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그리스 전통 음식을 비롯해 요즘 관광지서 인기를 높은 현대식까지 두루두루 맛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음식,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열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그리스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한 번쯤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될 것이며, 그리스를 여행하지 않더라도 국내 그리스 음식점을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제가 소개하는 현지 음식과의 차이를 통해 비교될 것이라고 봅니다.

 

 

호리아티키 살라타

 

1. 호리아티키 살라타(그릭 샐러드)

호리아티키 살라타는 그릭 샐러드의 그리스어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릭 샐러드(Greek Salad)'란 말이 익숙하지요. 고대인들은 그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주장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식생활도 예외는 아니었죠.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하는 데 중요하다." 하였는데 이런 철학자들의 말이 옛날 그리스인들의 식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릭 샐러드가 탄생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요. 그리스는 가장 큰 섬인 크레타를 제외한 키클라데스 제도의 수많은 섬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 지역이라 언제나 배편으로 운송되는 식재료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텃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했죠. 그런 소박한 식생활이 오늘날 그릭 샐러드의 시초가 되었을 겁니다. 

 

초기 그릭 샐러드에는 토마토가 없었다고 합니다. 연한 잎채소에 올리브유와 소금, 식초나 레몬즙을 살짝 뿌려 먹는 것이 전부였지요. 그러다 1825년 그리스에서 본격적으로 토마토가 재배되면서 대부분 요리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릭 샐러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형화된 틀로 완성되었습니다.

 

신선한 토마토와 오이, 적양파, 파프리카, 질 좋은 올리브, 그리고 양젖으로 짠 페타치즈가 기본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 선택적으로 셀러리와 케이퍼, 오레가노 등을 곁들이면서 소박하게 올리브유만 뿌리고 여기에 취향껏 와인 식초를 뿌려 먹는 것이 현지에서 가장 선호하는 그릭 샐러드의 형태입니다. 

 

그릭 샐러드는 그리스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 볼 수 있습니다. 채소의 신선함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페타치즈가 들어갔는지와 그 품질에 의해 맛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테이크 아웃으로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기로스

 

주요리로 즐기는 기로스

 

2. 기로스(지로)

그리스를 여행한다면, 그리스 대표 음식인 '기로스(Gyros)'를 최소 1회 이상 드시게 될 겁니다.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요. 피타라 불리는 빵에 모든 재료를 감싼 형태가 있고 접시에 펼쳐서 먹는 형태가 있습니다. 전자는 테이크 아웃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저렴한 패스트푸드고, 후자는 그리스인이 하루 끼니 중 가장 비중을 두는 점심 때 어느 정도 형식을 차려서 먹는 방식입니다.

 

기로스의 주재료는 돼지와 소, 양고기입니다. 케밥처럼 돌려서 약한 불에 천천히 익힌 다음, 얇게 저민 것을 사용하는데요. 이렇게 고기를 빙글빙글 돌려서 익힌 것은 옆 나라 터키에서도 볼 수 있어 터키의 '도네르 케밥'과 구분하기 위해 돌린다는 뜻을 가진 기로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비슷한 음식을 두고 그리스와 터키의 자존심 싸움이 치열한데요. 지금은 기로스의 원형이 터키의 도네르 케밥에서 유래된 것이 정설로 굳혀졌고, 중앙아시아로부터 그리스로 이주한 피난민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합니다.

 

 

수블라키를 메인으로 한 지중해식 뷔페

 

그리스 전통 꼬치구이인 수블라키

 

3. 수블라키

수블라키는 그리스의 전통 축제나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우리네 잔치 음식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주로 돼지고기나 양고기 등을 한입 크기로 썰어서 꼬챙이에 꿴 뒤 숯불에 굽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에 양파나 피망, 가지 등을 곁들이거나 따로 꿰어서 굽기도 하고요. 이렇게 구운 고기는 아래 소개할 '짜지키(Tzatziki)'라는 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며, 기로스처럼 페타 빵에 몇 재료와 함께 싸 먹기도 합니다. 수블라키의 기원은 산토리니 유물 발굴 현장에서 바비큐용 돌 세트가 발견됨에 따라 기원전 17세기 이전부터 먹어왔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짜지키

 

4. 짜지키

완성된 요리는 아니지만, 우리의 김치처럼 그리스 식탁에서 빠지면 안 되는 소스가 바로 짜지키입니다. 짜지키 없는 그리스 식단은 김치 빠진 한식과도 같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짜지키 사랑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김치나 된장의 개념처럼 빠져선 안 될 소스이기도 하죠. 주로 숯불에 구운 수블라키나 기로스에 곁들이는데 요거트와 마늘, 식초, 다진 민트 잎을 바탕으로 만든 소스라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데 아주 좋습니다.

