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 여행기 목차

(1) 쿠알라룸푸르에서 산다면 이런 느낌일까?(프롤로그)

(2) 인천 쿠알라룸푸르 항공편 및 기내식 이용 후기

(3) 로컬 식당에서 맛본 전통 음식 '사테이'

(4) 브런치 카페에서 즐기는 오전의 느긋함

(5) 식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하는 쿠알라룸푸르의 대형마트

(6) 아빠의 물개쇼, 자지러지는 딸

(7) 저렴하고 맛있는 탁폭 씨푸드 레스토랑

(8) 국내도입이 시급한 말레이시아의 아침 식사

(9) 파빌리온,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차이나타운

(10) 초고층 빌딩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와 'KLCC 수리아몰'

(11) 야시장에서 열대과일의 황제 두리안 시식기

(12) 야시장의 톡톡 튀는 길거리 음식

(13) 살고 싶어지는 쿠알라룸푸르의 주거 아파트

(14) 저렴하고 맛 좋은 말레이시아의 열대과일

(15)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말라카 왕국에 가다

(16)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나는 말라카의 골목길 여행

(17) 말라카의 대표 여행지 존커 스트리트와 해상 모스크

 

 

말라카의 어느 중국 레스토랑

 

4박 5일 말레이시아 여행 중 4일 차 밤을 말라카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도 마지막 한 편을 남겨두고 있군요. 20편까지 채우려 했지만, 아마 19편에서 끝날 듯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가족에게 더 좋은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기존 여행기의 마무리를 서두르겠습니다.

 

패키지 투어로 간 말라카 여행은 산티아고 요새 → 세인트폴 교회 → 네덜란드 광장 → 하모니 스트리트 → 존커 스트리트 → 해상 모스크를 거쳐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다음 → 트라이쇼 → 유람선 일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부 마치면 밤 9시. 말라카에서 숙소인 쿠알라룸푸르까지는 약 200km인데 이는 우리 집(서울)에서 충남 홍원항까지 거리와 맞먹습니다.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그러니 자정이 다 돼야 숙소에 도착해 아마 파김치가 되어 있을 듯합니다.

 

 

말라카 당일 투어에는 저녁 식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이드를 따라 들어온 곳은 말라카에서 꽤 큰 중국식 레스토랑.

 

 

수조가 보이자 물 만난 고기처럼 살피러 갔는데 수조 위생 상태는 굉장히 좋지 못합니다. 수조 청소, 물갈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군데군데 녹색 이끼가 꼈습니다.

 

 

이건 우리나라 수산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터봇(대문짝넙치)입니다. 터봇의 원산지는 북유럽과 대서양. 따라서 아시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터봇은 전량 양식이죠. 국내에서도 터봇 종자를 사들여 제주에서 양식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시장 반응이 썩 좋지 못합니다. 홍보 부족 탓도 있지만, 단단한 육질을 맛있게 포장할 만한 기술이 동네 횟집과 수산시장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육질이 일반 광어보다 단단하기 때문에 아주 얇게 떠야 맛있는 생선이죠. 그런데 이걸 일반 광어 썰 듯하면, 질기다고 느껴지니 말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찜 등의 가열 요리로 내놓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화이트 틸라피아입니다. 평소 물고기를 보고 불쌍타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은데 이 장면은 좀 불쌍하네요. 저렇게 좁은 공간에 밀집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면, 수질 오염 악화는 시간 문제죠. 배설물에 의한 아질산 농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여러 비위생적인 문제를 낳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그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여러가지 수질 정화 장치를 사용하지만,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그런 장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구이나 튀김, 찜으로 이용될 것이니 크게 상관 없을지는 몰라도 맛에는 미묘하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저런 수질에 며칠 간 놓이면, 결국에는 저런 수질 상태에서 호흡하면서 각종 안 좋은 성분이 어떤식으로든 맛과 향미에 관여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생선의 맛과 신선함을 논할 때 괜히 1급수와 청정해역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런 수조를 보고 나니 이 집의 전반적인 위생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배는 고프고 먹기는 먹어야 하니 할 수 없이 먹는 것. 이날 말라카 여행은 우리 팀과 (부모를 모시고 온) 다른 팀이 모두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끼리 식사하면 모를까, 한 테이블에 다른 일행과 섞이니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네요. 회전 테이블을 돌려서 제가 떠먹을 차례가 왔을 때라야 한 방 정도 찍을 수 있었으니 사진에 나온 음식이 온전하지 못해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식은 코스로 주문한 듯 보입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여느 중국식 레스토랑과 다를 게 없는 게살 수프. 이건 딸이 먹을 줄 알았는데 안 먹네요. 맛은 사진에 보이는 만큼입니다.

