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기내에서 바라본 제주도

 

※ 부제 : 제주도에서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용하는 이유

 

최근 들어, 한주 걸러 제주도를 다니고 있습니다. 주로 낚시가 목적이지만, 이번에는 고등어와 관련해 취재차 방문한 것이어서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은 17호 태풍인 메기가 남중국 해상에서 소멸해 열대성 저기압인 상태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이 때문에 일정 내내 강풍과 비 소식을 마주해야만 했죠.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일단 낚시 장비는 챙겼습니다. 이번 일정은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인 제 대학 친구와 함께했습니다. 바다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스쿠버 다이빙과 낚시는 한 장소에 공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취미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평소 낚시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이번 기회에 배우고 싶다고 해서 일정을 맞추고 내려왔습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 후 곧바로 렌터카를 빌려 애월로 내려왔는데 바다가 심상치 않습니다. 도저히 낚싯대를 꺼내 들기 어려운 험한 날씨라 우선은 식사부터 하기 위해 애월 근처의 고등어 쌈밥집으로 향합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리는 원산지 표기

 

제주도지만 의외로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늘고 있습니다. 청정 해역인 제주산 고등어를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면 마냥 실망할 일만도 아닙니다.

 

 

고등어 쌈밥 2인분입니다. 묵은지에 가려져 고등어가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한눈에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진 1>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토막 난 단면

 

묵은지를 옆으로 젖히니 토막 난 고등어와 노르웨이산 고등어 특유의 등줄 무늬가 보입니다. 크기는 중간 사이즈로 두 마리가 들어가 둘이서 먹기에는 적당합니다. 식당에서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맛의 기복이 적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고등어 소비가 많은 나라는 연중 조업 되지 않으면 공급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런데 고등어 맛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지방함량은 산란철인 봄에 최저이고, 가을에서 초겨울에는 최고로 오릅니다. 즉, 가을에 조업한 고등어는 봄에 한반도 연안으로 북상했다가 동면을 위해 남하하는 고등어로 이때 잡힌 고등어만이 살과 지방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좋습니다. 일 년 열두 달 고등어 메뉴로 장사해야 하는 식당의 고민은 계절 상관없이 일정한 맛을 내는 것인데 가을에만 맛이 좋은 국내산 고등어로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연안의 고등어 어획량은 해마다 줄고 있어 수급이 일정치 않은 데 비해, 노르웨이산 고등어의 수입 물량은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 역시 9~11월 사이가 제철로 이 시기에는 영국 해협을 거쳐 북유럽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이르면서 고등어 조업이 집중됩니다. 비록, 냉동으로 유통된다지만, 제철에 어획한 고등어를 곧바로 급랭해 일 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니 맛과 품질이 들쑥날쑥한 국내산 고등어의 유일한 대체품이 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정말로 제철(9~11월)에 어획한 것인지는 <사진 1>처럼 토막 난 단면의 모양으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지방이 오른 고등어의 단면은 마름모꼴에 가까운 형태로 잡혀 있어야 합니다. 봄과 여름에 잡힌 개체는 덜 영글어서 형태가 반듯하지 않고 몽글몽글하지만, 가을에 어획된 고등어는 단면의 곡선이 반듯하며 통통하게 잡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고등어조림은 중간 사이즈로 두 마리가 들어 있어서 둘이서 먹기에는 적당해 보입니다. 

 

 

아직 끓지도 않았는데 다 된 것이니 바로 드시라는 식당 사장의 말이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한소끔 끓이고 나서 먹어야지 싶어 일단은 푹 끓이고 나서 앞접시에 덜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등어 속살을 쪼개보니 살이 허옇군요. 생선 조림의 기본인 양념이 전혀 배지 않았습니다. 양념에 고등어를 뭉글히 조려야 말 그대로 '조림'이 완성되는 것인데, 묵은지 맛을 빌려 단지 함께 끓이기만 하니, 양념과 고등어 살이 따로 놉니다. 그제야 좀 전에 "다 익었으니 바로 드셔도 된다."는 식당 사장의 말이 이해되는군요.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라지만, 제가 맛본 이 집 고등어조림은 묵은지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조림'이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망각한 느낌입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때면 바로바로 끓여내야 하니 효율만 생각한 거죠. 

 

 

살이 통통히 올랐다

 

노르웨이산 고등어는 대체로 살이 통통하게 씹히고 지방의 고소함이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가운데와 양쪽 잔가시를 정리한다면, 뼈를 발라 먹기에도 편리하죠. 

 

사실 고춧가루가 들어간 고등어조림을 상추 쌈에 싸 먹는 형태는 제주도 토속 음식과 거리가 멉니다. 예부터 고춧가루가 귀해 허여멀그레한 국과 탕으로 발전한 제주 음식이 근대에 유입된 고춧가루와 만나 육지 음식화 된 것.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등 집에서도 충분히 해 먹을 수 있는 몇몇 메뉴가 지금은 제주도를 대표하는 별미가 돼버렸습니다. 

 

갈치와 고등어처럼 제주도 청정해역에서 자란 수산물이란 인식이 더해진 음식, 예를 들면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전복 뚝배기 같은 메뉴는 제주도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내 식당에서 국내산 고등어를 취급하는 경우는 고등어회 정도입니다. 그 외 구이나 조림에는 적잖은 식당이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사용 중입니다.

 

단순히 국내산 고등어가 노르웨이산보다 비싸므로 단가를 줄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내 고등어 어획량이 증가하는 하반기에는 값이 떨어져 노르웨이산보다 저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고수하는 이유는 제철에 상관없이 맛의 기복이 적다는 점, 재료 수급의 안전성, 무엇보다도 맛과 식감, 보관성에서 국내산 고등어보다 낫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협재 해수욕장, 제주 한림

 

일주도로를 타고 애월에서 한림으로 넘어가면 협재해수욕장이 나옵니다. 근방에는 벵에돔이나 무늬오징어를 노리고 짬 낚시할 수 있는 도보 포인트도 많아서 답사차 갔는데 워낙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 낚시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밑밥을 개고 나와서 낚시하는 현지꾼을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지천이 바다라 언제든 낚싯대를 담글 수 있는 것을, 이 성난 바다에 무엇을 기대하고 낚시하는 것인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잠깐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하군요. 저도 낚시를 하지 못한 기분을 달래고자 일단 바다로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물만 보고 있으려니 손이 근질근질합니다.

 

애월 근방에는 명소가 많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단체 관광객이 잘 몰리지 않으면서 유유자적 힐링할 수 있는 명소가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호테우 해변과 곽지과물 해수욕장, 협재 해수욕장, 한담 해안 산책로 등이 있습니다. (아래 관련 글 참조)

 

바다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호테우 해변의 색다른 풍경

제주도 겨울바다여행, 곽지과물해변의 노천탕과 일몰

용머리 해안산책로와 한담 해안산책로

 

비는 내리지 않고 있어 아직은 낚시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바람이 살짝 죽을 때 대를 담그기 위해 구엄포구로 향합니다. (다음 편 계속)  

 

<<더보기>>

수입산 고등어와 국내산 고등어의 구별법

훈제연어 만들기(3). 직접 만들어 먹는 삼나무향 훈제 연어

집에서 만들어 먹는 리얼 통새우버거(만들기 레시피)

우리가 평소 궁금했던 수산물 상식, 총망라

노르웨이 수산물 위원회에서 입질의 추억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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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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