 

현지에서 기로스나 수블라키를 주문하면 짜지키는 기본으로 제공되나 그 양이 매우 적을 때가 많습니다. 특유의 중독성이 있어서 곧잘 찍어 먹는데 고기양보다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듬뿍듬뿍 원 없이 찍어 드시려면 짜지키를 단품으로 주문하시길 권합니다.

 

 

무사카

 

5. 무사카

파이처럼 생긴 무사카는 그리스인들이 사랑하는 음식이지만, 지중해 동부와 발칸반도의 전통 음식이기도 합니다. 아랍에서 온 음식이란 주장도 있으나, 사실 그 기원이 묘연할 정도로 다양한 나라에서 즐긴 것으로 보고됩니다. 양고기와 가지를 넣은 페르시아식 무사카부터 레바논식 무사카까지 중동과 지중해를 낀 여러 나라에서 이 음식의 원형이 발견되곤 하였습니다.

 

그나마 오늘날 무사카와 닮은 음식이 13세기의 아랍 음식에서 등장하는데 다진 고기와 가지, 양파를 층층이 쌓고 맨 위에는 소스를 뿌려 구워내는 방식이 지금의 무사카와 유사합니다. 현재 그리스에 정착된 무사카는 1920년대 요리사인 니콜라스 트셀레멘데스라는 사람의 레시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존의 무사카에 프랑스의 기본 소스 중 하나인 베샤멜 소스를 더해 그리스만의 무사카를 완성했죠.

 

그리스에서 무사카는 가벼운 식사보다 격을 차린 식사에서 메인 요리로 즐깁니다.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에서 차이가 나는데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오븐 용기에 기름을 바르고 빵가루나 라자냐를 깐 다음 구운 가지와 양파, 다진 소고기를 층층이 쌓습니다. 맨 마지막에는 베샤멜 소스를 충분히 펴 바른 후 오븐에서 갈색이 나도록 구워낸 것인데 조리 과정과 재료가 다양하다 보니 종류가 많습니다.

 

사진의 무사카는 그리스 음식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가장 위에는 베샤멜 소스(밀가루, 버터, 파마산 치즈, 달걀노른자가 주재료)가 두껍게 쌓여있어 고열량 음식을 경계해야 하는 분들은 이 음식을 거르거나 먹더라도 베샤멜 소스를 걷어낸 나머지만 먹기도 합니다.

 

 

그릴드 옥토푸스

 

6. 문어구이

서양에서는 괴물로 묘사되는 문어가 지중해를 낀 나라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고급 식재료로 통용됩니다. 그리스 문어구이는 지중해서 나는 문어를 해풍에 반건조해 통째로 숯불에 구워낸 음식입니다. 소스랄 것도 없이 가볍게 올리브유를 뿌리고 말린 바질이나 오레가노를 뿌린 것을 썰어 먹는 식전 요리입니다.

 

레스토랑마다 재량껏 곁들이는 가니쉬는 차이가 있는데 사진에는 짭조름한 케이퍼와 부드러운 잠두 퓌레를 곁들인 형태로 고급스러움을 더했습니다. 문어구이는 아테네의 식당에서도 볼 수 있지만, 주로 미코노스나 산토리니 같은 섬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피타이져입니다. 우리 돈으로 15,000~20,000원이면 맛볼 수 있죠.

 

 

홍합 사가나키

 

소스를 빵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7. 홍합 사가나키

원래 사가나키(Saganaki)는 페타치즈를 기름이나 버터에 튀긴 그리스의 전통 애피타이저입니다. 한 마디로 불타는 치즈의 형태로써 플람베(알코올을 뿌려 불을 붙여 잡내를 날리는 조리 방식)를 하는데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홍합이나 새우 사가나키는 이 음식과 유사하지는 않고 다만, 여러 채소와 함께 페타 치즈를 함께 넣어 볶아 치즈가 녹아있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맛본 홍합 사가나키는 불고기 양념 맛으로 볶은 홍합 요리인데 현지(산토리니)에서 맛본 것은 그보다 색이 밝고 좀 더 붉었으며, 치즈의 풍미가 나면서 살짝 매콤한 맛이 나는 형태입니다. 홍합은 우리가 평소 먹는 홍합과 같은 종인 지중해산 진주담치입니다. 이쪽이 오리지널이고 그것이 선박의 평형수를 통해 국내 해역에 유입되었죠.