 

 

인원이 많으니 볶음밥도 산처럼 쌓여서 나옵니다. 무난한 맛. 그런데 딸이 밥도 안 먹네요. 온종일 다니느라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이어서 이것저것 담은 샘플러 같은 음식이 나옵니다. 저 춘권이 바삭해 보여 한입 깨물었는데 속에서 고기 누린내가 작렬. 다른 것도 하나씩 맛보는데 밀가루의 텁텁함만 전해지면서 보기와 달리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이어서 생선 탕수가 나옵니다.

 

 

직원분이 살을 발라주는데요. 이건 맛있네요. 순간 불현듯 스치는 것은 좀 전에 봤던 화이트 틸라피아. 이게 그건지 물어볼 걸 그랬습니다. 형태로 보아 튀김 용도로 한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화이트 틸라피아를 쓰진 않았을 것이라는 데 500원을 걸어봅니다. ^^;

 

 

이건 달걀 물에 돈가스를 올린 맛. 다행히 고기 누린내가 심하지(?) 않습니다. 집중하고 느껴보려고 애쓰면 살짝 나는 정도.

 

 

모닝글로리 볶음.

 

 

튀긴 두부 요리. 지금까지 나온 요리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 딸내미도 맛있는 걸 아는지 연신 두부를 집어 먹습니다.

 

 

탕수육과 깐풍기를 섞어 놓은 듯한 음식. 맛도 그래서 무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역시 새우. 새우는 언제나 옳았습니다. 양이 적어서 1인당 1~2개씩밖에 안 돌아가네요. 그나저나 접시 상태가 왜 이런지.

 

 

이 인원이 먹기에는 푸짐한 양인데 몇 가지 메뉴와 위생 상태는 아쉽군요. 그런데 가격 대비로 따지면 (왜냐하면, 여행사도 남겨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이날 우리가 이용한 말라카 당일 여행비가 1인 65,000원이었습니다. 오가는데 버스 기름값 대고, 톨비 대고, 몇천 원 정도 하는 트라이쇼(인력거)와 중간에 코코넛 주스 비용 댈 것이고, 그리고 얼마인지 몰라도 유람선과 식사비까지 대고 나면, 과연 얼마나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도 다 남겨 먹으니 유지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 가격에 온종일 말라카를 여행한 것을 생각한다면, 불평만 늘어놓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코스로는 트라이쇼(인력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 제가 낼 것은 아니지만, 따로 가격을 알아보니 보통은 40링깃(1만원)을 부르고, 현지인과 함께 와서 깎으면 20링깃(약 5천원)에 탈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즉, 사람 봐가면서 값을 흥정하는 것은 어느 관광지에도 있을 법하지만, 말레이시아 물가를 고려했을 때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어쨌든 저는 피카츄 쪽을 타고 싶었는데

 

 

우리 가족이 안내된 쪽은 잘 모르는 캐릭터가 달린 트라이쇼. ㅎㅎ

 

 

트라이쇼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기분이 색다르긴 합니다만, 때는 밤이라 사진에 담을 만한 풍경이 없습니다. 자전거에 기어가 달려있어도 딸내미까지 세 명을 태우고 자전거를 끄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분들 평소 많이 먹고 열량을 쌓아두어도 여기서 다 쏟아낼 것 같더군요. 아마 살이 찔 새가 없을 것입니다.

 

 

말라카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낭만적인 강 유람선 투어. 벌써 긴 줄이 있어 차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배를 타고 장장 왕복 7km를 오가는데요.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이보다 훨씬 좋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람선(아마 업체가 다른 듯)을 서양인들이 타고 가는 것을 봤기에 지금 이 배는 난민이 이용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뭐여~ 유럽에서 온 백인은 좋은 배 타고, 여기 기다리는 줄은 대부분 인도인이나 중국계, 말레이시안들이니 뭔가 기분이 묘해집니다. ^^;

 

 

세계날씨에서 말레이시아를 검색해 보면, 일 년 356일 중 절반 이상이 뇌우로 표시되어 있을 겁니다. 걸핏하면 스콜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는데 다행히 이날은 뇌우만 있었을 뿐,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지평선까지 일자로 뚝 떨어지는 번개를 담아보려고 부단히 애써봅니다만, 제 능력에서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건진 사진인데요. 아깝네요. 조금만 타이밍이 맞았더라면, 쭉 뻗은 번개를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오두막(5D Mark2)도 평소에는 연사 속도가 느린 줄 모르고 사용했는데 이날 확실히 상위 기종의 절실함을 느꼈죠. ^^; 하지만 제 사진 실력으로는 오두막도 감지덕지입니다.

 

 

이제 난민선 아니 유람선을 타러 갑니다. 백인들이 탄 배가 또 지나가면, 프레임에 함께 담아 비교 좀 하려고 했는데 좀처럼 지나가질 않네요.

