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더욱이 모처럼 출조에서 아내를 고생시키거나 꽝을 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마도로 향했는데요. 결과는 보신대로 파도에 비바람에 부실한 조과에 ^^;;
그래도 아내는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남쪽이라 따듯하기는 해요. 사진은 그렇게 해서 잡은 수확물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대마도는 낚시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의 장소였고, 벵에돔은 전문 낚시꾼들만이 잡는 고기였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세월의 변화무쌍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황줄깜정이
예전에는 '황줄깜정이를 찾아서'라는 주제의 방송도 있었습니다. 냄새 나서 못 먹는 고기로 알려졌지만, 일본 어느 지역에서는 별미로 통한다고 해요. 6짜가 넘는 대물 황줄깜정이를 낚기 위한 여정도 있었죠.
저는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존중하지만, 그래도 제가 직접 맛보고 느끼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더욱이 글을 쓰는 직업이라면, 간접 경험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직접 경험담을 바탕으로 할 때 글의 신뢰를 얻게 됨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고기를 잡으면 그것이 맛이 있든 없든 일단 먹어봅니다.
제주도에 잠깐 살 때 황줄깜정이를 회로 맛보았다가 입만 버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황줄깜정이를 요리할 생각에 챙겼습니다. (나중에 꾼의 레시피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황줄깜정이가 살아있을 때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해야 합니다. 배를 가르는데 확실히 벵에돔에서는 나지 않던 갯내가 작렬하는군요. 쓸개라도 터트렸다간 그걸로 요리의 희망이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까탈스러운 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까탈스러운 만큼 숨겨진 맛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손질한 물고기는 물기를 쫙 빼고 포장을 기다립니다.
얼음물이 닿지 않게 잘 감싸줍니다. 얼음을 채우고 박스 테이핑을 한 다음,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요. 엑스레이 통과를 위해선 반드시 검은 비닐로 감싸야 합니다. (민숙집에서 해줍니다.) 이렇게 해야 부산으로 넘어올 때 무사 통과됩니다. 활어나 살아있는 수산물은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렇게 전처리를 거친 선어는 신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즈하라의 낚시 용품 매장인 앵글러
귀국길에 30~40분 정도 쇼핑할 시간이 주어지는데요. 제가 들린 이유는 이케시메 도구를 사기 위함입니다. 이미 갖추고 있으나 지인 선물용으로 몇 개 구입하기 위함이죠. 이곳에는 한국에 없는 다양한 이케시메 도구를 판매합니다.
※ 이케시메
횟감 마련 시 척수를 마비시킴으로써 사후경직을 늦추고, 숙성 지연 효과를 통해 가장 싱싱한 상태의 선어 및 숙성회를 유지해 주는 전처리 기술
이케시메 도구는 손질하려는 크기에 따라 각각 다른 사이즈를 갖추어야 합니다. 저는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니는데요. 방어나 부시리를 손질할 일은 별로 없어서 주로 M과 S 사이즈를 구매하는 편입니다. 차이는 직경과 길이입니다. M은 50cm 이상인 대물 참돔이나 대광어까지 커버할 수 있고, S는 30~40cm급 어종을 주로 커버하죠.
사진의 남색 도구는 제가 요즘 즐겨 쓰는 도구입니다. 눈과 눈 사이 미간을 찔러 구멍을 낸 뒤 그 구멍으로 도구를 넣어서 척수를 관통하는 도구죠. 단점은 스몰밖에 없다는 것. 벵에돔, 감성돔, 전갱이, 우럭 정도 시술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바다낚시를 해서 얻는 혜택은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먹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것이 민물낚시와 비교되는 가장 큰 차이이자, 낚시를 즐기지 않는 일반인들이 누릴 수 없는 혜택이니까요.
혜택이라 하기에는 적잖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이것저것 하려니 귀찮죠. 처음에는 횟감을 마련하고, 숙성하고 직접 썰어 가족과 지인에게 대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관심이 많아야 하며, 부단한 노력과 공부를 해야 하기에 어떻게 보면 악취미죠.
하지만 제가 낚시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손맛도 손맛이지만, 직접 잡은 고기를 썰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데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것도 그런 모토였지요.
낚시로 잡은 참돔회
서울에 살다 보니 지방에서 횟감을 가져와서 쫄깃하게 맛있게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가져오면 흐물흐물한 횟감. 어떻게 하면 싱싱하고 단단하게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끝에 이케시메를 터득하였고, 나름대로 방법으로 횟감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꾼들 사이에서 살이 물러 횟감으로 선호하지 않는 참돔도 적절한 전처리 과정을 거치자 서울로 가져와도 제법 먹을만한 상태가 되었던 것.
