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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즘 생선회를 돈 주고 사 먹기 시작했습니다."
언뜻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겠지만, 한 달이 멀다 하며 작대기 들고 바다를 찾던 제가 최근 들어 통 낚시를 못 해서 말입니다. 어지간해선 직접 잡아다 썰어 먹었던 저였지만, 지금은 잦은 해외 출장과 한파로 낚시 여건이 녹록지 못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횟감인 대방어와 참돔은 바다가 험한 이 계절에 직접 가서 잡아 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계절에 참돔을 잡으려면 거문도나 추자도까지 가야 하고, 대방어를 잡으려면 제주도 선상 낚시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과 경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서울 사는 낚시인의 비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출조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인 기회비용과 아내의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도 무시 못하겠지요. ^^;
꼬득하면서 기름진 맛이 일품인 겨울 대방어(사진은 방어 배꼽살)
생선회는 먹고 싶은데 낚시를 갈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일 것입니다. 바다가 수시로 뒤집어지는 이 계절, 어쭙잖게 도전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빈손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고, 설령 잡더라도 그 멀리서 서울까지 싱싱하게 공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직접 손질해야 하는 귀차니즘은 둘째 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보통 자정 전후라 야밤에 회 파티를 벌일 수도 없는 노릇.
요즘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대방어 맛집'이 충분히 공유되고 있습니다. 하루 전에 예약해 두는 것은 대방어의 진정한 맛을 보기 위한 기본 조건. 몇 kg짜리를 손질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근 대방어 열풍이 불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시장에서는 '대방어'란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5~6kg만 넘어도 대방어라 부르니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어설픈 대방어를 먹고 실망감만 들 테니까요.
보통 10kg이 넘어가는 특대방어면 가장 좋지만, 늘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없다면 최소 8kg은 넘어가는 대방어를 구입, 또는 진짜 대방어만 취급하는 믿을 만한 가게를 이용하는 겁니다. 대방어만으로 한 접시를 채우면 너무 기름질 수 있으니, 흰살생선회를 섞어주는 모둠 형식이 좋은데 지금 계절(1~2월)에는 참돔, 광어가 무난하고 경제적입니다.
참돔 숙회 좋아하시는 분들은 일명 '유비끼'로 해달라고 주문하세요. 엄밀히 말하자면 유비끼는 잘못된 말. 이왕이면 '마츠카와 타이'로 해달라고 하면, 생선회 좀 아는 손님이라 느낄 것입니다.
서울의 대형 수산시장에서 포장해 온 대방어, 대도미 모둠 생선회
그리하여 4인분짜리 모둠회를 포장해 왔습니다. 가격은 8만 원입니다. 흥정할 때 가격 깎을 생각보다는 전반적으로 신경 좀 써달라고 하시는 게 낫습니다. 어차피 부위는 예약분에 한하여 골고루 가게끔 합니다. 개념 있는 가게라면 누구는 뱃살을 많이 주고, 누구는 뱃살을 적게 주는 식으로 포장하지는 않을 테니 (요즘 시대에 그랬다가는 입소문 바로 나죠. ^^;)
다만, 그렇게 배분해도 목살(가마살)처럼 몇 점 나오지 않는 특수 부위는 모두 돌리기 어려울 겁니다. 보통은 뒷고기처럼 자기네들이 홀라당 먹거나 단골 손님에만 주어질 테니 이 부분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죠.
참치나 대방어를 팔 때 업장에서 부위를 신경 써 준다는 의미는 단순히 배꼽살이나 뱃살을 많이 넣어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같은 뱃살이라도 꼬리 쪽보다 머리 쪽에 가까울수록 고급 부위이고 맛있는 것이 통상적인 인식이라, 양을 늘리기보다는 같은 뱃살을 주더라도 머리 쪽에 가까운 뱃살을 주는 것이 부위에 신경 써주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단골집이 딱히 없습니다. 제게 횟집 추천 문의가 자주 들어와도 딱히 답변해드릴 부분이 없어요.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검색으로 신용할 만한 곳을 찾아서 이용할 뿐이며, 그곳 사장님들은 절 알지 못할 겁니다.
어쨌든 서두가 길었는데요. 지금부터는 우리 가족이 생선회를 먹는 특별한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것은 생선회를 더욱 손쉽고 맛있게 먹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특별한 분위기까지 챙길 수 있는..
그것은 바로 초밥용 밥을 준비하는 겁니다. 초밥을 쥐라는 게 아닙니다. 우선은 밥만 만들어 놓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갓 지은 밥에 초대리를 부어 섞어주면 되는데요. 그러려면 초대리 비율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리 비율은 매우 쉽습니다. 식초, 설탕, 소금 비율은 4 : 2 : 1로 합니다. 예를 들어, 3~4인용 초밥용 밥에는 공깃밥이 3~4그릇이 들어갑니다. 그랬을 때 초대리 양은 냄비에 식초 8숟가락, 설탕 4숟가락, 소금 2숟가락, 여기에 다시마 두 장 깔고 레몬즙 있으면 조금만 뿌리고 없으면 생략합니다.
그런 다음 약 불에 설탕이 녹을 때까지 휘휘 저어주면 끝. 절대 끓이지 말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만 달입니다. 젓는 동안 식초의 시큼한 향이 코를 찌를 텐데요. 이는 정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성된 초대리를 갓 지은 흰쌀밥에 붓고 주걱으로 고루 섞어줍니다. 밥은 평소보다 물양을 적게 한 '고두밥'으로 짓고, 반드시 갓 지은 뜨거운 밥에다 초대리를 부어야 맛이 납니다. 초대리를 부었으면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주걱을 이용해 칼로 자르듯 저어주고, 부채질해서 김을 날립니다. 이렇게 하면 초밥용 샤리(밥)가 완성됩니다. 여기서는 어른 세 명이 먹을 양이라 공깃밥 세 그릇에 초대리를 섞었습니다.
밥에 고추냉이를 한 점 올린다
원래 초밥은 찬 음식이 아니죠. 밥은 사람 체온과 비슷할 만큼 미지근할 때 먹어야 제대로 된 맛이 납니다. 그러니 부채질로 한김 날렸으면 곧바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밥을 한 숟가락 푸고 그 위에 고추냉이를 적당히 올립니다.
방어 등살을 올린 숟가락 초밥
그런 다음 생선회를 간장에 콕 찍어 올리기만 하면, 누구나 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숟가락 초밥 완성.
도미 숟가락 초밥
흰살생선을 먹다 지루하면 방어를 먹고, 방어를 먹다 느끼하다 싶으면 다시 흰살생선을 먹고. 각자 취향에 맞게 조절하시면 됩니다.
두툼하고 기름진 방어를 올려 먹는 숟가락 초밥, 맛이 기가 막히다
이렇게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과식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모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먹는 식사라면, 제대로 된 생선회를 한 접시 포장해 와서 숟가락 초밥을 만들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저는 다가오는 설 연휴, 가족과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5~6인분 특대 모둠회를 포장해 숟가락 초밥을 대접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기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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