 

홍합 사가나키는 담백한 음식 일색인 그리스에서 제법 양념이 강한 편입니다. 어떨 때는 간이 세기도 하니 뜨거울 때 홍합 살만 건져 먹으면서 이곳 일대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멋진 식사의 조건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돌마

 

돌마데스는 꼭 우리네 연잎밥과 닮았다

 

8 . 돌마데스

'돌마데스(Dolmades)'는 우리네 연잎밥과 유사한 특징을 갖습니다. 포도가 많이 나는 나라답게 포도잎을 사용하는데요. 불린 쌀과 고기, 각종 채소와 허브 등을 다져서 포도잎에 감싼 다음 쪄낸 시골 음식입니다. 채소와 쌀을 사용한다는 것도 이채로운데 저는 이 음식에서 레바논 음식의 향기가 연상됩니다. 그 원인이 다진 민트잎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이 음식은 건강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좋지만, 민트의 강렬한 향이 부담스러운 우리네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포도잎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밥에 쏙 배서 좋았는데요. 먹고 있으면 강한 향이 낯설기도 하지만,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이국의 맛이 아니겠냐며 그 맛을 음미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의 전통 음식을 맛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탈일 것입니다. 

 

여행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 낯선 문화, 낯선 음식과 만남이다.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걸 경험하고 배워나가면서 나의 내적 성향의 범용성을 기르고 성장시킨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여행의 묘미입니다. 그러니 여행지 음식이 입에 맞고 안 맞고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입에 맞고 안 맞고의 익숙함보다는 그 나라에서 인정받는 음식의 품질을 경험하고 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니까요.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그리스의 다양한 전통 디저트

 

카타이피

 

9. 카타이피

'카타이피(Kataifi)'는 '바칼라바스(Bakalavas)'와 함께 그리스를 대표하는 달콤한 디저트입니다. 정향과 시나몬을 감싼 카타이피 반죽을 바싹하게 구운 뒤, 달콤한 레몬 시럽을 끼얹은 형태이죠. 뜨거운 카타이피에 잘게 썬 호두나 피스타치오를 뿌리고 찬 레몬 시럽을 부어서 식히는데 무엇보다도 신선하고 질 좋은 버터가 요구되는 음식입니다. 특히, 'Galaktos'라 불리는 버터의 사용이 중시되고 바삭한 도우에 따라 맛과 식감이 결정되는 만큼 만드는 이에 따라 질적 차이가 납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그리스식 커피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에스프레소 프레도

 

10. 그리스 커피

그리스식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추출법을 사용합니다. 원두를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 이블릭이라는 용기에 물과 함께 끓여낸 것이죠. 그 결과 커피 가루는 침전돼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식 커피는 끝까지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스식 커피 추출은 그 방식상 폴리페놀이나 클로로겐산이 많이 함유돼 항산화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수촌으로 유명한 그리스 이카리아 섬 주민의 장수 비법이 그리스식 커피와 일정 부분 연관이 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지요. 

 

제가 맛본 그리스식 커피는 묵직합니다. 침전된 가루 때문인지 텁텁함을 줘서 한국인 취향에는 썩 맞지 않지만, 몸에 좋다고 하니 솔깃하긴 합니다. 

 

제가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여러 번 즐겨 마신 커피로는 에스프레소 프레도가 있습니다. '프레도(Freddo)'는 차갑다는 뜻을 가진 이탈리어어입니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만든 것인데 8 : 2 심지어 9 : 1의 비율로 물에 커피 추출물을 섞는 아메리카노와는 방식에서 적잖은 차이가 납니다.

 

아메리카노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물 탄 맛이 없으며, 에스프레소의 진한 풍미와 거품이 살아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자니 커피의 진한 풍미가 아쉽고, 그렇다고 진한 커피를 마시자니 시원함이 아쉬운데 이 커피는 두 가지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도입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커피죠. 국내의 커피 저변이 확대되고 시장도 성장함에 따라 우리도 이런 맛있는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얼음도 들어가서 차가운 건 우리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에스프레소 원액이 워낙 진해 희석되어도 그 향과 여운이 꽤 오래토록 지속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커피가 맛있으려면 무엇보다도 1년 미만으로 생산된 생두, 볶은 지 2주 미만의 원두가 기본 조건이고, 무엇보다도 원두 자체의 품질이 중요한데요. 그래서인지 똑같은 에스프레소 프레도라도 카페마다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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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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