벵에돔 껍질구이회를 마련하는 장면
고급 일식집에서나 보던 껍질구이회도 더는 전문 셰프들만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제는 적당한 익힘으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벵에돔 토치구이 쌈밥
낚시 다녀오면 우리 집 밥상이 달라집니다. ^^;
벵에돔 쌈밥에 어울리는 특제 쌈장도 개발 완료. 구운 김과 보리밥을 올리고, 특제 쌈장을 가득 찍어 올린 벵에돔 토치 구이 쌈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는 별미 중의 별미입니다.
얼씨구~ 이제는 초밥까지? 배운 건 없지만, 요즘 인터넷과 동영상이 좀 발달해야 말이죠. 초밥 장인의 초대리 비율을 따라하고, 직접 만들어보면서 부단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초밥이란 음식은 글이나 동영상으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긴꼬리벵에돔 초밥
다만, 이것도 계속 만들다 보니 이제는 제법 그럴싸해 졌습니다. 비록, 판매용 수준은 안 되더라도 가족에게 먹일 정도는 말입니다. ^^;
생선회 도시락
조과가 좋은 날에는 횟감을 지인들께 나눠주기도 합니다. 칼질 못 하는 지인이라면, 이렇게 도시락을 싸다 갖다 주기도 하고요.
지난달, 대마도 낚시에서 잡은 긴꼬리벵에돔입니다. 횟감이 되는 것은 모두 이케시메로 마련하고, 반찬감은 피만 뺐습니다. 딸을 처형 댁에 맡겨놨으니 우선은 처형 댁부터 가야 합니다. 도착하니 밤 10시. 오자마자 부랴부랴 썰어 소주 한잔합니다. 횟감 몇 마리를 아예 포까지 떠서 챙겨주었습니다. 그러면 처형도 다음 날 친구들을 불러다 긴꼬리벵에돔 회에 술 한잔 할 수 있겠지요.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도 이날 저녁은 좋든 싫든 회를 소진해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반찬감밖에 더하겠어요.
그런데 이것도 몇 년 하니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초밥을 쥐지 않기로 했습니다. 밥만 만들 테니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초밥 만들어 먹기. ^^ 지난번에 소개한 숟가락 초밥입니다. 귀찮을 땐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죠. 우선 밥 한 숟가락 퍼서 고추냉이를 올립니다.
잘 숙성된 긴꼬리벵에돔 회를 간장에 찍어 척 올립니다.
벵에돔 하면 껍질 구이 회가 빠질 수 없겠죠. 만드는 법은 예전에 소개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관련 링크를 참고해 주십시오.
(관련 글 : 벵에돔 껍질 구이 회 만들기)
긴꼬리벵에돔구이
최근 도시어부를 통해 벵에돔과 긴꼬리벵에돔이 대중에게 제법 알려졌습니다. 긴꼬리벵에돔은 구이도 맛있습니다. 손질 편의상 대가리를 잘라버렸더니 볼품이 없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깨가 쏟아질 것처럼 고소합니다. 요령은 별 것 없습니다. 대충 칼집 내서 소금 뿌린 뒤, 기름을 충분히 둘러 튀기듯 구우면 됩니다.
벵에돔 매운탕
매운탕 잘 못 끓이는 분들도 이 계절에 벵에돔이나 감성돔, 참돔을 쓰면 누구나 간단히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저는 겨울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일 때는 다시마나 멸치 육수를 쓰지 않습니다. 생수도 쓰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수돗물이 좋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수돗물에 무만 넣고 무 육수를 뽑은 뒤, 펄펄 끓을 때 생선(서덜)을 집어넣습니다.
일반 고춧가루는 듬뿍, 매운 고춧가루는 조금만 섞어주고, 다진 마늘은 수북이 퍼다 넣고, 청양고추 2~3개 썰어 넣고, 국간장으로 살짝 색만 낸 다음, 최종 간은 소금으로 합니다. 대가리를 많이 넣고요. 중약불에 20분 이상 푹 우리면 기름이 나오면서 지가 알아서 맛있어지니 얼마나 편리할까요. 마무리로 대파와 미나리(또는 쑥갓) 넣어주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매운탕 완성.
처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시작한 낚시였는데 지금은 지인들과 나눠 먹는 재미로 합니다. 결국, 본인의 관심 여하와 노력에 달린 것이지만, 바다낚시가 주는 혜택으로 인해 삶이 변하고, 지인들과 글을 읽는 이들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이제는 멈출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더불어 제 글을 읽고 낚시에 입문했다는 말이 들리거나, 제가 쓴 글이 낚시에 도움이 됐다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그때는 글쓴이로서 기분이 무아지경 아니겠습니까. 크나큰 혜택이란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 싶기도 하고. ^^
기세를 몰아 횟집을 차릴 수도 있지만, (간판은 입질의 추억?) 제게 족쇄가 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낚시는 제게 있어 영원한 취미이자 벗으로 남을 것이며, 어류의 습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위한 초석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또한, 이제 막 낚시에 입문했거나 초심자분들에게는 롤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말을 아끼겠습니다. 저의 변변찮은 이야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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