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치 낚시 조행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어제 글을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먼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 글 : 진해 한치낚시(상), 초보자도 손쉽게 낚는 한치 선상낚시)



새벽 3시,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렸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이제는 입질이 뜸해 선실에 눈 붙이러 들어간 분들도 계시고, 입질을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이때 뒤쪽에 계시던 분이 뭔가를 걸고 올리는데 제법 묵직해 보입니다. 뱃전으로 끌어올리며 내동댕쳐진 모습은 매우 길고 널찍합니다. 어림잡아 어른 손바닥 두 개를 겹쳐야 할 만한 두께. 처음에는 5지 이상 되는 왕 갈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갈치가 아니군요. 에기를 깊숙이 물어 끝부분만 손에 겨우 잡힐 만큼 먹이활동이 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녀석의 정체는..



표준명 투라치

희귀 심해어의 일종인 투라치였습니다. 분류상으로는 이악어목 투라치과라는 독특한 분류에 속하는데요. 대게 이악어목과 어류는 심해어가 많습니다. 가끔 뉴스로 접하는 산갈치를 비롯해 대표적인 원양 어종인 붉평치도 여기에 속하죠.

투라치는 수심 200~500m 사이에 서식하는 심해어로 최대 몸길이가 2m 조금 넘는 것으로 보고 됩니다. 한국과 일본 근해에서 일 년에 몇 차례 정도 발견되는 것이 전부이며, 그럴 때마다 신문에 나거나 화제가 된 희귀어죠.

가끔은 해안가로 떠밀려와 기진맥진한 투라치를 피서객이 건져 뉴스에 나기도 했습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사는 투라치가 해안가로 접근하거나 수심 얕은 곳으로 부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태풍 등의 자연 현상에 의해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날의 경우인데 먹잇감을 쫓아 얕은 바다로 부상하다가 낚시나 그물에 걸려든 것입니다.

아직 학계에서도 투라치에 관한 생태가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 '추정'이란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데요. 저 역시 이날 투라치를 처음 접했고 국내에 투라치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아 일본 쪽 자료를 뒤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이 투라치가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작은 갑각류를 먹이로 한다는 기존의 보고와 달리 오징어를 꽤 즐겨 먹는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어쩌다 잡힌 투라치의 위장에서 오징어나 꼴뚜기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특히, 주둥이가 작아서 큰 오징어보다는 그들의 새끼나 작은 꼴뚜기를 먹으려고 얕은 수심까지 부상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날 우리는 10~20m 권에서 한치를 노렸는데 수면에는 다수의 화살촉오징어(살오징어 새끼)가 다니고 있었죠. 모르긴 몰라도 한치 채비에는 잘 걸리지 않는 작은 꼴뚜기 종류가 밤바다를 거닐고 있을 거란 점에서 투라치가 먹이 사냥을 위해 부상하던 중 새우 모양의 에기를 먹잇감으로 착각하고 달려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잡힌 투라치는 몸길이 1.3m 정도였다

투라치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처음에 이 어종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땐 태풍과 지진이 있을 때마다 해안가로 밀려와서 혹시 이 녀석이 지진을 예고하는 물고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진 예고와는 크게 상관이 없고 다만, 연어 떼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투라치와 비슷한 근연종이 미국 연안에도 서식하는데 투라치가 근해에서 잡히기 시작하면, 그 뒤에 연어 떼가 외양에서 대거 접근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쪽에 서식하는 투라치를 '연어의 우두머리'나 '제왕 연어'라 불리면서 그 일화가 일본에 전해졌고,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투라치의 일본 명은 연어(사케)란 이름을 따서 '사케가시라(サケガシラ)'로 명명되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투라치의 주둥이는 전갱이를 닮아 잘 찢어지게 생겼고, 갈치와 달리 이빨이 없으나 아래턱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4~5개 정도 짧게 나서 농어에 손가락을 넣어서 잡듯이 하면 안 되는 물고기입니다.

투라치는 제 기억에 방생 처리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에 수분이 많고 지방감이 엷어서 맛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실험정신이 투철한 분이(일본에서) 이걸 잡아다가 회와 구이, 조림 등으로 먹어본 결과 회는 별로였고, 꾸득히 말렸을 때 구이 정도는 먹을만 하다고 합니다.