 

 

이 유람선에는 대부분 말레이시안, 인도인, 중국계 화교들이 탔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도 조금 보이고요. 딸 옆에는 딸보다 몇 개월 늦은 아이가 있었는데 아빠는 확실히 중국계 화교로 보이고, 엄마의 인종이 미묘합니다. 인도인은 아니고요.(인도인은 첫 번째 커버 사진에)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대충 생각이 스치는 나라를 떠올려보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어쨌든 엄마가 상당한 미인이셨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런데 딸이 다짜고짜 손을 잡네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모르는 아이의 손을 잡고선

 

 

놓지 않습니다. 친구하고 싶었던 걸까요? ^^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국의 아이는 바짝 얼어버렸습니다.

 

 

 

"무서웠쪄? ㅎㅎ"

 

이 상황이 재밌는지 양쪽 엄마들은 깔깔대며 웃고 있습니다.

 

 

배는 편도로 3.5km, 왕복 7km니 꽤 긴 구간을 오갑니다. 어차피 차 끊기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느긋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지금 이 순간의 낭만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딸이 자꾸 "바다"라고 말해서 "이건 강이야"라고 알려줘야 했죠. "강? 강이 뭐야?"라고 묻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딸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나. 아빠로서 앞으로 이런 고민이 많아지겠지요. ㅎㅎ  

 

 

우리 옆에는 삼촌 조카까지 대가족 단위로 온 인도인이 앉았는데 다들 인상도 좋고 화목해 보이더군요.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아저씨와 우리 일행이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중간에 인도어로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길래 따라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단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것이라도 발음이 너무 어려워 듣는 것으로도 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았죠. ㅎㅎ

 

 

말라카의 강 유람선은 따로 좌석 지정이 없으니 마음에 드는 자리에 대충 앉으면 됩니다. 그런데 앞자리는 조금 고려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앞 자리에서 탁 트인 풍경을 보는 것은 탁월하지만, 가끔 뱃머리가 물막에 막혀 튀어오를 때면 여지 없이 강물이 튑니다. 제가 앉은 자리에도 강물이 튀는데 앞 좌석 사람들은 옷이 많이 젖더군요. 그럴 때마다 비명 아닌 비명이 흘러나오니 놀이동산에서 후름라이드 탄 느낌도 살짝 납니다.

 

 

깊어가는 말라카의 밤

 

다리에 적인 글자를 해석해보니 앞쪽은 '잠바(입고) 타'로 보이는 듯한 ㅎㅎ 강 유람선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 둘러보는 재미가 꽤 낭만적이지만, 사실 이때는 한밤중이어서 기억에 남는 풍경은 없었습니다. 연신 흔들리는 배에서 어두 컴컴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들 그게 잘 표현될 리 없고요. 촬영은 많이 했는데 그나마 건진 사진이라곤 아래 몇 장뿐입니다.

 

 

 

 

어둠 속에 홀연히 불을 밝히는 있는 술집 간판 하나. 저도 저곳에서 느긋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을 만큼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루 만에 둘러본 말라카는 아쉬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딸이 있고, 챙겨야 할 일행이 있으니 패키지 투어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이왕 말라카를 가겠다면 적어도 1박을 하면서 좀 더 느긋하게 둘러볼 수 있는 자유 여행을 권합니다. 말라카의 진면목은 겉으로 보이는 상투적인 관광지가 전부는 아니란 생각입니다. 그건 여행을 모르는 사람들 혹은 정해진 루트만 둘러 보고 내린 섣부른 판단이 아닐까요? 

 

제주도행 기내에서 나이 들어 보이는 어느 노부부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볼 것 없는 제주도에 뭐하러 3박 4일씩이나 다녀와?"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볼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의 여행 관념과 마음의 그릇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패키지여행으로 판에 박힌 명소, 그저 그런 식당만 둘러보고 해당 여행지와 음식을 판단하는 것만큼 섣부른 것도 없으니까요.

 

이날 저는 말라카를 패키지로 여행하면서 정해진 루트만을 다녔지만, 그러면서도 곳곳에 숨어 있는 운치 있는 골목길, 상점들, 그리고 지금은 한낮이라 썰렁하지만, 주말에 열릴 야시장, 그리고 우리가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말라카 강기슭의 구석구석 풍경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이날 진한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시간상 대충 둘러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속에서도 말라카는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적 아픔과 유서 깊은 모습이 일부 볼 수 있었습니다. 말라카의 강 풍경은 유람선에서 바라본 야경도 나쁘지 않지만, 확실히 낮 풍경이 이국적이긴 합니다. 다들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이 졸았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자정입니다. 이제 우리 가족은 4박 5일 여정 중 마지막 날을 맞이합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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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질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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