10~20m 사이에 형성된 갈치 어군

투라치로 인해 모여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어군탐지기로 유영층을 체크하고 있는데 이게 뼈가 있는 척추동물을 탐지하는 거여서 뼈가 없거나 있어도 매우 얇은 오징어류는 진하게 표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박대표님이 선실로 들어가신 이후 3시간 동안 단 한 마리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어서 정신적으로 약간 멘붕이 온 상태입니다. 갈치 어군이 섞여 전반적으로 입질이 예민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전체적으로 소강상태인데요.



제 뒤에 계신 분들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끊임없이 잡아냅니다. 씨알도 유독 굵어요. 다들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꾸준히 잡고 있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이러한 상황을 세 시간 정도 겪고 나자 저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채비를 걷어 전부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볼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좀 오버인 것 같고, 메탈리스트가 제 역할을 하는지부터 확인하는데 아니 글쎄 쇼크리더가 꼬여 있었네요? 한쪽은 중간에 매듭이 져서 꺾임이 발생합니다. 이걸 모르고 세 시간 동안이나 허우적댄 꼴이라니요. 채비가 꼬이거나 꺾이면, 액션이 부자연스러울 것이고 입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래서 새로 채비를 매고 던지니



뭐야~ 바로 입질이 들어오잖아. ㅠㅠ 이건 전적으로 저의 집중력 탓입니다. 어쨌든 세 시간 만에 한 마리를 올려 감격스럽긴 한데요. 남은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좀 더 집중해서 마릿수에 시동을 걸어볼까 합니다.



평소 제 글을 애독하고 있다며 반갑게 맞아주신 사무장 겸 가이드님. 담그면 뭐라도 물고 올라올 정도로 척척입니다. 제가 반나절 잡은 것보다 가이드님이 한두 시간 잡은 게 더 많을 정도. 이날 사진까지 찍어주시고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에깅 낚시에 잔뼈가 굵은 쌍디님. 초반보다는 막판에 꾸준히 뒤심을 발휘하는 모습입니다.



채비를 정비한 저도 최대한 집중해서 한치의 손길을 느껴보려 애쓰는 중입니다. 살짝 올라탄 느낌만 들어도 바로 챌 기세.



슬쩍 끌고 들어가는 초릿대를 놓치지 않고 챔질하는데요. 그 순간 낚싯대가 저렇게 휘면서 묵직하게 걸렸을 때의 짜릿함이랄까요. 이후 릴링할 때도 약간의 몸부림이 있어서 그 진동이 손으로 느껴지는 맛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메탈리스트가 아닌 이까스키테에 매달린 한치.




나름 먹물을 뿜어댄다고 하지만, 장전이 덜 됐는지 바닷물만 연신 뿜습니다. 잡았을 때 뿜는 먹물 양으로만 본다면, 갑오징어보다 한치가 훨씬 적어서 낚시가 좀 더 깔끔한 느낌이 듭니다.



표준명 창꼴뚜기, 창오징어(방언 한치)

이날 한치 낚시는 진해에서 출항해 거제 안경섬과 부산 외섬 사이 어딘가에서 하는 것이지만, 잡히는 종은 제주 한치와 같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오르는 고수온의 여파로 한치 자원이 제주도를 넘어 남해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니 앞으로도 남해 동부 지역에서 성행하게 될 한치 낚시가 좀 더 날개를 달 것으로 보입니다.



새벽 4시 30분, 낚시 종료

낚시를 마치고 그날 조황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맨 앞 열의 쿨러, 그중에서도 가운데 두 개가 이날 선사에서 가장 많은 마릿수를 올렸는데요. 이때는 6월 마지막 주로 시즌 초반에 해당합니다. 주 시즌에 접어든 지금부터 8월까지는 적어도 이날보다는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는 한치 낚시를 처음 시도해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렵니다. 다소 초라해 보여도 제 쿨러를 공개해 봅니다. 이날 걸었다가 떨군 녀석도 꽤 되고, 중간에 세 시간 동안 삽질한 경험도 있었으니 다음에 가면, 적어도 이보다는 많이 낚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낚시란 게 다 그렇잖습니까? 다음에 가면 왠지 더 잘 잡을 것만 같은 기분. ^^



이날 제가 사용한 채비를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실력이 없어서 그렇지 채비는 한치 메탈리스트의 정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메탈리스트를 활용한 한치 낚시 채비
- 낚싯대

무엇보다도 낚싯대가 가장 중요한데요. 6피트 전후의 베이트 루어대 중에서도 약은 입질을 파악하기 쉬운 7:3 혹은 8:2 정도의 휨새를 가진 대를 권합니다. 초릿대는 낭창하게 휘어지고, 허리힘은 강해 챔질 시 그 힘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죠. 기존에 갑오징어 낚시를 즐긴 분들은 사용하던 대를 그대로 써도 될 것 같습니다.

- 릴
릴은 베이트릴이 기본이며, 선장이 알려준 수심을 공략해야 하므로 사진과 같이 수심계가 표시되는 릴을 권합니다. 만약, 수심계가 없는 릴이라면, 1m 간격으로 표시된 합사줄을 쓰면 됩니다.

- 원줄
0.8~1.5호 사이의 PE 합사 줄을 이용합니다. 

- 채비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한치 오징어 이단 채비를 사용합니다. 단차는 보통 1m를 줍니다.



다양한 색상의 메탈리스트

- 메탈리스트 및 슷데

여기서는 쯔리겐의 메탈리스트와 이카스키테를 사용했지만, 꼭 쯔리겐 제품이 아니라도 좋으니 최대한 화려하고 형광색이 입혀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모델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요.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날 최고 마릿수 거둔 팀들도 이걸 사용해 좋은 조과를 거두었고요. 다른 분들도 눈독 들인 제품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입니다. 어차피 액션을 주는 정도에 따라서도 조과가 달라지는 것이 한치 메탈리스트 게임이라.



한치를 잡아 왔으니 이제는 먹어야죠. ^^ 조만간 한치 회 뜨기 편을 통해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한치 껍질 벗기는 일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반 오징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벗겨지더군요. 한치가 다른 횟감과 달리 좋은 점은 싱싱할 때 냉동시켰다가 언제든 회로 썰어 먹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분들 말에 의하면 1년간 냉동해도 끄떡없다는데요. 

저도 몇 마리를 제하고 모두 냉동실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냉동이 생물 따라갈 순 없으니, 생물로 몇 마리 썰어 맛을 봅니다. 사진은 두 마리 정도 썰었는데요.



초고추장 조합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입에 착착 붙고



오징어나 한치회를 간장 +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 것을 낯설어하는 분도 있는데요. 예전에 한 번 언급했지만, 무늬오징어와 갑오징어, 한치 같이 씹을수록 단맛이 좋은 두족류는 간장과 고추냉이 조합도 잘 어울립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물회로 말아먹었습니다. 된장을 넣은 제주도식 한치 물회. 이건 정말 맛을 봐야 안다는..



의욕이 앞섰는지 물회 만들려고 다섯 마리나 썰었더니 많이 남아버려서 일부는 무쳤습니다. 물회나 무침이나 들어가는 채소나 양념은 거기서 거기니 여기에 참기름만 듬뿍 넣어주고 무치면 맛있는 한치 초무침이 탄생.



며칠 후에는 처형 가족을 불러서 칼라마리를 해 먹었습니다. 그리스에서 맛보던 칼라마리보다 이게 훨씬 맛있죠. 한치가 워낙 부드러우니 야들야들 아이들이 먹기에도 좋고요.

이밖에도 한치국이나 한치 두루치기, 오삼불고기 아니 한삼불고기 등 음식에 활용도가 매우 높아서 낚시 자체의 재미 외에도 한치 낚시를 가야 할 동기는 충분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한치 낚시를 위해 이번에는 제주도로 향하고자 합니다. 제주도에서도 과연 메탈리스트를 이용한 한치 채비가 기존 채비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잘 먹혀들지 테스트하고 오겠습니다.

다음 편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 제주도로 떠나는 한여름밤의 피서 낚시

 

진해 한치낚시 문의
황금물결낚시(055 546 1782, 010 4797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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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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